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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경전 어떻게 탄생했나

기자명 법보신문

경전은 붓다 가르침 전하려 했던 불교인들 열정의 결정체

초기엔 붓다 말씀 기억하려
육체에 문신 새기듯이 암송


베다어만 고집하지 않고
지역 언어로 번역도 인정

 

 

▲기원후 2세기경 쿠샨 왕조기의 브라흐미 문자로 기록된 산스크리트 필사본 사진(스코이엔 콜렉션). 아비달마 문헌으로 ‘염유경(鹽喩經)’의 주석서에 해당한다.

 

 

불경이 처음 오백비구들의 합송(saṃgītī)을 통해 등장하여 구전되었다는 이야기는 거의 모든 불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억을 통해 불경이 등장하고 전승되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는 잘 되짚어보지 않는다. 붓다의 가르침을 제자들이 처음 기억 속에 떠올려 반복적으로 암기했다는 것은, 불경을 그들의 육체에 새겼다는 것을 뜻한다. 단순히 기억은 인간의 뇌 속의 해마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다. 혀와 턱 관절, 목과 허리가 반복적으로 요동치면서 만들어진 소리의 진동이 뇌에 전달된다는 점에서 불경의 구전은, 곧 성스러운 문신의 의미가 된다.


붓다의 말을 잊지 않기 위해 그 가르침을 암기를 통해 평생 육체에 반복적으로 새겨놓았다는 점을 현대의 불자들은 다시 상기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1~3세기 무렵에 카로슈티 문자로 쓰인 간다리어 불교문헌. 간다리어로 쓴 유일한 대승경전이 바주르 콜렉션에 포함되어 있다.

 


물론 불경을 외웠던 것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고대인도 사회에 문자가 등장한 시기는 대략 기원전 3세기경 전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따라서 불멸후 제자들이 이끌었던 일련의 경전 결집은 문자를 사용해 경전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었고 암기하는 일이었다.


이 암기를 통해 집성된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잘 알다시피 두 종류인데, 하나는 경(sutra)이고 또하나는 율(vinaya)이다. 후대에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되는데, 가르침의 목록들(mātṛkā)이 그것이다. 이 마트리카는 불멸후 교리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 것들을 리스트로 만든 것이다. 이것도 역시 불교 초기의 암기 전통과 일정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 항목들은 연상작용을 통해 가르침의 본문으로 들어가기 위한 인덱스 역할을 했을 것인데, 후대에 마트리카는 교리적 해설과 분류체계로 발전하여 논서(adhidharma, ‘가르침에 대한’ 논의)라는 이름으로 정착한다. 불경은 이렇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를 통칭하는 삼장(tripiṭaka)은 사실 암송의 문화적 현상을 토대로 형성된 것이다.

 

 

▲ ‘반야경’의 티베트어 번역본. 13세기경. 한쪽에는 석가모니, 맞은편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여신이 그려져 있다.

 


설령 석가모니 당시에 문자가 소개되었다고 가정해도 당시에 ‘글을 쓴다’는 것은 그렇게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불교가 등장했던 인도사회에서도 전문 지식인들(바라문)은 베다 경전을 매우 엄격한 방법으로 암송하고 있었고, 불교 내에서도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장려할만한 풍속이 아니었음은 후대의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초기불교 승려들이 경전을 암송하고 있었다하더라도, 힌두 바라문들과 같은 방식으로 극히 정밀한 암기방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초기 경전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석가모니의 말은 기억의 연장을 위해 반복적으로 되풀이해 암기하는 방법을 택했다. 니카야나 아함경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상용구와 반복구는 이를 증명한다.


반면, 바라문들은 베다를 한음절도 틀리지 않도록 정확히 암기하고자 문장의 단어들을 뒤섞는 다양한 방법들을 고안했다. 이러한 암기 방법상의 근소한 차이는 불교와 힌두교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언어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라문들에게 베다의 언어란 변화되어서는 안 되는 신의 언어(apauruseya)였고, 석가모니의 언어는 인간을 위한, 인간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에 따라 다른 언어로 기록되고 번역되는 것에 자유를 허용했던 불교의 언어관은 후대의 경전과 수행에 대한 관점을 극적으로 변모시키는 단초를 놓게 되는 것이다. 만일 불교의 경전언어에 대한 태도가 힌두교나 유대교 또는 이슬람의 그것과 같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불교의 사상과 수행에 다양한 진화가 가능했을까. 이 점을 불립문자와 화두참구에 힘쓰는 한국 선불교 전통 속의 불자들은 다시 되짚어 보아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불교의 언어관과 석가모니 당시의 문화적 상황을 고려해야 불경의 등장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붓다시대에는 아람어 사용
첫 경전어는 나뭇잎에다 쓴
카로슈티 문자 가능성 커


인도에서 만들어진 경전이
개인 원력과 국가적 배려로
세계 여러 지역으로 확산

 

 

▲고려초조대장경 가운데 설일체유부 문헌으로 현재 일본 난젠지(南禪寺)에 소장돼 있다.

 


결집을 통해 모아진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최소 수백 년 동안 승려들의 암송에 의해 전해졌다면 그 이후에 어떤 언어와 문자로 기록되어 경전이 탄생하게 되었을까. 석가모니의 직설이 어떤 언어로 이루어졌는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팔리어(pali)는 중기의 인도-아리아 어의 하나로 산스크리트와 마찬가지로 인도북부에서 유통되었던 기록 언어의 하나였을 것이다. 이 언어가 실제로 석가모니의 직설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대부분이 회의적이다. 기억해야할 것은 아마도 다수 존재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기록 언어가 점차 인도땅에서 ‘산스크리트화’되어 갔다는 점이다. 팔리어는 그러한 언어 가운데 생존해남은 하나의 언어다. 그러한 언어는 문자를 만나 비로소 책의 형태를 갖춘 경전이 탄생하게 된다.


만일 불경이 처음 부처님 당시나 그 이후 수십 년 안에 기록되었다면 아마도 그 경전의 언어는 아람어 문자로 기록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아람어와 그 문자는 석가모니 당시 서아시아와 서북 인도 지역의 국제어였기 때문이다. 물론 아람어나 그 문자로 기록된 불경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아람어로 기록한 아소카대왕의 비문은 존재하기 때문에 그 형태를 추적해 인도 최초의 문자인 브라흐미 문자나 카로슈티 문자가 이 문자에서 파생한 것이 아닐까 추정할 뿐이다. 따라서 최초의 ‘기록된’ 불경은 브라흐미 문자나 카로슈티 문자로 작성된 문헌이다.

 

 

▲ 스리랑카의 패엽경 사진. 스리랑카를 비롯한 인도 등의 패엽경은 야자잎을 찌고 말려서 표면을 매끄럽게 한 후 철필로 긁거나 먹물로 기록했다. 각 경잎들은 가운데나 양쪽을 뚫어 끈으로 묶는다. 티베트 경전도 대부분 가로길이가 긴 ‘뽀티’형태가 일반적이다.

 


불교전승에 의하면 경전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기원전 1세기경 스리랑카에서 기록되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이것에 대한 실증적인 단서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우리에게 실물로 남겨진 가장 오래된 불경은 기원후 1세기에서 2세기경에 기록된 몇 가지 것인데, 대략 2000년 전인 기원후 1세기경에 기록된 ‘코뿔소경’, ‘법구경’(기원후 2세기), ‘대반열반경’(기원후 2세기) 등과 같은 것들이다. 인도 북서부 특히 간다라 지역(주로 길깃-탁실라-바미얀의 삼각지대 내) 등에서 발견된 이 경전의 필사본들은 자작나무 껍질이나 야자나무를 재단해 만든 패엽 위에 잉크로 쓴 경전들이며 이 당시에 이미 상당수는 산스크리트어나 혼성 산스크리트로 작성된 것들이다.

 

2000년 동안 이러한 불경들은 건조한 기후의 혜택으로 보존되면서 불교역사를 해명하는 단서들을 제공해주고 있다. 인도북서부에 단편적으로 발굴되는 이 불경들은 현재 우리가 읽는 한문 불경들의 전체(藏經)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교리사나 불교사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렇다고 인도불교 초기에 삼장(三藏)이 결집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며 다만 우리에게 온전한 형태로 전승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후 인도에서 만들어진 불경들은 승려 개인들의 노력과 국가적 배려가 결합되어 스리랑카와 티베트, 중국 등으로 전해진다. 전승에 의하면, 승려 마힌다의 암송에 의해서 스리랑카에 인도불경이 전해진 것은 기원전 3세기경이며 팔리 경전이 기록된 것은 기원전 1세기경이라고 말하지만, 이점은 거의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가장 일찍 삼장의 형태를 갖추고 그것이 현재 알고 있는 대부분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기원후 5세기경 이후 정도로 보고 있다. 게다가 우리가 보고 있는 대부분의 팔리 경전은 최근 200~300년 전의 필사본을 근거로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인도의 언어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삼장의 형태를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보물 제973호인 ‘수능엄경(언해)’. 수양대군이 세종 31년(1449) 부왕의 명에 따라 번역을 시작해 세조 7년(1461)에 완성했다.

 


세계의 여러 지역으로 전파된 인도의 불경은, 스리랑카를 포함한 동남아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각 나라의 고유언어와 문자로 옮겨졌다.


▲심재관
비록 전설에 의한 것이지만, 8세기경 이후 티베트인들은 불경을 번역하기 위해 자신들을 위한 티베트 문자를 고안했고 이것은 티베트문자의 기원설이 된다. 사실 진위를 떠나서 이러한 점은 티베트인들에게 불교경전이 갖는 의미가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단서가 된다. 티베트뿐만 아니라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불전 한역과정 역시 수백 년 동안에 걸친 불교인들의 열정의 산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대의 불교인들이 품었던 경전의 의미를 반추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심재관 서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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