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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어디에 절할까

기자명 법보신문

‘천수경’ 자의적 해석 많아
경전은 부처님 만나는 도량
정확한 고증·검토 따라야

 

경전이나 다라니를 청하기 위해 성현을 청하고 나면 의당 인사를 올린다. 그런데 천수경에서는 좀 특이한 이해들이 있어왔다. “계수관음대비주(稽首觀音大悲主) 원력홍심상호신(願力洪深相好身): 원력이 크고 상호가 훌륭하신 관음보살 대비주께 멀리 숙여 절합니다.” 이 7언 2구와 이하 6구 도합 8구를 천수경의 ‘계수문’이라고 한다. 계수문 8구의 전체 서술어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첫 구의 ‘계수’이다. 그런데 1구 관음대비‘주’의 ‘주(主)’가 ‘석문의범’(1935)에 ‘주(呪)’로 표기돼 유통되면서 적지 않은 본들이 이를 따라왔다. 대비주(主)가 대비주(呪)로 와전되어 대비주를 ‘신묘장구다라니’로 인식하고 다라니에 절한다고 이해하는 본이 적잖게 등장하였다. 어느 해설서 한 단락을 읽어보자.


“여기서 ‘대비주’는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대다라니인 ‘신묘장구다라니’를 이르는 말입니다. ‘천수경’에서 대다라니는 다름 아닌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비주와 관세음보살은 둘이 아닙니다. 관세음보살이 대비주이며, 대비주는 바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일컫는 말이니 이 세 가지를 함께 붙여서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을 관심석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비주(主)를 대비주(呪)로 인식하면 계수의 목적어는 문맥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왜일까. 계수의 목적어 ‘관음대비주’는 뒤에 오는 ‘원력홍심상호신’ 등 7구의 주어가 되어, ‘관음대비주께서는 원력이 넓고 크며, (32상 80종호의) 상호의 몸이시며, 천안으로 살피고 천수로서 건지시며’라고 하며, 관세음보살의 형상과 원력을 점차적이고 구체적으로 수식해 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다라니가 원력이 크고 수승한 몸이며 천안으로 살피고 천수로 건지신다고 언술하는 것은 전후의 문맥이 전혀 맞지 않는다. 지나친 자의적인 해석을 관심석이라고 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또 하나. ‘대당서역기’에는 (1)발언위문(發言慰問), (4)합장평공(合掌平拱), (6)장궤(長), (9)오체투지(五體投地) 등 9종이, ‘대지도론’에는 읍(揖)·궤()·계수(稽首)의 3종의 예배법이 보인다. 두 책에서 소개하는 예배로 볼 때 계수는 최상의 예배법이다. 경전을 청해 듣기 위해 성현님을 모시고 최상의 예를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천수경 번역서들에는 ‘머리 숙여 절합니다.’라고 번역은 보여도 절을 하라는 지문은 보이지 않는다. 과문이겠지만 절을 하거나 절을 하라고 지도하는 경우도 보지 못했다. 입으로는 ‘절합니다.’ 하면서 몸으로는 절을 하지 않는 것이다. 말로는 절을 한다고 하면서 몸으로 하지 않고 있다. 신구의 삼업으로 예배하는 것임에도 말이다.


그간 한국불교의례에는 ‘석문의문’ 등 선행의 오류와 전승행법 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온 것이 적지 않았다고 보인다. 예배 대상을 설주(說主)에서 다라니로 오인하고 이후 그럴듯한 인식을 양산해온, 천수경의 계수도 그 한 예에 불과하다. 전승의문에 대한 고증과 검토를 수용할 수 있는 풍토가 되지 않는 한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장법사는 경전의 결락을 확인하기 위해 구법의 대장정에 올랐다고 한다.

 

▲이성운 강사
경전과 의문은 부처님과 선대 조사님을 만나는 도량이다. 고증과 정확한 이해 없이 설명되고 자신의 그럴듯한 해설이 가해지는 현실을 조금 덜 보는, 그런 도량에서 성인과 범부가 만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이성운 동국대 강사 woochun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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