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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스님들, 비참한 죽음이 두렵다

  • 집중취재
  • 입력 2013.06.24 11:55
  • 수정 2013.06.2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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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수행하다 중병에 걸리면 홀로 임종
속가인연 끊기고 종단 지원도 기대 못해
비승비속 상태로 임종 맞는 경우도 많아

3년 전, 불교계 호스피스 시설인 청원 정토마을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병색이 완연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충청도 작은 사찰의 A스님이었다. 위암 판정을 받은 스님은 정토마을에서 남은 삶을 보내고 싶다며 몇 가지 치료를 받은 후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얼마 후, 정토마을에 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스님이 아닌 병원 관계자였다. 그는 스님이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을 맸다는 소식을 전했다. 10일 남짓한 입원기간 동안 청구된 치료비는 스님 수중의 돈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었다. 병원 CCTV에는 2시간 남짓 로비를 서성이며 전화를 걸고 현금인출기를 확인하는 스님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돈을 구하지 못하자 스님은 병실을 향해 쓸쓸하게 걸어갔다. 스님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모습이었다.


조계종에서는 지난 2011년 3월 스님들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위해 의료비 제공 등을 포함한 승려복지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승려복지법을 인지하는 스님이 적다는 점, 수혜대상을 세납 65세 이상으로 한정해 지원 폭이 넓지 않고 절차가 복잡하다는 점에서 실질적 지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 실제로 지난 2011년 12월 첫 수혜자가 나온 이래 현재까지 12명의 스님만이 의료비를 지원받았다. 가난한 스님들에게는 여전히 그림의 떡인 것이다.


종단 지원이 미비한 상황에서 스님이 병에 걸리면 신도나 문중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은 경우 남은 것은 쓸쓸한 죽음뿐이다. 지리산 산골 토굴에서 생활하던 B스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돌봐줄 사람도, 병을 치료할 돈도 없었던 스님은 2년 동안 홀로 폐암에 걸린 몸을 추슬렀다. 눅눅하고 먼지가 가득한 토굴은 병을 점점 악화시킬 뿐이었다. 마지막을 예감한 스님이 한 스님에게 연락을 했다. 토굴을 찾았을 때 스님의 육신은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후였다.


비참한 마지막 모습을 목격했던 스님은 “곰팡이가 곳곳에 피어있던 토굴에서 눈을 감은 채 누워있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며 “한평생 수행에 매진했던 올곧은 스님이 그렇게 눈을 감을 수밖에 없는 우리 불교의 현실에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조계종에서 스님의 입적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지가 조계종에 요청해 입수한 통계자료에는 2003년 1월1일부터 올 6월17일까지 총 391명의 스님이 입적했다고 나오지만 최근까지 입적을 종단에 보고해야 할 의무가 규정돼있지 않아 신빙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조계종에서 분한신고, 결계신고 등으로 재적현황을 조사하는 것도 한계가 명확하다. 분한신고는 10년에 한번만 진행되고, 안거시 결계신고의무 역시 징계조항만을 규정하고 있어 정확한 입적통계를 산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조계종이 3개월 이내 도제 및 사형사제가 입적 신고를 하도록 ‘승적업무관리에관한령’을 개정·공포했지만 신고주체와 강제성이 미약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도제가 없거나 사형사제와 연락이 끊기면 그마저도 무용지물인 것이다.


늦깎이 출가한 스님도 상황은 유사하다. 40대 초반에 출가한 C스님은 어느 날 자신이 간암에 걸린 것을 알았다. 스님은 늘어나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결국 부전을 시작했다. 속가의 가족이 스님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뛰어다녔지만 이 과정에서 아버지가 쓰러져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스님의 병세는 갈수록 악화됐고 결국 아버지의 천도재를 지낸 직후 세연을 접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심지어 강원을 졸업하고 아직 비구계를 수지하지 않았던 젊은 스님이 중병에 걸리자 의탁할 곳이 없어 속가로 돌아가야 했고, 비승비속의 상태로 임종을 맞은 경우도 확인됐다.


교계 최초로 교구차원의 승려노후복지마을을 조성한 고창 선운사 주지 법만 스님은 “스님들의 마지막이 비참할 수밖에 없다면 과연 누가 출가를 할 것이고 어느 스님이 수행에만 매진할 수 있겠냐”며 “스님들이 여법하게 마지막을 맞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야말로 불교발전과 수행풍토 정착을 위한 선결과제”라고 강조했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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