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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장이 통곡한다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3.07.03 14:42
  • 수정 2013.07.31 15:32
  • 댓글 0

특별기고-이자랑 교수

지난 달 제194회 중앙종회 본회의에서 논란이 되었던 비구니 호계위원 문제가 지금 불교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율장과 청규, 법리에 밝은 비구”를 호계위원의 자격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던 종헌 제73조 3항을 “율장과 청규, 법리에 밝은 승려”로 개정하여 지금까지 비구스님의 권한이었던 호계위원을 비구니스님도 맡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자 하는 개정안이 제시되었지만, 일부 비구스님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쳐 결국 부결되고 만 것이다. 더구나 이 와중에 나온 비구니 비하 발언은 비구니스님 자신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교계의 재가여성불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논란 속에서 마치 종단의 남녀평등 실현을 방해하는 주범인양 거론되는 존재가 있다. 다름 아닌 바로 ‘율장(律藏)’이다. 교계 신문기사를 참조해 관련 언급을 들어보자. 비구니 호계위원을 반대하는 종회의원 모 스님은 “비구니 스님이 호계위원이 되는 것은 율장에도 맞지 않다. 어떻게 비구니가 비구를 갈마하고 포살할 수 있나. 원로의원들의 반대도 심할 것이다”라고 발언하고 있다.


그러자 한 비구 스님은 “여성 대통령과 여성 대법관이 나오는 상황에서 2600여 년 전의 율장만을 고집하며 시대를 역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며 반론을 제기한다. 종회의원 모 비구니 스님 역시 “2600년 전 만들어진 율장을 근거로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며 시대적 변화를 수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율장에 의하면 비구니가 비구의 잘잘못을 따지며 갈마 혹은 포살을 할 수 없다’는 논리 하에 한 비구 스님이 비구니 호계위원을 반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다른 스님들은 2600여 년 전의 율장을 근거로 시대적 변화를 무시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한다. 율장이 문제인 것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율장이 걸림돌인 것이다. 이 사건 이후 발표된 재가여성단체의 성명서 혹은 교계신문의 기사 등에도 율장을 근거로 비구니의 종단 참여가 제한당하고 있는 점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드러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율장의 입장이다. 정말 율장에 의하면 비구니는 비구의 잘잘못을 따지며 갈마를 할 수 없을까? 대답은 ‘할 수 없다’이다. 아니, ‘할 수 없다’라기 보다는 ‘할 필요가 없다’는 대답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이유는 율장에 의하면 비구승가와 비구니승가는 각각 자치적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비구 간에 발생하는 문제는 비구승가에서, 비구니 간에 발생하는 문제는 비구니승가에게 각각 독립적인 갈마를 통해 해결하도록 되어 있다.


승가의 운영방법을 규정한 율장 「건도부」에서는 “비구들이 비구니들을 위해 갈마를 해서는 안 된다. 비구니들 스스로가 비구니들을 위해 갈마해라”라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반대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단, 비구니가 비구를 경멸하는 등의 양자가 얽힌 문제나 혹은 구족계나 포살, 자자 등과 같은 중대 사안에 대해서만 비구 승가는 개입할 수 있다. 이것이 율장의 입장이다. 만일 현재 이러한 율장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고자 한다면, 비구니를 대상으로 한 독립된 호계원과 호계위원이 마련되어야 한다.


즉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비구로만 호계위원을 구성하여 비구·비구니를 불문하고 판결을 내리고 있는 현 호계원의 구성 자체에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율장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 상태의 호계위원에 비구니 스님을 참여시키겠다는 개정안을 내고, 비구니가 비구를 갈마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가지고 논란한다는 것 자체가 율장과는 동떨어진 시각이다.


▲이자랑 교수
우리는 2600여 년이라는 시간을 들어 율장의 가르침을 너무 쉽게 폄하하며 외면하곤 한다. 하지만 2600여 년 전의 승가보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더 뒤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원수나 수행 능력이나 모든 면에서 뒤떨어지지 않는 비구니 스님들이 왜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그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는 것일까? 억울한 것이 비구니 스님뿐이겠는가. 율장 역시 통곡하고 싶을 것이다.

 

동국대 불교학술원 이지랑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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