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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두륜산 북미륵암

해 묶어두고 조각한 땅 끝 여래는 절망 끝에 선 중생 다독이다

만년간 훼손되지 않을 도량
해남 대흥사 북쪽 산내암자
진불암 숲속 바윗길로 40분


신라시대 조성 마애여래좌상
2004년 좌우 공양상 발견돼
이듬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

 

 

▲침묵은 솔직한 감정이다. 군더더기뿐인 말을 거뒀다. 대신 가슴이 소리 없이 환희했다. 국보 제308호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땅 끝에 앉아 있었다. 매서운 눈매가 삿된 생각 물리쳤다. 먹먹한 가슴에 신심이 요동쳤다.

 


비로 물든 땅이 물안개를 피워 올렸다. 한반도 끝, 땅끝마을에 서성이던 장마 비구름이 숨을 고르는 순간이었다. 땅 끝 하늘과 해를 가렸던 비구름이 틈을 보인 찰나였다. 생명을 키워낸 물이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위대한 여정의 첫걸음이었다. 햇볕은 땅을 쓰다듬었고, 따뜻한 기운은 땅에 깃든 빗물을 위한 귀천(歸天)의 길을 열었다.


두륜산 초목들을 키워낸 땅은 탐욕스럽지 않았다. 필요한 만큼 가졌고, 필요하지 않은 만큼 계곡으로, 하늘로 물을 돌려보냈다. 한반도 땅 끝 두륜산 자락에 안긴 조계종 제22교구본사 해남 대흥사도 마찬가지였다. 사세가 큰 도량이었지만 군더더기가 없었다. 세 가지 재앙이 미치지 못할 곳, 만년동안 훼손되지 않을 땅, 대흥사는 그곳에 있었다.


대흥사는 서산대사 옷가지와 바리때를 보관한 도량이다. 일주문 뒷면엔 ‘선림교해만화도장(禪林敎海滿華道場)’이란 현판이 내걸렸다. 서산대사가 저술한 ‘선가귀감’에서 말한 ‘선은 부처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 말씀’에서 연유했단다. 다시 말해 부처님 가르침이 숲과 바다 같이 자리한 도량이다. 해서 이곳은 한국불교 종통을 이어왔다(宗統所歸之處). 풍담 스님으로부터 초의 스님에 이르기까지 13명의 대종사를, 만화 스님으로부터 범해 스님에 이르기까지 13명의 대강사를 낳았다. 그리고 초의 스님으로 인해 우리나라 차문화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초의 스님이 기거했던 일지암이 유명한 이유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대흥사 북쪽 산내암자 북미륵암(北彌勒庵) 마애불이 두륜산 와불 가슴에 앉아 있을 줄이야.

 

 

▲마애여래좌상 좌우아래 공양비천상 고개가, 손가락 마디마디가, 무릎이 절절하다. 부처님 우러르며 향과 연꽃을 공양하는 그네들 모습에서 우리네 마음이 언뜻 비친다.

 


대흥사 마당에서 올려다 본 두륜산엔 부처님이 누워계셨다. 스님이 일렀다. 부처님 심장 부근에 천년 세월을 버티고 선 느티나무인 천년수가 있다고. 두륜산 부처님 심장인셈이다. 그 옆에 북미륵암이 있단다. 부처님 찾아 두륜산 품에 들었다. 진짜 부처님 계실지 모르는 진불암(眞佛庵)에서 800m 거리의 바윗길을 걸었다. 제법 가파른 흙길을 따라 200m쯤 오르니 온통 바위뿐이다. 40~50분 미끄러운 바위를 밟아가니 뿌연 물안개 사이로, 초록 이파리 드리운 초목들 틈새로 북미륵암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 정비된 돌계단 마지막에 올라서자 암주 은성 스님과 개 2마리가 마치 그림처럼 호젓했다. 용화전은 문을 열어뒀다. 문이 열어둔 공간에 시선 닿는 순간, 마음은 몸보다 먼저 용화전으로 빨려 들어갔다. 커다란 바위에 돋을새김된 부처님의 위엄에 송두리째 마음을 뺏겨 버렸다.

 

침묵은 말보다 솔직했다. 감정에 충실했고, 잡다한 변명도 없었다. 대신 가슴은 소리 없는 환희로 가늘게 떨렸다. 신선한 충격에 입은 말을 잊었고, 가슴엔 신심이 요동쳤다. 국보 제308호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그곳에 있었다.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 만년동안 훼손되지 않을 땅, 부처님 가르침이 숲과 바다 같은 도량, 그곳에. 치켜 올라간 눈썹, 부리부리한 눈매, 두툼한 입술은 닫혀 있었다. 귀는 어깨에 닿을 듯 했고, 불타오르며 하늘로 오르는 광배는 찬란했다. 투명한 하늘창으로 빛이 쏟아졌다. 엄숙했으나 찬란했다. 그 엄숙한 찬란함에 마음은 옴짝달싹 못했다. 저리 매서운 눈매 앞에 어찌 삿된 생각 한 조각 마음에 띄우랴.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과 달리 음각된 남미륵암 마애여래입상.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1963년 1월21일 보물 제48호로 지정됐다. 지난 2004년 8월 협소하고 지붕이 부식된 용화전을 해체, 복원하면서 그 웅장함을 천하에 드러냈다. 보호각 기둥과 지붕에 가려져 있었던 공양천인상과 불꽃 광배가 세상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이듬해인 2005년 9월 국보 제308호로 승격 지정됐다. 부처님 상하좌우에 공양천인상의 갸륵함에 또 한 번 가슴이 운다. 부처님 좌우아래 공양비천상 고개가, 손가락 마디마디가, 꿇은 무릎이 절절하다. 부처님 우러르며 향과 연꽃을 공양하는 그네들 모습에서 우리네 마음이 언뜻 비친다.


단단한 화강암은 무른 비누였다. 850~932년 신라말 무렵 바위를 깎은 석공의 솜씨는 그랬다. 조성 당시 신라는 중앙귀족의 분열과 제멋대로 권세를 부리는 호족들로 불안했다. 석공의 조각은 1000여년전 어떤 염원을 품었을까. 민초들의 평안, 아니면 나라의 평안.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랴. 높이 4.85m에 이르는 부처님은 그곳에서 예전에도 지금도 빛났으리라.

 

 

▲동탑 오르는 길서 내려다본 북미륵암 전경.

 


커다란 바위는 어떻게 부처님으로 태어났을까.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옛날 천상에서 죄를 짓고 지상으로 쫓겨난 천동과 천녀는 참회가 필요했다. 다시 천상으로 오르기 위해선 단 하루 만에 부처님을 조성해야 했다. 그들은 묘안을 생각해냈다. 끈으로 해를 칭칭 동여매 천년수에 매달았다. 안심한 천동과 천녀는 부처님을 조각하기 시작했다. 천동은 남쪽 바위에 서 있는 부처님을, 천녀는 북쪽 바위에 앉아 있는 부처님을 조성했다. 천녀가 먼저 불사를 마쳤고, 하늘에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해를 매단 끈을 잘라버렸다. 해가 지자 천동은 더 이상 조각할 수 없었고, 음각된 부처님은 남미륵암에 남았다.


마음은 한참이나 마애여래좌상 곁을 서성였다. 가까스로 마음을 돌려 마애여래좌상이 바라보는 쪽 목재계단을 올랐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45호인 삼측석탑은 높이 4.65m에 이르는 고려시대 작품이었다. 신이하게도 탑 기초가 되는 기단이 없었다. 손바닥 모양의 큰 바위가 기단이었다. 15년간 북미륵암서 기도하며 수행해온 암주 은성 스님이 귀띔했다.


“부처님 손바닥에 탑을 올려놓은 것이지요. 사실 대흥사가 위치한 곳은 백두산 천지 형세입니다. 대흥사가 부처님 가르침의 숲이자 바다에 잠겼다면 북미륵암은 떠 있는 형국이지요. 암자가 큰 배에요. 중생을 차안에서 피안으로 싣고 가는 겁니다.”


북미륵암은 흔한 삭도도 없다. 그래서 은성 스님은 진불암서 북미륵암까지 이르는 험한 바윗길을 오가며 지게로 공양물을 져 나른다고. 절로 수행이었다. 스님의 기도는 무르익었을까. 깨달음을 향한 기도와 수행은 열매를 맺었을까. 그 열매 피안에 떨어져 씨앗을 파종했을까. 스님의 한 마디가 죽비로 날아든다. “여기 기도하려고 올려면 대흥사서 주무시고 매일 올라오셔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 아닙니까.” 스님은 텅 빈 간절함을 꾸짖었다. 스님은 사진기 들고 기도 중에도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이 못마땅했다. 박노해 시인은 ‘기도의 나의 힘’이란 시에서 스님과 같은 말을 되뇌었다. 마애여래좌상 곁 공양비천상의 간절함이 곧 기도였다.

 

 

▲부처님 손바닥 위에 앉은 삼층석탑.

 


“힘 있고 돈 많고 성공한 자는 기도하지 않는다. 하늘을 부르지만 오직 땅에서 이뤄지길 바랄 뿐이다. 어린아이의 천진한 기도는 하늘에 닿고 무력한 자의 간절한 기도는 하늘에 통한다. 이 지상에 의지 할 데 하나 없어 하늘 밖에 없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기도밖에 없는 자의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기도는 땅에서 배반당하지만 하늘에 통하는 기도는 그 가슴에 하늘이 깃든다.”


땅 끝에서 고은 시인은 노래했다. 살아온 날들도 함께 왔노라고.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에게 간절함 바쳤던 민초들도 온 삶을 다 내놓았다. 상처받고 좌절했던, 풍요보단 결핍이 고였던, 비장했던 삶의 조각들을 마애여래좌상 앞에 숨김없이 드러냈을 터다. 다 내어놓고 그 자리엔 다시 살아갈 힘을 채웠으리라.


땅 끝 해남, 옅은 어둠이 두륜산에 내리기 시작했다. 그 때, 하늘 가린 비구름에 틈이 생겼다.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륜산에 해가 걸렸다. 우리네 마음에 부처님 한 분 조각할 시간이 남았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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