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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가 사장은 아니다

기자명 법보신문

주지(住持)란 무엇일까? 국어사전 상으로는 ‘절이 잘 유지되도록 총괄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하는 승려’다. 뭔가 부족해 보인다. 마치 ‘회사가 잘 유지되고 발전하도록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최고 책임자’ 의미의 사장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질문을 좀 달리해 보자. 주지의 참다운 본질은 무엇일까? 당장이라도 숨이 막힐만한 질문이다. 세상 그 무엇이든 ‘본질’로 들어가면 난해하기 마련 아닌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숨통을 틔어주는 책 한 권이 있다. ‘산방야화(山房夜話)’다.


장경각이 편 낸 선림고경총서에도 포함돼 있는 이 책은 원나라 중봉명본 스님의 광록 11권에 들어 있는 문답집으로, 수행병통 치료부터 생사해탈, 깨달음의 문제까지 조목조목 설득력 있게 전개되어 있다.


한 객승이 단 한 철의 주지 소임도 맡지 않은 중봉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의 도는 온 세상에 널리 알려져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스님께서는 주지를 맡아 불조의 심법을 널리 피려 하지 않으십니까?” 이 객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주지 소임은 외면한 채 절개만을 지키려다가는 죄인이 될 수 있다는 ‘엄포’마저 놓았다. 이에 중봉 스님은 단지 믿어서 이해한 경지(신해, 信解)에 머물러 있는 자신은 주지 자격이 없다고 단언하며 ‘주지 본질론’을 편다.


“주지(住持)라는 소임의 참다운 본질은 무엇일까요? 멀리는 선불(先佛)의 가르침을 이어받고, 가까이는 조사들의 교화방편을 지녔으며, 안으로는 자신의 진성(眞誠)을 간직했고. 밖으로는 인간과 천상이 의지할 믿음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부처님 법을 체득한 사람으로서 대중교화 방편도 근기에 따라 지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의 총림 방장을 연상시킨다. 중봉 스님의 시각으로 이 시대의 주지를 들여다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정책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급속히 표면화된 이판과 사판의 이원화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찰불사와 관련된 정부와 지자체 사이의 역학관계까지 고려하면 사판의 전문성은 더욱 요구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주지 소임의 본질을 왜곡할 수는 없다. 주지 뿐 아니라 장로, 수좌, 유나, 감원, 탄두, 지객 등 사찰의 모든 소임이란 것이 따지고 보며 작게는 ‘대중화합과 정진도모’를 위한 것이고 크게 보면 ‘전법과 대중교화’를 위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방장이나 수좌의 선교 경지는 아니더라도, 인간과 천상이 의지할 믿음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참다운 정성을 다할 수 있는 ‘진성’을 가진 스님이 주지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조계종 교구본사 주지 선거 때마다 발생하는 불미스러운 일은 주지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 마곡사에서 발생한 최근 사건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새로운 주지 선거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출마 유력후보와 핵심 지도자에 대한 근거 없는 음해와 흑색선전 등이 잇따르고 있다. 특정인을 겨냥한 음해성 문자를 불특정 다수에게 보낸 행태는 기존의 음해성 편지 발송보다 더 유치하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적어도 ‘주지’를 ‘사장’ 쯤으로 인식한 사람으로부터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 승가의 위의를 깎아 내리는 행태다.


어느 사찰이든 사찰의 위상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는 스님이 주지가 되어야 한다. 선거권을 가진 마곡사 대중 역시 ‘주지’를 추천하고 싶지 ‘사장’을 추천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중봉 스님이 준엄하게 이른다. 교화가 잘되고 못되고, 법도가 제대로 서고 못서는 원인은 주지의 본래 임무를 수행하느냐, 아니면 주지 자리를 탐내는 명예 때문이냐에 달려 있다고 말이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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