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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창원시 불교연합회장 원행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서로 나누는 삶의 길목에서 행복은 시작된다

삶 의미 불교서 찾겠다고
성철 스님 은사로 출가


참회원 확대해 정인사 중건
명실상부 복지 ‘금강’설립


국수마다 김 한 장 넣었다가
성철 스님으로부터 불호령

 

 

▲ 원행 스님은 ‘입보리행론’의 말을 인용해 “모든 행복은 남을 위한데서 오고, 모든 불행은 자기를 위한데서 온다”고 강조했다.

 

 

창원 팔용산 아래에 자리한 정인사(正印寺)! 도심 사찰로서는 제격으로 앉아 있다. 그런데 절 이름이 낯설다. 정인! 아마도 ‘부처님 지혜로 우주 만물을 통찰한다’는 해인(海印) 의미와 일맥상통할 터. 그러니 정(正)은 곧 법(法), 부처님 말씀이요 가르침일 것이다. 기존의 참회원을 정인사로 중건한 장본인이 원행 스님이다. 정인사와 원행 스님의 인연은 198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중심에 ‘해인사 호랑이’ 성철 스님이 자리하고 있다.


원행 스님이 출가한 건 1974년이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미 산사로 걸음을 내딛었다. 막연하게나마 ‘불교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스님은 무작정 직지사로 향했다. 직지사로 향한 연유는 단 하나. 영천이 고향인 스님의 귀에까지 ‘도가 높다는 관응 스님이 직지사에 주석하고 있다’는 소문이 닿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가는 허락되지 않았다. ‘절 살림이 어려워 더 이상의 행자를 받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는데, 스님도 후에 안 일이지만 이는 사실이었다.


출가에 뜻을 둔 스님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다시 경산 환성사로 향했다. 환성사는 스님을 받아들였지만 스스로 산문을 나왔다. 가족으로부터 출가 허락을 받고 입산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출가 결심은 2군사령부 호국 무열사에서 다시 섰다. 지금은 고인이 된 전 동국대 장충식 교수의 특강을 듣던 스님은 ‘행복의 길은 불교에 있다’고 확신했다. 군 제대 후 성철 스님을 은사로 백련암으로 출가했는데 그 때가 1974년이다.

‘시심마’화두를 든 스님은 해인사 선열당과, 퇴설당을 거쳐 수도암, 극락암, 봉정사, 복천암 등 전국의 선방에서 정진해 갔다. 그러던 중 1984년 동안거를 앞두고 백련암으로 다시 돌아왔다. 건강조절 차 단식에 들어갔는데 이게 화근이었다. 이후 보식(補食)만도 한 달 동안 했다 하니 당시 법체(法體)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된다. 이를 지켜 본 성철 스님은 ‘몸부터 추슬러야 한다’며 원정 스님이 주석하고 있던 청량사로 보냈다. 청량사에서 3년여 세월을 보낸 후 1988년 동안거 때 창원에 닿았다.


당시 창원에는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고 있던 신도들이 마련한 ‘참회원’이 있었다. 성철 스님은 평소 참선수행에 앞서 ‘참회하라’ 일렀을 정도로 참회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원행 스님은 참회원 옆에 있던 집까지 거둬 5년 동안의 불사를 통해 지하1층 지상 3층의 도심사찰로 중건했고, 절 이름을 ‘정인사’라 했다.


정인사 중건 후 원행 스님의 행보는 ‘복지’로 향했다. 지금의 사회복지법인인 ‘금강(金剛)’은 유아 보육시설 외에도 노인복지시설과 노인보호전문기관, 노인 일자리 창출 지원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정확히는 1996년 금강 어린이집이 개원됐고, 금강 노인종합복지관은 2005년 개원했다. 금강 어린이집은 당시 정부 보조금 한 푼 받지 않고 자체 부담금으로 개원했다.


의아한 건 선방 수좌가 어떻게 어린이 집을 개원할 생각을 했을까 하는 점이다. 평생 수행에만 정진했던 스님으로서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 하나도 제대로 마련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을 터인데 말이다.


“현재 금강복지관장을 맡고 있는 곽인철 거사와의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 원행 스님은 기존의 참회원을 중건해 정인사라 이름했다.

 


처음엔 스님도 어린이 포교에 꽤나 애를 먹었다고 한다. 어린이 포교의 중요성을 인식해 시작은 했지만 레크리에이션 하나 실행하는데도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 강사를 초빙했어야만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원불교 신도에게도 부탁을 했다고 하니 그 고충이 여간 아니었을 터. 그 때 군에서 제대한 곽인철 거사와 인연이 닿았다. 이미 복지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곽 거사는 스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 도왔고 이내 복지법인 설립까지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원행 스님과 곽인철 관장과의 인연과 원력으로 가꿔진 ‘금강’은 통합 창원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명실상부한 복지관으로 우뚝 서게 됐다.


하지만 의구심이 말끔하게 풀리진 않았다. 곽 거사와의 인연도 스님의 원력이 있었기에 닿았던 것 아닌가. 몹쓸(?) 집요함에 스님도 할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차 한 잔 내었다. 그리고는 그 언제인지 모를 과거를 회상하는 듯했다.


“몸을 추스르고자 단식을 했지만 그 전에 혹독한 상기병에 걸렸습니다.”


혼침과 함께 수행 중에 조심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상기병’이라고 한다. 수행 중의 몸 상태는 물의 기운(찬 기운)이 올라가고 불의 기운(뜨거운 기운)은 내려가는 ‘수승화강 (水昇火降)’이 원칙인데 반대로 화기가 올라와 뇌를 침범하면서 몸이 망가지는 현상이 ‘상기’다. 이 병이 심화되면 영가가 침범하기도 하고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하는데, 이때는 들었던 화두를 잠시 내려놓고 쉬든가 아니면 염불, 사경 등의 다른 방편을 써야 한다는 게 선지식들의 한결같은 충언이다. 성철 스님도 이를 간파하였기에 원행 스님을 청량사로 내려 보냈던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때 정진의 힘이 한풀 꺾였습니다.”


‘한 풀 꺾였다’는 한마디에 많은 의미가 농축된 듯했다. 아쉬움 너머의 애석함이라 할까? 지금도 화두를 놓고 있지 않는 원행 스님이지만 선방에서 정진하는 스님은 모두 ‘천복’을 타고난 수행자라고 말한다. 선방에서의 수행정진이란 깊은 시절인연이 닿아야 가능한 것임을 그 누구보다 철저하게 느꼈기 때문이리라.

 

세간에서 정진·보시하는
재가불자 원력·정성 대단


나에 집착 할수록 불행
무아 외면 말고 직시해
삶의 변화 일궈야 ‘불자’


청량사에 이어 참회원을 맡아 주지 소임을 맡을 즈음엔 상기는 완전히 다스려진 상태였다. 이 때 새로운 파문이 원행 스님 가슴에 일었다.


“거센 세파를 헤쳐가면서도 보시하며 정진해 가는 신도님! 그 분들의 정성과 힘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옛 스님들이 말한 ‘간장 한 방울도 신도들의 피 한 방울’이라는 뜻을 그 때서야 실감했다며 출가 직후 공양주 소임을 맡았던 당시, 성철 스님과의 일화 한 토막을 전했다.


어느 날, 점심 공양으로 국수를 내놓게 되었다. 국수 한 그릇, 한 그릇을 정성스럽게 담으며 김 한 장씩을 잘게 부숴 넣었다. 국수 위에 얹을 고명이 신통치 않으니 김이라도 넣어야 제 맛일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평소에도 대중 스님들의 공부 점검 차 여기저기를 둘러보시곤 하던 성철 스님이 부엌문을 열었다. 새로 온 사미가 부엌일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한 번 볼 심산이었을 것이다.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놈아, 김 한 장이면 대여섯 그릇에 넣어도 남것다. 국수 한 그릇에 김 한 장을 다 넣어! 네가 간덩이가 부었구나!”


‘참회하라, 참선하라’ 하시던 성철 스님이 강조했던 게 또 하나 있었다고 원행 스님은 전했다.


“출가인이라면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만을 위해, 내가 남보다 더 많이 갖고, 더 많은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수행인은 그 반대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화두만 들었을 때는 그 의미를 몰랐는데 화두를 잠시 내려놓고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다 보니 그 말씀이 너무도 간절하게 다가왔습니다. 불현듯 한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나는 받는 삶만 살았구나!”


회광반조 속에서 건져 올린 그 한 생각이 새로운 원력, 복지불사로 태동된 것이다. 궁금했다. 정인사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하고 싶은지 말이다. 원행 스님은 산티데바의 ‘입보리행론’을 꺼내 들었다.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그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누구든 불행한 삶을 살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 불행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무명에서 오는 것일까? 하지만 이건 너무 원론적이다.


“고통은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합니다. 마음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기에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겠습니까? 간단합니다. 마음에 ‘나’라는 것이 생기면서 ‘나와 너’, ‘나의 것’과 ‘너의 것’이라는 분별심이 생기기에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나’에 집착하는 한 고통은 떠나지 않습니다.”

 

 

▲ 원행 스님이 대표로 있는 사회복지법인 ‘금강’은 노인복지에도 깊은 관심을 쏟고 있다.

 


원행 스님은 지금 ‘무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연기법을 통해 ‘무아’를 설하셨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2500년이 넘도록 설해진 이 ‘무아’는 아쉽게도 사람들 가슴에 쉽게 스며들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인식 차이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강도가 다를 것이니 한마디로 가름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부처님께서 전하신 ‘무아’를 대중들은 외면하려 한다는 겁니다. 외면한다는 말이 다소 거슬릴 수 있겠지만 사실입니다. 교리책을 통하든, 학자들의 강연을 통하든, 큰스님들의 법문을 통해서든 무아에 대한 설을 불자라면 일생 동안 끊임없이 듣게 됩니다. 그러니 무아의 이치를 모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가슴으로, 진정으로 ‘아, 정말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뿐입니다. 왜 일까요?”


‘무아’를 택한 순간 내가 가진 그 무엇인가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무엇이 재산이든, 명예든, 권력이 든 말이다.


“확철대오 경지의 무아체득까지 바라는 건 아닙니다. 무아의 이치를 알았다면 중도의 삶을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내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나눠 보고자 하는 마음, 나에게 좀 넘쳐 있는 것을 덜어 타인에게 주고자 하는 마음을 내보자는 겁니다.”


나눔의 세상, 보시의 세상을 다 함께 구현해 보자는 뜻의 다름 아니다.


순간, 스님이 처음에 던진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행복과 불행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적천 스님(산티데바)은 그에 대한 명철한 답을 제시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행복 어디에서 오는가. 그건 남을 위한데서 온다네. 이 세상의 모든 불행 어디에서 오는가. 그건 자기를 위한데서 온다네.’ 부처님 말씀 그대로입니다.”


원행 스님이 정인사를 중심으로 수행과 복지불사를 펼치는 이유가 확연해졌다. 하루 한 번이라도, 아니 한 달에 단 한 번이라도 ‘나’보다는 ‘남’을 위한 마음을 내어 실천에 옮겨 보자는 뜻을 세상에 전하고 싶은 것이다. 정인사가 이 사바세계에 명징하게 각인시키고자 하는 건 다름 아닌 ‘나눔’이요 ‘보시’였다.


한동안 고사하던 창원불교연합회장직을 맡은 만큼 원행 스님의 뜻은 더 넓게 펼쳐질 것이다. 원행 스님 친견 후 먼 발취에서 정인사를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정인(正印)이 곧 해인(海印)이었다. 그 정(正)에 원행 스님의 법이 하나 더 더해질 뿐이다. ‘나눔’과 ‘보시’의 프리즘 하나로도 세상 이치는 확연하게 보인다는 사실을 원행 스님은 수좌 특유의 선지로 통찰했던 것이다. 지금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정인사다.


‘모든 행복은 남을 위한데서 오고, 모든 불행은 자기를 위한데서 온다’ 했던 산티데바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말을 많이 할 필요 어디 있는가. 지혜로운 이는 남을 위해 살 것이고, 어리석은 이는 자기를 위해 살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차이를 잘 보아라.’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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