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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사르 잠양 켄체 린포체

지혜·자비로 번뇌 녹여야 허구의 세상에 속지 않는다

번뇌 찬 마음이 진실 가리면
허구의 세상과 교감하게 돼


옴마니반메훔 육자진언은
관세음보살의 또 다른 이름
명호가 곧 지혜·자비 상징

 

 

▲ 종사르 잠양 켄체 린포체

 


제가 오늘 여러분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일상에서의 수행과 관세음보살님이라는 주제입니다. 관세음보살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이 세계에 나투시는가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 두 가지는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일상 수행은 우리의 생활과 수행을 합일시키는 것입니다. 수행이 법당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수행은 여러분이 차 한 모금을 마시는 동안에도 이뤄질 수 있고 빨래를 하는 동안에도 이뤄질 수 있습니다. 세속의 모든 일이 수행이고 세속이 곧 출세간이 돼야 합니다. 쉽게 들리지만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수행을 좌복 위에서 명상하는 것, 법당에서 하는 것으로만 한정지음으로써 그 자리를 떠나면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교에서 관세음보살님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국가나 지역에 따라 크게 다릅니다. 미얀마나 스리랑카에서 관세음보살님은 문지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연꽃을 들고 있는 착한 재가불자소년으로 묘사 되고 있습니다. 티베트불교에서는 거의 모든 수행이 관세음보살님과 연계돼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중국에서는 관세음보살님이 여성으로 묘사됩니다.


이처럼 표현이 다른 이유는 관세음보살이 형상을 갖고 있는 대상이 아니라 어떤 현상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신이 아닙니다. 관세음보살은 여러분 각자가 내면에 갖고 있는 순수한 의식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그런 순수한 의식이 우리 내면에 있다는 것을 많은 순간 잊고 삽니다. 우리가 이 마음을 찾아 올바로 간직하고 있을 때, 마음의 순수한 본래상태, 그 본질이 곧 관세음보살입니다. 그것은 어떤 형태나 색, 모양,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입니다. 즉 관세음보살은 개념화를 넘어선 상태이기에 역설적으로 여러 가지의 다양한 모습으로도 표현될 수 있는 것입니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 모양이 이용된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이 순수한 마음 자체가 관세음보살이라고 말하면 쉽게 믿으려하지 않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아주 성스럽고 고귀하고 청정한 분인데 나같이 허물도 많고 오염됐고 불순한 생각도 많은 사람의 이 마음이 어떻게 관세음보살일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굉장히 유신론적인 견해입니다.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절대적인 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생각과 같습니다. 물론 관세음보살이 우리의 본질이라고 믿고 유지하는 것 자체는 매우 힘듭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것은 간단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더욱 힘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관세음보살님을 여러 모습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육자진언, 옴마니반메훔을 외우는 것입니다. 육자진언을 염송하는 것이 여러분들이 관세음보살의 세계를 유지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될까요. 앞서 언급한 주제인 일상의 수행으로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옴마니반메훔이라는 여섯 글자는 여러분의 여섯 가지 경험을 변환시켜줍니다. 여섯 가지 경험이란 지옥, 아귀, 축생, 천신, 인간, 아수라계에 대한 경험인데, 경험이라기보다는 여러분의 지각이라고 말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습니다. 모든 종교가 지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대승불교에서 지옥은 외부에 있는 다른 세계가 아닙니다. 이 여섯 가지 세계가 모두 밖에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사실 매일 매일의 일과 수행에서 알아차림을 하는 동안 여러분은 이 여섯 가지 세계를 모두 체험합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볼까요. 전날에 술을 많이 먹었거나 파티를 심하게 한 경우 아침에 일어나면 여러분은 완전히 지쳐있는 상태일 것입니다. 전날 옆에 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축생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샤워 하고 면도 하고 화장도 하고 옷을 입어서 꾸미면 여러분은 스스로가 아름답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천신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늦었어요. 택시를 탔는데 길이 막히죠. 답답하고 신경질이 납니다. 아마 지옥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회사에 도착했는데 동료가 승진을 했거나 성과를 잘 내는 것을 보면 질투를 느끼죠. 아수라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금요일이나 토요일이 되면 여러분은 또 신나게 놀겠죠. 온갖 화려한 놀이장소들이 여러분을 부르고 그것을 즐기죠. 바로 보통 인간의 삶입니다.


이것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경험의 지각 형태일 것입니다. 이것이 그 다음에 경험이나 지각을 하는데 있어 바탕이 되죠. 더 많은 희망과 더 많은 불안이 생기고 그래서 더 많은 행동이 개입됩니다. 행동이 결과를 낳고 그 결과가 더 많은 조건과 원인을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돌고 돕니다. 이 여섯 가지 경험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옴마니반메훔을 염송하는 것입니다.


알아차림, 정념이라는 것은 불교수행의 대들보와 같습니다. 모든 종교에는 대적해야할 적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사탄을 이야기하지만 불교에서는 번뇌에 찬 마음이 가장 큰 적입니다. 그 외에 외부에 존재하는 악마는 없습니다. 번뇌가 갖고 있는 주된 작용의 하나는 진실을 가리는 것입니다.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허구의 세상과 상호작용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알아차림을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을 수천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부르고 생각하는 것도 그 한 가지 방법입니다. 옴마니반메훔은 관세음보살님의 또 따른 명호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는 방법입니다. 여러분의 머리, 어깨 위에, 가슴 안에 관세음보살님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장소는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관세음보살을 떠올리는 순간 바로 그 자리가 관세음보살의 상주처가 됩니다. 좋은 음악을 듣거나 좋은 경치를 보았을 때 관세음보살님에게 공양하는 마음을 내면 음악이나 경치도 수행을 하는 도구가 됩니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관세음보살님을 떠올리기로 하면 커피는 수행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수행할 수 있는 나름의 도구를 만들면 됩니다.


관세음보살님은 보리심이 인격화된 것입니다 보리심이 형상을 갖고 있다면 관세음보살과 같은 모습일 것입니다. 보리심이 소리를 갖고 있다면 옴마니반메훔이라는 소리일 것입니다. 보리심의 재료는 지혜와 자비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관세음보살님을 기억한다면 지혜와 자비를 기억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보리심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장애 중의 하나가 아집, 자기애입니다. 자기애는 항상 작은 상자 안에 자신을 앉혀놓고 싶어합니다.

 

상자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합니다. 하지만 보리심은 상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일체 중생을 다 깨달음에 이르게 하겠다는 발원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을 불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개종시키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사람이 부처가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이러한 발원을 닦는 동안 여러분들은 자기애를 점점 줄여갈 것입니다. 그것이 점점 줄어들면 이원적 생각도 점차 사라집니다. 이원적인 생각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실재한다는 생각도 점점 느슨해질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공성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여러분은 누군가 여러분을 칭찬하거나 욕한다 해도 그것에 연연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법을 나누는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오늘 법회의 모든 공덕을 일체 중생의 지혜 증진과 여러분들의 수행성취를 위해 회향합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이 법문은 8월3일 봉은사를 방문한 종사르 잠양 켄체 린포체의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종사르 잠양 켄체 린포체
1961년 히말라야 부탄왕국에서 출생했다. 일곱 살 때 티베트 불교계의 스승 잠양 켄체 왕포(1820∼1892)의 환생자로 판명됐다. 현재 티베트와 인도에 있는 종사르 사원 네 곳에서 약 2000여 명 스님들의 수행을 지원하고 있으며 전 세계 6곳에 있는 수행센터 ‘싯다르타의 의도’와 비영리단체 ‘켄체 재단’, ‘연꽃 활동’ 등을 통해 낙후된 국가의 어린이 교육과 빈민 구제에도 앞장서고 있다.
1994년 영화 ‘리틀 붓다’의 고문을 맡았고 ‘더 컵’‘나그네와 마술사’를 제작해 영화감독으로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다.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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