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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 최고 권력은

기자명 법보신문

지난해 승려 도박 영상이라는 메가톤급 폭로 사건이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건만, 또 다시 조계종 최고위 승려들의 억대 원정도박을 폭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힌 사건이라는 진단도 있지만, 속사정이야 어떻든 간에 일단 터져 나온 자극적인 폭로 내용은 수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그리고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적지 않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이 폭로로 치명적 상처를 입게 될 주인공은 누구인가. 승가 내지 그 구성원, 나아가 한국불교일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이 사실을 모를 리 없건만, 언제부턴가 ‘내부 비리 폭로, 청정승가 회복’이라는 미명 하에 승려 스스로가 승가의 허물을 적극적으로 세상에 알리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중생을 선도(善導)하며 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야 할 승려들이 오히려 일반사회를 향해 자신들의 범계 행위를 고백하고, 나아가 철저한 조사 및 엄중한 판결까지 호소하는 이 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고발자 승려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려는 움직임도 있지만, 끊임없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는 조계종의 승가 역시 자정 기능을 상실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자정 기능의 상실에는 종단 권력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근원에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종단의 최고 권력자 내지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세속의 경우와 다를 바 없이 종단의 모든 이해관계를 통제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건 종단 내부에는 현재의 권력에 반대하는 세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반대 세력들은 계기가 주어지면 승가 내부의 치부를 외부에 폭로한다. 현재 종단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권력에 묻혀 자신들의 주장이 결코 수용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에 승가가 아닌 일반사회의 법을 통해 상대방을 단죄하고 자신들의 입지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승가 내부에 세속적 절대 권력이 존재하는 한 이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특정한 권력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공동체가 피하기 어려운 이러한 혼란을 부처님께서는 예측하셨던 것 같다. ‘대반열반경’에 의하면 부처님은 자신이 승가를 이끌어온 지도자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며, 자신의 뒤를 이어 승가를 이끌어 갈 특별한 후계자 역시 지명하지 않고 열반에 드셨다. 대신 ‘칠불쇠퇴법’의 가르침을 통해 승가의 영원한 번영을 보증하는 운영 방법을 남기셨다. 바로 “비구들이 자주 모여 승가의 화합과 청정 상태를 서로 점검하고 율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율장을 통해 ‘여법한 갈마(磨)’, 즉 화합갈마의 실천으로 구체화된다.


화합갈마란 하나의 승가를 형성하고 있는 비구 전원이 한 자리에 모여 승가의 일을 논의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는 것을 말한다. 새로운 출가자에게 구족계를 주는 일을 비롯하여 소임자의 선출, 범계 여부의 확인과 처벌, 다툼의 중재 등 승가에서 발생하는 일은 모두 갈마를 통해 결정된다. 때로는 합의점을 찾지 못해 난황을 겪을 수도 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거로 마지막 한 명까지도 납득시켜 만장일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해서 화합갈마를 통해 구성원 전원이 납득하여 내린 결론은 승가의 최고 권력이자 권위로서 승가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승가 내외의 그 어떤 권력도 이를 능가할 수는 없다.

 

▲이자랑 교수
승가를 둘러싼 환경이 바뀌면서 승가 운영 역시 현대화라는 명분으로 세속화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승가는 종교 공동체이다. 종교적 이념을 살리지 못하는 운영 방법은 공동체의 붕괴를 초래한다. 화합갈마를 통한 의견 조율의 과정은 여법을 실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이 중시되는 한, 승가 내부에 불만이 발생할 여지도 줄어들 것이며 승가 외부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현상도 사라질 것이다. 

 

동국대 불교학술원 이지랑 연구교수 jarang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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