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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 회주 정우 스님

마음 속 긍정의 씨앗 키워 따뜻한 사람 돼야 참 불자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 회주 정우 스님.

 

 

마음 속 응어리 풀지 않으면
얹힌음식처럼 고통으로 남아
나쁜일 했더라도 참회하면서
변할 줄 알아야 지혜로운 이
기도는‘삶’을 바꾸는 원동력


“부처님을 생각함으로 기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하므로 기쁘고, 보살의 행을 생각하므로 기쁘다. 맑고 깨끗한 바라밀을 생각하므로 기쁘고, 보살이 보살의 자리가 뛰어남을 생각하므로 기쁘고, 신심은 그 무엇으로도 깨뜨릴 수 없음을 생각하므로 기쁘다.”


여러분은 오늘 기쁘십니까. 불법승 삼보전에 의지하므로 우리는 불자라 이름하고, 삼귀의 오계를 받아 지니고 지키므로 불자라고 칭합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인과와 윤회를 부정하지 않는 것인데 그런 마음의 자세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부처님같이 이러한 삶을 살도록 신심과 정진력을 모아야 합니다.


‘잡보장경’에“도를 구하고자 하면 마땅히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라. 지극한 정성이 서로 감응하면 능히 이루고자 하는 도의 과덕을 얻는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그 무엇에도 치우치거나 얽매이지 않는 마음, 그런 지극한 마음으로 정진하라. 만일 지극한 마음으로 도를 구하면 반드시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프로이드의‘의자 중에서’라는 글을 보니 응어리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문득 어렸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먹을 것이 없던 가난한 어린 시절, 끼니를 한 끼 때우려고 보리를 찧고 남은 보리겨를 모아 쑥과 버무려 보리개떡을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보리개떡을 먹어 본 경험이 있는 어른들은 그 맛을 알고 있으니 손도 안대지만 열 살도 안 되었던 그 어린아이는 보리개떡을 대나무 소쿠리 째 무릎 위에 올려놓고 야금야금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배가 아프고 얹혀서 아주 고생을 하였습니다.
오늘 법회에 들어오기 전, 여래사 반야샘터 찻집에서 그 보리개떡을 떠오르게 하는 쑥떡 몇 개를 가져 왔는데 돌려보냈습니다. 50여 년 전의 그 기억을 다시 느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먹는 음식도 한번 얹히면 평생 갑니다. 그러니 마음속에 담겨 있는 그 응어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원망을 원망으로 갚으면 원망은 쉼이 없어, 원망하는 마음을 쉬어야 원망은 사라진다”고 하셨습니다. 타던 불이 꺼져야 끓던 물은 잠잠해 질 것입니다.


“마음에서 흘리는 피도 지혈이 필요합니다. 마음의 피를 멈추게 하지 않으면 나를 잃어버립니다. 분노심에 휩싸여 나를 잃어버립니다. 출혈의 원인을 조심스럽게 찾아야 합니다. 새고 있는 혈관의 상처를 찾아서 정성껏 치료해야 합니다. 마음 속 응어리는 서서히 잘 풀어내야 합니다. 인내심을 갖고 녹여 내야 잘 정리할 수 있습니다.”(프로이드)


세상에는 지혜로운 이와 어리석은 이가 있습니다. 지혜로움에도 두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이입니다. 지혜가 있으면 나쁜 일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설혹 나쁜 일을 저질렀더라도 곧 참회하는 이입니다. 어리석음에도 두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죄를 짓는 이요, 둘째는 죄를 짓고는 감추려고 참회할 줄 모르는 이입니다.


떳떳한 것과 뻔뻔한 것은 다릅니다. 조건 없이 사는 것과 무조건 사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의 어버이는 조건 없이 사셨습니다. 요즘 어버이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니 옛 어른들이 훨씬 지혜로운 것입니다. 우리네 부모님들은 불보살이셨습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허리띠 졸라매고 근검절약하고 검소하게 사시면서도 그 자식들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덕분에 대한민국은 불과 50년만에 세계인들이 놀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네 어버이가 사셨던 것처럼 모든 이들로부터‘우리네 어버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바로 조건없이 사는 삶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설혹 어려운 환경에 노출돼 있다면 즉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무조건 살면서 죄를 짓고 죄를 지은 뒤에도 참회하지 않으면서 뻔뻔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을 생각하므로 기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하므로 기쁘고, 보살의 행을 생각하므로 기쁘고, 맑고 깨끗한 바라밀을 생각하므로 기쁘고, 보살이 보살의 자리가 뛰어남을 생각하므로 기쁘고, 신심은 그 무엇으로도 깨뜨릴 수 없음을 생각하므로 기쁘다”는 기쁨의 씨앗을 키웠을 때 우리는 환희 법열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비록 나쁜 일을 했더라도 이내 드러내고 참회하고, 참회하고는 부끄러워할 줄 알고, 부끄러워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면 마치 흐린 물이 가라 앉은 것처럼 또 구름이 걷히면 청명한 달이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참회하는 것도 그와 같다고 하셨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참회는 입에 발린 소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비심을 갖는 것입니다. 달라이라마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거든 먼저 자기 내면의 변화를 갖기 위한 노력을 하라.”


나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그러면 가족들이 변화할 것입니다. 거기서 범위를 점점 더 넓혀 나가면 세상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는 모두가 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지만 우리 인생의 업적과 영적인 씨앗은 갖고 갑니다. 오온은 인식 기관, 인식 대상, 인식 작용의 주체지만 과거의‘색수상행식’(色受想궋識)이 지금의 것일 수 없고 지금의‘색수상행식’이 미래의 것이라 규정지어서도 안 됩니다. 내생으로 가져가는 것은 아니지만 자작자수, 자업자득, 자승자박한 영적인 업은 분명하게 가져갑니다. 그러니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한다면 금생에 받는 것을 보면 알 수 있고 다음 생의 일을 알고자 한다면 금생에 행한 일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절에 와서 기도하는 시간만으로 기도 정진이 되어서는 부족합니다. 저잣거리를 배회하는 사람들처럼 퇴근길에 포장마차 들리고, 그러고도 부족해 공원에서 방황하다가 해지고 달떠야 집에 들어오는 이들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람들은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불자의 기쁨과 즐거움, 환희 법열의 현장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모습과 행동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불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불자란 인간답게 살기 위한 것이고, 부처님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편안하고 넉넉하고 너그럽고, 포근하신 분임을 확실하게 믿고 우리 또한 부처님같이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가 세상에 따듯한 사람이 돼야 합니다. 배회하는 사람, 저잣거리에서 방황하는 삶에서, 분노심으로 들끓는 인생에서 변화하여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기도정진을 통해 항상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있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긍정의 씨앗을 키우는 것입니다. 부정의 씨앗은 방치하면 잡초가 되므로 그것을 잘 뽑아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자신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얻어질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을 갖고 하루에 1시간, 아니면 단 30분이라도 기도하고 수행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것이 명상이든, 좌선이든, 여래선이면 어떻고 조사선이면 어떻습니까. 선정삼매를 닦든, 반야지혜를 닦든 상관없습니다. ‘번뇌망상’이 죽 끓듯 일어나도 환하게 불을 밝히는 것처럼 지혜의 등불 밑에 머무르고 있으면 스스로의 장단점을 보완하고 수정해가는 변화 속에 내 모습을 찾는데 충분한 여백과 환경이 조성될 것입니다.‘ 분별심’으로 흔들리는 기도는 머릿속에 인식되어진 관념일 뿐입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작은 공간에 앉아서도 산수화를 그리고 인물화를 그릴 수 있습니다. 한번 본 인물의 몽타주도 그릴 수 있고 보지 않은 세상을 그려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장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관념이 부정적이라면 세상을 불행하게 만드는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정의 씨앗을 심고 잘 가꿔 긍정의 관념으로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스스로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정우 스님은
1968년 조계종 15교구본사 통도사에서 홍법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수지, 1971년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조계종 9~12대 중앙종회의원, 총무원 총무부장, 조계종개혁회의 상임위원, 불교텔레비전 대표이사 및 불교방송 이사 등을 역임했다. 통도사 일산포교당 여래사 주지,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 주지 소임을 맡아 도심포교에 진력했으며 조계종 제15교구본사 통도사 주지 소임을 마치고 현재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와 일산포교당 여래사 회주로 주석하고 있다.

 

이 법문은 6월9일 통도사 일산포교당 여래사 화엄법회에서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 회주 정우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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