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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중앙승가대학총장 종범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인과를 믿고 원력 세워야 지혜로운 삶이 가능하다

몸은 좋은 목적 위해 일하는 수단
동시에 감각이 모인 정신덩어리


내가 오늘 어떤 종자 심었는지
잘 알고 좋은 결실 거둬야 행복

 

 

▲종범 스님

 


오늘은 건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건강에는 신체 건강, 정신 건강, 사회 건강, 지혜 건강 네 가지가 있습니다.


건강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신체, 몸이 건강해야 합니다. 몸은 목적물이 아니라 사용물입니다.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손은 일할 수 있어야 하고 눈은 볼 수 있어야 하고 귀는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농부로 비유하자면 몸은 쌀이 아니라 농기구입니다. 농기구를 이용해서 일을 하면 곡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허약하지 말아야 합니다. 튼튼해야 합니다. 아름다움의 대상이나 뽐내는 대상이 아니라 좋은 목적을 위해 몸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몸의 건강입니다.


가끔 지하철을 타보면 성형수술 광고가 있는데 거기 보면 수술 전, 후가 딱 나와 있더군요. 수술 전후 모습은 달라지지만 수술 전에도 눈은 보는데 의미가 있고 코는 숨 쉬는데 의미가 있고 입은 말하고 밥 먹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눈은 볼 수 있으면 건강한 것이고, 귀는 들을 수 있으면 건강한 것입니다. 질병이 없고 허약하지 않아서 뭐든지 할 수 있고 뜻대로 움직일 수 있으면 그것이 곧 신체의 건강입니다.


다음으로 정신 건강입니다. 몸은 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정신 덩어리입니다. 어디를 봐도 정신이 있습니다. 손을 눌러봐도 감각이 있고 다리를 눌러봐도, 머리를 눌러봐도 감각이 있습니다. 온몸이 정신 덩어리입니다. 그래서 오온육식(五蘊六識)이라고 합니다. 몸이 모두 정신덩어리라는 뜻입니다.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 오온아닙니까. 색은 지수화풍(地水火風)이니 물질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수상행식, 즉 정신덩어리가 있는 것입니다. 눈도  정신이고 귀도  정신입니다. 그러니 정신이 건강해야 합니다.


보고 듣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 다 정신입니다. 눈은 감각적으로 보지만 정신은 의미를 봅니다. 정신이 없으면 의미를 못 봅니다. 모든 동물이 두뇌가 있지만 파충류는 감각 두뇌밖에 없어 오로지 촉각에 의지해 움직이고 개나 고양이 등은 감정도 있고 기억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거기서 더 발전을 했죠. 그것이 지혜입니다.


정신이라는 것은 몸 속에서, 시간 속에서, 공간 속에서 이뤄집니다. 대상을 갖고 나타나는 것이 정신이고 대상을 초월해서 있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리는 항상 대상 속에서 삽니다. 태어나면서 부모를 만났죠. 어머니 아버지를 못 만났다면 우리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만남으로 이뤄지는 것이 세상이고, 세상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정신입니다.


이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받은 것은 받은 대로 기억하고 못 받은 것은 못 받은 대로 기억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질 못합니다. 받은 것은 기억 못하고 못 받은 것만 기억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정신입니다. 좋았던 시절, 좋았던 일들, 이런 것들은 잘 모르고 안 좋았던 것만 기억합니다. 기억을 조사해보면 좋은 것 보다 그렇지 못한 것을 기억하는 것이 여러 배가 더 높답니다. 억울한 것, 슬픈 것, 분한 것, 속 터지는 것만 꽉 차 있습니다. 이게 심해지면 ‘노이로제’라고 하는데 노이로제란 받은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건강한 정신은 받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못 받은 것에 대해서는 생각 안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항상 건강할 수 있습니다. 받은 것을 많이 기억하고 찾아내고 고맙게 여기면 기쁨도 커지고 희망도 생깁니다. 기쁨, 희망이 부족하면 정신이 허약한 것입니다.


다음에는 사회가 건강해야 합니다. 사회는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사회라는 말은 일반 용어고, 불교용어로는 인간입니다. 사회가 건강하다는 것은 공평하다는 것입니다. 공평치 못한 사회는 건강치 못한 사회입니다. 공평성, 공정성이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공평은 똑같은 권리를 부여하고 기회를 고루 주는 것이고, 공정은 적용을 하는데 있어 일관성 있게 잘 관리하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는 영남이 중심이 됐습니다. 80년대 민주화에서는 호남이 중심이 됐습니다. 이 두 가지를 똑같이 인정해야 공평한 사회입니다. 우리나라가 민주화가 안됐다면 우리나라의 국격이 지금과 같이 올라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두 가지를 서로가 존중하는 것이 공평한 것입니다. 그런데 영남은 호남을 이상하게 보고 호남은 영남을 탓하곤 합니다. 그렇게 되면 건강치 못한 사회입니다.


마지막은 지혜 건강입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지혜가 계발됐기 때문입니다. 지혜가 계발되지 않으면 동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혜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첫째 신지(信知)가 있어야 합니다. 믿는 지혜입니다. 믿는 지혜란 인과를 믿는 마음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항상 공짜를 바랍니다. 원인을 심은 그 자리에서 열매가 열리지 종자가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열매가 열리지 않습니다. 그것을 믿는 마음 자체가 지혜입니다. ‘믿음은 도를 이루는 뿌리가 되며 그 자체로 공덕의 어머니도 되며 믿음은 반드시 여래의 지위에 도달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믿음이 있으면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부모가 있고 우리를 도와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을 모르면 보은도 못합니다. 인과를 알고 그것을 믿는 것이 전부 지혜입니다. 이런 지혜가 있을 때 행복하고 건강합니다. 내가 오늘날 어떤 종자를 심고 있는지 철저히 알고 좋은 종자를 심어 좋은 결실을 거두는 삶, 그것이 행복한 삶이고 나를 더 크게 펼쳐가는 행위입니다.


두 번째는 각지(覺知)가 있어야 합니다. 각지는 지혜 중의 지혜입니다. 깨달음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고 모든 사물의 근원을 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깨달음에서 나온 지혜가 각지입니다. 깨달은 지혜가 나타나면 억만년 전이든 후든 보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장소를 옮기든 안 옮기든 다 볼 수 있습니다. 이 깨달은 지혜 없이 아무리 여행을 다녀본들 갔다 오면 다 잊어버립니다. 그러니 사진만 찍어대는 거겠죠. 그리고는 어디다 뒀는지 모릅니다. 이게 오늘날 현상입니다. 저장만 해놓으면 뭐합니까. 지금도 저장 해놓고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고 안합니까. 못 찾겠으니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깨달은 지혜는 한 티끌 속에 세상이 다 있음을 보고 한 찰나가 곧 무량겁임을 보는 지혜입니다. 깨달은 지혜를 얻는 것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지(願知)가 있습니다. 원하는 지혜, 이것이 또 중요합니다. 왜 사느냐, 몇 년을 살든 삶의 희망과 목적과 목표,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혜가 있어야 하고 그래야 원력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화엄경 제일 마지막 권이 보현행원품입니다. 보현보살의 원력은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 없이 다하고, 중생 번뇌가 다해도 나의 이 보현행은 멈추지 않겠다’입니다. 그래서 원력의 으뜸이 보현보살입니다.


신심으로부터 시작해서 깨달음을 얻어 행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지혜의 길입니다. 신심과 원력으로 공덕을 닦고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 사람은 지혜가 뿌리입니다. 사람이 움직이는 것은 지혜니 지혜가 건강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인과를 믿고 노력해야 합니다.


건강은 나의 정신에서, 나의 삶에서 옵니다. 또 내가 이 사회에서 건강한 시민으로 깨어있어야 올바른 선택을 하고 사회가 건강해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지혜가 건강해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을 수 있으며, 내가 좋은 종자를 심어야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신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지혜를 갖고 항상 노력하고 정진해야 합니다. 인과를 믿고 원력이 있어야 합니다. 신심과 원력으로 정진 해나가면 깨달음이 깊어지고 깨달음이 깊어지면 하나의 티끌 속에서 우주를 다 봅니다. 한 순간 속에서 영원한 시간을 봅니다. 그것은 깨달음으로 밖에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심과 원력으로 그 깨달음을 깊이 하는데 목표를 두고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이 법문은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가 봉행한 ‘큰스님 초청 백중 49재’ 기간 중 7월24일 전 중앙승가대학 총재 종범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종범 스님

통도사에서 벽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통도사 승가대학 강주(1971~1976)를 역임했다. 1980년 3월 중앙승가대 강사를 시작으로 1990년부터 교수로 재직했으며 2000년 제3대 총장에 취임한 이후 8년 간 중앙승가대학교의 교수와 학인들을 이끌었다. 사회복지법인 승가원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2007년 제5회 대원상 승가부문상을 수상했다. 현재 중앙승가대학교 명예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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