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끝나지 않은 5·18과 스님들

기자명 법보신문

2013년 5월은 ‘세월’이 되었지만, 1980년 5·18은 끝나지 않았다.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시민들의 무장 항쟁은 한국 현대사의 전환점이었다. 만일 그날의 항쟁이 없었다면, 1980년대 내내 여울여울 타올랐던 민주화운동의 풍경도 사뭇 달라졌을 터다.


오월항쟁의 민주시민들은 국립묘지에 묻히기까지 오랜 세월 ‘폭도’와 ‘난동자’로 모욕당했다. 심지어 쿠데타 주모자들인 이른바 ‘신군부’는 오월항쟁을 “북 간첩”과 연계시키는 여론 조작을 서슴지 않았다. 항쟁 당시인 5월24일 저들은 서울역에서 체포된 ‘간첩’을 북이 5·18을 선동하기 위해 남파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수사기록에 근거해 낸 보고서에 따르면, 체포된 간첩은 5월16일 전남 보성을 통해 침투했으며, 광주와는 전혀 무관하다. 아울러 “신군부 세력은 광주 민주화운동을 북한과 연관된 것처럼 여론조작을 하기 위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생게망게한 일이 불거졌다. 2013년 5월을 맞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각각 운영하는 TV조선과 채널A가 ‘극우 인사’들과 탈북자들을 패널로 초청해 5·18 관련 ‘북 특수부대개입설’을 방송으로 내보냈다. 유월항쟁으로 몰락한 군부의 빈자리를 다름 아닌 언론이 채우고 있다는 진실을 실감할 수 있었던 작태였다.


두 종편은 여론이 악화되자 뒤늦게 유감을 표명하며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문제는 두 신문사의 종편방송만이 아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우익논객’ 조갑제가 최근에 올린 글은 오월항쟁에 북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선동 앞에 적잖은 사람들이 오염됐다는 진실을 확인할 수 있다. 조갑제의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광주에 북한군 특수부대 1개 대대가 들어갔다는 탈북자의 증언이 화제가 되었을 무렵 서울 근교 대학교에 강연하러 갔더니 문교부 고관 출신 총장이 물었다. ‘광주에 북한군이 들어온 것 맞죠?’ ‘아닙니다. 거짓말입니다. 믿지 마세요.’ 이 분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믿고 싶었던 것이다.”


어떤가. 현직 대학총장이 ‘광주에 북한군이 들어온 것’을 진실로 믿었다는 ‘증거’이다. 하물며 일반 시민들은 어떻겠는가? 우리는 그 사례를 ‘우익’을 자처하는 네티즌들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5.18 희생자의 사진에 “홍어 말리는 중”이라는 악담을 퍼붓거나 시신을 담은 관을 두고 “홍어 택배 중”이라고 써댄 야만을 보라. 이들은 조갑제가 북의 개입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자 “조갑제도 친노종북좌빨”이라고 몰아치는 황당한 글을 올리고 있다.


기실 예외적 현상들이 아니다. 나 또한 몇 해 전 영남지역에 강연을 갔을 때, 적잖은 사람들이 ‘광주 민주화운동’을 여전히 ‘폭동’으로 여기는 언행에 충격을 받았다. 쿠데타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던 오월항쟁, 군부에 저항하면서도 ‘김일성은 오판말라’라고 외쳤던 시민들을 겨누어 벌어지는 작금의 행태는 망국적이다. ‘홍어’라는 말로 학살당한 민주시민들까지 모욕하는 저들의 황폐화된 인성 앞에선 차라리 서글픔이 몰려온다.


그래서다. 새삼 조계종에 묻는다. 1980년 5월 불교는 어디에 있었는가를 물으려는 게 아니다. 학살의 피가 마르기도 전에 광주에서 있었던 스님들의 ‘전두환 찬가’ 앞에 당시 문빈정사에 머물던 지선 스님은 대담집 ‘큰 무당 나와야 정치 살아난다’에서 회한의 심경을 밝힌 바 있다. 물론, 불교는 그 뒤 민주화운동에 적극 나서 유월항쟁을 일궈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손석춘
하지만 보라, 대학총장과 조선·동아일보의 종편은 물론 자칭 ‘우익 네티즌’들의 저 살천스런 야만을. 5·18의 진실을 알려주고 비뚤어진 지역감정 해소에 특히 영남지역 스님들이 적극 나서야 옳지 않을까. 나는 그것이 종교인의 시대적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손석춘 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20gil@hanmail.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