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논문 쓰면서 인연
설법서 강한 확신 느껴
스승이 나, 내가 곧 스승
스승이신 훈산 박홍영 거사님을 처음 뵌 것은 박사과정을 마칠 즈음이었다. 어느 날 지도교수께서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주시며 “자네가 선(禪)을 전공하니 한 번 찾아가보라.”고 하셨다. 전화를 드리자 주말마다 법회가 있으니 관심이 있으면 한 번 와 보라고 하셨다. 경전을 읽는 모임의 몇몇 회원들과 함께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뒷자리에 앉아 설법을 들었다.
‘임제록’을 가지고 말씀을 하시는데, 지금까지 혼자서 여러 번 읽었던 ‘임제록’과는 매우 다르게 말씀하셨다. 그분은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냥 자신의 말씀을 하고 계셨다. 책의 내용을 말씀하셨다면 듣고서 이해할 것이 있었겠지만, 그분의 말씀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냥 멍하니 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그러나 비록 말씀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분에게는 흔들림 없는 강한 자신감과 확신 같은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후 매주 그 법회에 나갔다. 처음에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법회의 분위기가 어색하기도 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익숙하고 편안하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꾸준히 법회에 참석하였다. 나는 그냥 말없이 절을 올리고는 앉아서 설법만 들었고, 그분도 뒤에 앉아 있는 나에게 말도 건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내가 찾고자 하는 무엇이 가까이 다가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통과할 수 없는 어떤 장벽이 가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비록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들긴 하였지만, 앞을 가로막은 그 벽은 어떻게도 해볼 도리가 없었다.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겠다는 생각까지 들자, 나는 완전히 좌절하여 반쯤 죽은 사람같이 되어서 영혼은 없고 몸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설법을 듣고 있는데, 그분은 손가락으로 방바닥을 톡톡 두드리면서 “이것이 선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그 말씀이 내 귀를 확 파고들면서 가슴 앞을 가로막고 있던 벽이 사라졌다. 죽어가던 사람이 살아난 것 같았다. 그분의 말씀이 또렷이 들리면서 그분이 말씀하시는 곳이 어디인지 알 것 같았다. 그분의 말씀이 이전과는 달리 술술 들어오고, 그분이 계신 곳에 나도 들어온 것 같았다. 끝없이 무한한 허공에 발을 디딘 것 같았다. 그렇게 그분은 나의 영원한 스승이자 영혼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 뒤로도 계속 스승님을 의지하여 설법을 들으며 공부하였다. 스승께선 늘 말씀하시길, “둘이 되지 말고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비록 허공에 발을 디뎌 일없이 안락해지긴 하였으나, 나에게는 편안한 출세간과 불편한 세간이라는 두 개의 세계가 있었다. 아직 완전한 하나라는 말이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불편함이 있었다.
|
김태완 부산 무심선원 원장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