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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불선원장 월호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인생의 스트레스가 수행의 꽃을 피운다

고통을 참는 사바의 삶에
스트레스 피하기는 불가능
고통 다스리려는 노력이
수행의 동기이자 원동력


화내는 나 관찰 연습으로
나와 다른 허상임을 알면
고통도 내 것 아님 깨달아

 

 

▲월호 스님

 

 

현대 사회를 스트레스 사회라고 합니다. 현대인들, 특히 도시인들은 누구나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잘 활용해서 꽃을 피워야 합니다. 제가 난초를 몇 개 키우는데 꽃이 아주 잘 핍니다. 평소 도통 꽃이 안 피던 난도 제가 키우면 꽃을 피우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제가 화초를 아주 잘 키우는 재주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니 화초가 꽃을 피운다는 것은 자손을 남기기 위한 것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생명에 위협을 느낄 때, 마지막 수단으로 꽃을 피운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물도 제때 안주고 제대로 관리를 안했거든요. 그러니 화초 입장에서는 ‘월호 스님만 믿고 있다가는 언제 죽을지 모르니 빨리 꽃을 피워 후손을 남겨야겠다’고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 제가 화초를 잘 키운 것이 아니라 저 때문에 화초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 꽃을 피운 것입니다.


이처럼 스트레스는 오히려 꽃을 피우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스트레스가 없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이용해 깨달음의 꽃을 피워야 합니다. 스트레스가 없으면 수행도 없고 수행이 없으면 진전도 없습니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돈 많고 원하는 바가 모두 이뤄진다면 아마 여러분도 이 자리에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스트레스가 있을 때 사람은 자기를 돌아보게 됩니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전혀 없기를 바랄 필요도 없습니다.


일이 잘 풀리면 ‘웬일이지’ 이렇게 생각하고, 일이 잘 안 풀리면 ‘당연하지’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반대로 생각합니다. 이 세계는 극락세계가 아니고 사바세계입니다. 사바세계는 인고토,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세상입니다. 지옥은 고통만 있는 세계고, 극락은 즐거움만 있는 세계지요. 그에 비해 사바세계는 고통 반, 즐거움 반인 세계입니다. 그래서 공부하기에는 가장 좋은 세계입니다. 그래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말씀드리려는 요점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화가 나지요. 화가 날 때면 우선 그것을 잘 관찰해야 합니다. 화가 난다는 점을 알아차리면 화를 내는 대상에 이름, 닉네임을 붙이세요. 예를 들어 제 안에서 화가 나면 ‘월호가 화를 내는구나’하고 그것을 관찰합니다. 저는 법명이 월호일 뿐 월호 그 자체가 아니지요. 그러니 저는 제3자의 입장에서 화를 내고 있는 월호를 바라보게 됩니다. 즉 스트레스를 ‘나’의 것으로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이름뿐인 ‘월호’라는 허상의 것으로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후에는 그 상황을 말로 표현합니다. “월호가 화를 내고 있구나”하고 두세 번 말로 표현하면 상황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런 일이 익숙해지면 냉철한 지혜가 생깁니다. 흥분하거나 격양되면 실수를 하게 되는데 이런 방법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 지혜롭게 상황을 보고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려움을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관찰의 종교입니다. 초기불교의 수행법도 ‘사념처’ 즉 몸보기 마음보기 오온보기로 관찰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수행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몸과 마음을 관찰하지 않으며 백년을 사는 것보다, 몸과 마음을 관찰하며 하루를 사는 것이 더욱 값지다’고 하신 것입니다.


스트레스 역시 정체 파악이 우선입니다. 스트레스는 주인이 아니고 손님임을 알아야하고 스트레스가 일어나면 곧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이름을 붙입니다. 이름은 현상, 임시 이름일 뿐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고 이름이 반야바라밀일 뿐이다’는 ‘금강경’의 말씀과도 통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살펴보는 것입니다. ‘오는 손님 막지 말고 가는 손님 잡지 말라’는 말이 있지요. 스트레스가 없는 날은 공치는 날입니다. 스트레스가 있어야 진전이 있는데 스트레스가 없으니 공치는 날이지요. 그러니 오는 스트레스를 막지 말고 가는 스트레스를 잡지 말아야 합니다. ‘대승기신론’을 보면 ‘범부는 잡념이 생겨나서 머물렀다 사그라져야 비로소 알아차린다. 초발심보살은 잡념이 생겨나서 머무르는 동안 알아차려 내보낸다. 일정 경지에 오른 보살은 잡념이 일어나자마자 알아차려 내보낸다. 보살십지에 이른 이는 방편으로 생각 일으키나 일으켰다는 생각이 없다’는 가르침이 나옵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얼마나 빨리 알아차려 없애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경지가 구분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음공부의 단계를 이와 같은 방법으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각자 스스로의 경지를 측정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한 후 본래 공부로 돌아가면 됩니다. ‘보이는 것을 보기만 하고, 들리는 것을 듣기만 하고, 느끼는 것을 느끼기만 하고, 아는 것을 알기만 하리라. 이렇게 한다면, 그대는 그것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과 함께 하지 않을 때 거기에는 그대가 없다. 이것이 고통의 소멸이다’라는 말씀이 ‘우다나 바히야경’에 나옵니다. 이것은 바히야라는 어부에게 전하신 가르침, 바히야경의 전문입니다. ‘볼 때 보기만 하고 들을 때 듣기만 하고 느낄 때 느끼기만 하고 알 때는 알기만 하라. 그럴 때 거기에 그대는 없다’는 것입니다. 즉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보고, 듣고, 느끼고, 앎만 있다. 무아입니다. 짧지만 불교의 모든 핵심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바히야는 그 자리에서 바로 아라한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위와 같이 된다면 천만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번뇌가 치성한 경우에는 응급처방으로 ‘모든 고통 사라지는 진언’을 외웁니다. 고통이 극심한 경우 일단 응급처방을 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 쓰와하’ 즉 ‘가자, 가자, 건너가자! 입자에서 파동으로!’라는 ‘반야심경’의 마지막 진언입니다.


입자와 파동은 무엇일까요. 현대 과학의 최근 용어 중에 ‘관찰자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세포를 구성하는 모든 원자를 계속 분해해서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최소단위의 입자로 만든 후 ‘미립자’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는 이 미립자가 입자인지 파동인지를 관찰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미립자를 입자라고 생각하고 보면 입자로 나타나고, 파동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파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관찰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입자로도 나타나고 파동으로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입니다. 불교의 공 사상이 현대 과학에서 입증된 것입니다. 실체가 없이 유심조,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입자로서의 삶을 살 것이냐 파동으로서의 삶을 살 것이냐는 결국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입자일 수 있고 파동일 수 있습니다. 입자로서의 삶은 나, 내 몸, 내 가족에 국한된 삶입니다. 파동으로서의 삶은 너와 나가 물결로서 공생하는 것입니다. 입자의 삶에서 파동의 삶으로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은 자기를 넓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본래 부처입니다. 중생이 부처되기는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지만 본래 부처가 부처되는 것은 본래의 모습을 확인만 하면 되니 참 쉬운 것입니다. 그길이 행불입니다. 부처의 행을 수행하는 것이 행불이고 성불은 행불로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 모두 행불하셔서 성불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이 법문은 동산불교대학총동문회(회장 이호득)와 법보신문이 7월6일 동산불교회관에서 개최한 제9회 명사초청특강에서 월호 스님이 ‘스트레스가 꽃을 피운다’는 주제로 전한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월호 스님은 동국대 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쌍계사 조실 고산 스님 문하로 출가했다. 쌍계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제방선원에서 정진했으며, 고산 스님으로부터 강맥을 전수받았다. 불교TV ‘삶은 환타지다’를 진행하였으며, 현재 ‘월호스님과 함께하는 BTN 즉문즉설’를 진행하고 있다. 쌍계사 승가대학 학장이며 조계종 교수아사리, 행불선원 선원장으로 후학 양성과 포교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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