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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아우렐리우스의 금강경

기자명 법보신문

원효의 불교에 몇 가지 특징이 있다. 1) 하나는 방편(方便)이다. 불교는 궁극이 아니고 도구이며, 도그마가 아니고 처방이다. 법(法)은 뗏목일 뿐이고, 가르침은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한 종이돈’이라는 것. 그래서일 것이다.

 

아들 설총에게 “너는 법(法)을 행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2) 둘은 종요(宗要)이다. 불교의 수많은 가르침, 다양한 유파가 결국은 같은 곳을 향해 있지 않은가. “펼치면 팔만의 장경이지만, 모으면 마음 하나에 귀속된다.” 3) 셋은 화쟁(和諍)이다.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면 수단들은 서로 달라도 무방하다. 아니 달라야 더욱 효과적이다. 연장통에는 망치와 펜치가 나란히 들어 있고, “부처님의 약 상자에는 수많은 약이 있다!”


‘대승기신론소’나 ‘화엄경소’를 보라. 원효는 불교적 자산뿐만 아니라 유교와 노장의 전통들을 한 삼태기에 포괄했다. “용격의위(勇擊義圍), 웅횡문진(雄橫文陣), 난해한 경전을 단기 필마로 치고 들며 다양한 전통의 텍스트를 종횡으로 내달렸다!” 그가 이 시대에 살았으면 동서양의 지적 종교적 전통들을 한 테이블에 펼쳐 놓고 종요와 화쟁을 요리했을 것이다. 틀림없다.


설마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가령 황제 아우렐리우스의 ‘금강경’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가. 그는 ‘명상록’에서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자들’에 세 종류가 있다고 썼다. 자신의 친절이 나중, 1)보답이 되어 돌아오기를 바라는 자. 2)보답은 아니더라도 상대에게 준 빚을 기억하는 자, 그리고 3) 자신이 베푼 친절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자가 있다는 것. “그는 자신의 친절에 대해 아무 것도 돌려받으려 하지 않는다. 마치 포도나무에 포도가 열리고, 또 익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이 가르침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지 않은가.


황제는 지금 삼륜청정(三輪淸淨), 빚을 준 자도 빚을 받는 자도, 그리고 받은 물건도 없다는 위대한 망각을 설법하고 있는 중이다. ‘금강경’ 4장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은 말한다. “또 그리고 수보리야! 보살은 어느 경우에나 ‘자의식(住)’ 없이 보시를 행할 것이다. 이를테면 형체를 의식하지 않은 보시와 소리, 냄새, 맛, 접촉, 관념에 붙잡히지 않는 보시가 그것이다… 보살이 그렇게 대상이나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보시한다면, 그 복덕이 헤일 수 없이 무한할 것이다.”(復次, 須菩提, 菩薩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不住色布施, 不主聲香味觸法布施.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인간도처유불교(人間到處有佛敎), 불교는 어디에나 있다. 병행(parallel)의 사례는 갠지스 강의 모래보다 많다. 눈을 뜨고 마음을 열면 ‘불교의 이름을 달고 있지 않은’ 불교, 그리고 이방의 이름표를 단 수많은 불교와 만난다.
팔만 장경의 뜻이 문자 밖에 있다면 불법(佛法) 또한 불교도만의 것이 아니다. 이 시대 외전(外典) 속에서 불교를 읽는 법안(法眼)이 필요하고, 이방인들에게서 익명의 불교도들을 알아보는 불안(佛眼)이 절실하다.


원효가 노장 안에서 화엄의 소식을 듣고 아들 설총에게는 홍유(弘儒)로 대성하기를 권했듯이, 이 시대의 화쟁은 불교 집안을 넘어 동서양의 지적 정신적 전통들을 휘몰아가야 한다. 그래야 글로벌 시대의 ‘한국 불교’를 말할 수 있다. 문을 꼭꼭 닫아걸고, 이불 속에서 ‘21세기의 대안’을 활갯짓해서야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

 

▲한형조 교수

가끔 종교 채널을 돌리다 어느 교회 목사의 퀴즈가 섬뜩했다. “세상에서 제일 위태로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자문해 놓고, 잠시 양구(良久)한 다음, 그의 대답이 이랬다. “책을 한 권밖에 안 읽은 사람입니다.”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idion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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