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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불총림 백양사 주지 진우 스님

집착 놓을때 업장 사라지고 좋은 부처님 씨앗 자라난다

상대적 생각과 반복행동 등
과거생활 농축된 것이 업장
상대적 마음만 있으면 중생
상대가 허상임을 알면 부처


참선으로 생각을 비우고
보시로 내 마음을 바꿀 때
인생 항로의 새길도 열려

 

 

▲진우 스님

 


여러분, 오늘은 업(業)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업장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고 보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이 또한 일체유심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업장을 말할 때 ‘자업자득’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보통 힘들다, 힘들다 하는데 내가 힘든 것은 그만큼 업장이 두텁다는 증거에 다름 아닙니다.


이 업장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 모여 있는 것입니다. 행과 불행, 대소, 노소, 희로애락, 극락과 지옥 등 어느 하나가 생기면 다른 쪽도 따라서 생기게 됩니다. 따라서 좋은 것만을 원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나쁜 것만 없앤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반대되는 둘을 다같이 없애는 것이 바로 해탈이고 피안이며 성불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사물과 형상, 욕심과 집착, 정에서 떨어져서 무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두터운 업장이 사라지고 좋은 불종자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업장이 사라지고 좋은 불종자가 생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참선을 해서 생각을 비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시를 비롯한 육바라밀을 통해서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제 마음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마음은 심리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없어지는 것처럼 마음은 그렇게 생겼습니다. 따라서 행복을 구하려는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만큼의 불행한 마음도 생기게 됩니다. 세상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모습은 서로 상대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높은 것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생기고, 큰 것이 생기면 작은 것이 나타납니다. 또 건강이 있으면 병도 있고, 태어나면 반드시 죽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가 생기면 다른 하나가 반드시 생겨나는 필연적인 것들입니다. 욕심이 생기면 반드시 괴로움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러한 이치와 같습니다. 그러니 욕심을 내지 않으면 저절로 괴로움도 없게 됩니다. 이러한 이치를 이해하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는 자명해집니다. 더불어 마음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빈부귀천 또한 상대적인 것입니다. 내가 가난한 것은 부자를 보기 때문이고, 귀한 것은 천한 것이 보이기 때문이지요. 이 또한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가난한 것은 더 가난한 것에 비하면 부자가 되고, 귀한 것은 더 귀한 것에 비할 때 천한 것이 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복과 불행도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비교되는 마음이 항상 교차되기 때문에 행과 불행도 반복된다는데 있습니다. 마음이 시시각각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자신보다 더 크고 높은 쪽만 바라보면 불행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고, 작고 낮은 곳을 바라보게 되면 불행도 사라지게 됩니다. 행복하고 불행한 마음이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니까 어떤 분들은 ‘나는 부자가 되려는 것도 아니고, 권력과 명예욕도 없는데 왜 힘들까’ 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스스로를 너무나 모르는 생각입니다. 이미 이것과 저것을 비교하고 분별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에 나타나는 생각입니다. 비교하는 마음이 없으면 결코 속상하고 마음 아플 일이 없습니다. 업이라는 것은 그렇게 나타나게 됩니다. 오랜 습관이 자기도 모르게 반복되고 생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업은 바로 과거의 모든 것이 농축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갖는 상대적인 생각 역시 버릇이라고 말하는 습관에 해당합니다. 행복하려는 마음, 불행하지 않으려는 마음, 즐거워하려는 마음, 괴롭지 않으려는 마음도 그렇습니다. 행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동시에 불행이 생기고, 즐겁고자 하면 괴로워지는 것이 그것입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자동으로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에 행복하면 할수록 불행도 따르게 됩니다. 따라서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 생사를 없애는 척도라 할 수 있는데, 생각이란 것 역시 상대적으로 이루어져서 시시비비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행과 불행이 교차하고 생과 사가 거듭되어 윤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업이란 이렇게 상대적인 생각과 행동이 반복된 내용입니다. 그래서 업이 좋다는 것은 상대적인 생각이나 감정이 그만큼 적다는 뜻이고, 업이 나쁘다는 것은 그 반대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보고 듣는 모습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돈 많고, 권세와 명예가 높다는 것은 모양에 불과할 뿐입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내 마음이 상대적으로 불편해진 것입니다.


자신의 위치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비교함으로써 불행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인의 마음, 즉 업장에 의해서 행과 불행이 다르고 욕심의 크기에 따라 업장의 폭도 넓어지고 커지게 됩니다. 결국 잘되고 못 되는 것, 잘 살고 못사는 것도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바라보고 생각하는 내 자신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은 내 마음에서 만드는 것인데, 내 마음이 그렇게 된 것은 수많은 시간 동안 계속해서 망상을 하며 습관적으로 버릇이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곧 각자의 업입니다.


이 사바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나의 업이 만들어 낸 모양이고, 그 세상을 바라보는 것 또한 나의 업에서 파생된 내용들입니다. 일체가 마음에서 만들어낸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곧 세상 모든 것이 내 마음이 만들어낸 상대적 세계이기 때문에 실체가 없음을 말합니다. 실체 없는 허상인 실체, 즉 업장만 있을 뿐인데 이것 또한 상대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윤회 반복만 있을 뿐입니다. 이 실체 없는 업장과 상대적인 마음만 있으면 중생이고, 이것을 없애면 바로 부처입니다.


그렇다면 업을 바꾸는 것이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인데, 이것을 풀어가는 과정을 수행이라고 합니다. 수행 중에서도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물론 꿈틀거리는 업장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업이란 상대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기회가 분명히 있습니다. 욕심이 생기고 없어질 때 마음을 비우는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염불을 하거나 화두를 들어 참선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금강석처럼 굳어있는 업장을 녹이려면 그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수행과 더불어 해야 할 중요한 것이 보시입니다. 탐진치 삼독심의 업장을 녹이고 바꿀 수 있으려면, 내 것이라고 고집하고 있는 생각을 비워서 업을 없애야 합니다. 의도적으로 자꾸 비워야 하는데, 이때 보시만큼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주는 마음 없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자신에게 보상심리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여 자신의 불행을 없애고 또한 다른 업을 쌓지 않게 됩니다. 무조건 줌으로서 자신의 마음을 비워나가는 것,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업도 사라지고 상대적 생각도 없애게 됨으로써 윤회에서 벗어나 생사까지 해탈하게 됩니다.


특히 보시 중에서도 법보시가 좋습니다. 그리고 보시와 더불어 나머지 다섯 가지 바라밀도 함께 행해야 합니다.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역시 업장을 소멸하고 마음을 비우는 최적의 수행 지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수행과 육바라밀 실천에 힘쓰다 보면 생사윤회, 도탄, 사바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내 팔자가 어떻다’거나 ‘내 운명이 어떻다’고 비관하고 의기소침해 하지 마시고, 오늘부터는 수행하고 보시하는 삶을 실천하는 것으로 업장을 녹여서 인생의 항로를 바꾸시기 바랍니다.

 

정리=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이 법문은 고불총림 백양사 주지 진우 스님이 6월23일 백양사에서 열린 보름법회 법문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진우 스님은 1973년 백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고불총림선원, 용흥사 몽성선원 등에서 안거 수행했으며 완도 신흥사를 비롯해 광주 관음사, 용흥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2012년 9월부터 백양사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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