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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불교는 어떻게 제국주의에 영합했나

  • 교학
  • 입력 2013.06.13 22:15
  • 수정 2016.07.2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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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日불교계 비판하는
저술·논문·세미나 잇따라
군국주의 첨병역할 담당
전쟁·살인 옹호논리 개발

 

 

▲‘불교 파시즘’ 등은 가장 평화로운 종교라도 국가권력에 종속되거나 밀착되면 전쟁 도구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은 임제종 선사인 오모리 소겐. 저명한 승려이자 검술가였던 그는 극우파 테러에 가담한 국수주의자이기도 했다.

 

 

일본 아베 총리를 비롯한 극우파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침략 역사를 부인하는 등 망언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일본 불교교단 차원의 비판적 입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당시 침략전쟁에 일본불교계가 깊이 개입됐던 역사적 사실을 감안하면 여전히 ‘불교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다. 이런 가운데 근대 일본의 침략기에 일본불교계의 활동을 비판한 저술과 논문들이 잇따르고 있어 눈길을 끈다.

미국 엔티오크대학 교수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의 ‘불교 파시즘’(교양인)은 평화의 종교 불교가 어떻게 전쟁 이데올로기로 변신했는가를 신랄하게 보여준다. ‘선(禪)은 어떻게 살육의 무기가 되었나?’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2009년 국내 번역된 ‘전쟁과 선(Zen at War)’(인간사랑)의 후속으로 베일에 가린 일본 군국주의와 불교의 밀착관계를 밝힌 충격적인 보고서다.

일본 조동종의 정식 승려였던 빅토리아 교수의 ‘불교 파시즘’에는 다른 불교문화권에서 찾아보기 힘든 충격적인 전시불교의 타락상들로 가득하다. 지금도 널리 존경받는 일본의 선사들 중에는 병사로서 전쟁에 참전하고도 희생자들에 대한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는 승려가 있는가 하면, 군을 위해 자신이 운영하는 사찰을 아낌없이 제공하고, 천황 중심 사회를 만들기 위한 쿠데타에 가담해 몸소 칼을 쥐는 등 국가 폭력에 저항하기는커녕 적극 협조했던 승려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깨달음, 무아, 업, 열반, 정토왕생, 생사일여와 같은 불교의 핵심 용어들이 전쟁과 살인을 옹호하는 도구로 왜곡됐음도 보여준다. 난징대학살을 비롯해 일본군이 각지에서 자행한 중국인 학살을 두고 불교 인사들이 “그들에게서 번뇌를 없애주는 불교의 자비심의 표현”이라고 하는가 하면, 가미카제 특공대의 자살 공격을 “개인적인 자아를 부정하고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한 것”이라고 칭송했음을 밝힌다. 불살생을 으뜸 계율로 여기고, 석가모니가 비둘기 한 마리를 구하려 자신의 온 몸을 바쳤다는 경전의 가르침을 무색케 하는 서글픈 사실이다.

빅토리아 교수는 “어떤 종교를 믿든 사려 깊은 신자들이 전쟁과 자신들의 신앙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적 관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촉매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라며 이 책의 발간 취지를 밝힌 점이 눈길을 끈다.

이태승 위덕대 불교문화학과 교수도 불교학연구회가 5월25일 서울대에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일본불교계가 1884년 청일전쟁부터 19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까지 엄청난 사회적 변동 가운데 어떤 입장을 갖고 대처했는가를 면밀히 규명했다.

이 교수는 일단 브라이언 빅토리아의 ‘선과 전쟁(Zen at War)’을 근거로 당시 불교계의 전쟁옹호 논리와 기성교단의 전쟁협력에 대해 비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전후 일본 불교계의 전쟁책임론을 최초로 거론한 인물이자 ‘선과 전쟁’이 저술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던 이치가와 하쿠겐(1902~1986)의 전쟁책임론에 대한 연구에도 주목했다. 이치카와는 1970년 ‘불교도의 전쟁책임’이란 저술을 통해 당시 불교계가 전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협력했다는 사실을 일일이 조사 연구해 서술한 뒤 이에 대한 불교계의 참회를 촉구했던 것이다.

이 교수는 “우리 학계에서도 일본 불교계와 전쟁에 대한 문제나 불교의 사회윤리 등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며 “이것은 일본 불교학계가 일본사회에 책임을 가져야 하듯이 우리 불교계도 우리 사회에 책임의 일단을 짊어져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불교 파시즘’에 앞서 출간된 이치노헤 쇼코 스님의 ‘조선침략참회기-일본 조동종은 조선에서 무엇을 했나’(동국대출판부)도 일본 조동종이 황민화 정책의 첨병으로 전락했던 실상을 밝힌 책이다. 현재 일본 조동종 스님이기도 한 이치노헤 스님은 이 책에서 1895년 명성황후 살해사건에 조동종 승려 다케다 한시(武田範之)가 깊이 관련된 일, 조선 침략을 위한 청일전쟁 및 러일전쟁에서 조동종 승려들이 제국주의 일본의 첨병 역할을 수행한 일, 조동종이 한일 강제병합에 발맞춰 전 사원에서 병합 축하 법요를 봉행하고 조선 각도에 개설한 포교소에서 조선인의 황민화를 획책한 일 등 내용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불교학계에서도 근대 일본불교계의 전시 활동을 조명하는 자리가 준비되고 있다. 일본불교사연구소가 9월28일 군산 동국사에서 개최하는 학술세미나가 그것이다. 국내 학자 2명과 일본 학자 2명이 참여해 당시 일본 불교계가 ‘불교’라는 이름으로 저질렀던 ‘비불교적’ 행태를 집중적으로 고찰할 예정이다.

이들 저술과 논문들은 과거 일본 불교계가 저지른 과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가장 평화로운 종교조차 국가권력에 종속되거나 유착되는 순간 가장 폭력적인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음을 새삼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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