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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착어의 의미

기자명 법보신문

불러온 영가에 이르는 말
담적한 실상 일러줌으로써
묘체 깨달을 수 있게 유도


49재나 칠칠재 대령의 창혼과 청혼에 대해 지난 호에 말했다. 조금은 집중해서 지금 재가 열리는 재 도량으로 마음을 옮겨 동참해보자. 재를 많이 올리면 올릴수록 복을 짓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동참도 복이 되냐고 묻겠지만, 각설하고. 창혼, 즉 이름을 불렀으니 무어라고 한 마디 일러야 한다. 불렀으면 말을 하라는 말이다. 그 한마디를 착어라고 한다.


지금 내 앞에는 제사를 모시기 위해, 내가 불러 모신 영위께서 내려와 있다. 그 모습이 설령 보이지 않을지라도, 대령해 있다고 상상해 보라. 영가가 대령했다고 믿어야 한다. 대령해 있다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재의 참석자들은 복받쳐 오르는 슬픔을 억누르기가 힘들 것이다. 허나 지금 여기서 슬픔이나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 영적 존재로 하여금 자신의 길을 가는 데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주스님은 차분한 마음으로 대령한 그 존재들에게 한 마디 짧은 법문을 들려준다. 착어를 한다. 그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영원담적(靈源湛寂) 무고무금(無古無今) 묘체원명(妙體圓明) 하생하사(何生何死)’


‘영가의 근원은 깊고 고요하여 예나 지금이 없고, (영가의) 묘한 본체는 둥글고 밝은데 어찌 나고 죽으리까.’ 이 착어를 설명하는 방법은 여럿 있다. 대체로 1구 첫 자 ‘영원’을 ‘신령한 근원’으로 3구 첫 자 ‘묘체’를 ‘미묘한 본체’라고 번역해 ‘영’과 ‘묘’를 일반화·단순화하고 있다. 그렇지만 4언 4구 16자로 이뤄진 이 착어 첫 절의 ‘영원’과 ‘묘체’는 대령한 영가의 오묘한 본체를 지칭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령한 영가의 근원은 담적하고, (영가 당신의) 묘한 본체는 원명함으로 예도 지금도 없고, 나고 죽고 하는 것도 없다는 일갈이다.


영가, 곧 영적 존재에게 당신의 실상이 담적하고 원명함을 일러줌으로써 자신의 본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착어는 다음 구절에서 엄청난 반전을 가하고 있다. 이 사실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마가다국에서 관 밖으로 발을 내민 소식이고, 달마대사가 신 발 한 짝 매고 총령으로 넘어가신 뜻이라는 것이다.


영가는 이제 죽음이라는 관문을 지났다. 그렇지만 원래부터 본래 고요한 그 자리에 있을 뿐, 사실은 나고 죽음이 없다는 것을 착어에서 일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영가의 근원과 묘체가 담적하고 원명한 실체를 아시겠냐고 묻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정신을 더욱 바짝 차려야 한다. 내가 대령한 영가의 왕생극락의 문제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의 교법은 대단히 중층적이다. 이곳에서도 그것이 유감없이 전개되고 있다. 전광석화와 같은 한 구절 착어를 들려주고, ‘대령한 영가여, 여러 불자여, 아시겠습니까?’라는 이르고 있는 사실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이즈음에 이르러서는 영원과 묘체는 이제 대령한 영가와 동참한 모든 불자들의 영원이요, 묘체임을 확연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성운 박사

나는 타자의 거울이다. 나의 거울이 깨끗하면 타자는 분명하게 자신을 볼 수 있다. 나의 영원과 묘체가 담적하고 원명함을 알아차릴 때 나는 타자의 거울이 된다. 이렇듯이 창혼의 착어는 명계(저승)와 양계(이승)의 영원과 묘체의 실상을 드러내 분명하게 보여, 떠난 자와 남은 자 모두를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한다. 실상을 분명하게 일러 주는 말, 이것이 창혼의 착어이다.

이성운 동국대 외래교수 woochun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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