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산상 설교론
38. 산상 설교론
  • 법보신문
  • 승인 2013.08.22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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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핵심은 팔복
천국 이르는 조건 제시
부처님도 산에서 설법
예수와 달리 ‘존재’ 규명


예수가 인간들에게 준 교훈의 양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가 인류사에 끼친 영향은 어느 성인들도 따라 갈수 없을 만큼 지대하다. 이러한 예수의 여러 가지 가르침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내용이 있다면 무엇보다 마태복음 5~7장에 나오는 산상수훈이다.


산상수훈이란 산에서 가르친 교훈이란 의미로 인간들이 천국에 갈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내용이다. 그 가운데 팔복에 대한 설교는 산상수훈의 핵심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마태복음에 나오는 팔복의 가르침은 이렇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실로 예수의 이와 같은 설교는 짧은 내용이지만 누가 들어도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어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로 받아들이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게 한다. 구약 시대에는 인간들이 신 앞에 숨을 쉴 여가가 없었다. 오직 신에게만 잘 보이기 위해 몸부림 쳐야만 했다. 인간의 인격보다는 신에 대한 복종만으로 구원의 조건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 산상수훈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따라 신의 축복이 내릴 수 있다고 가르친다. 물론 예수 이후 신약시대에 들어 와서도 신에 대한 믿음이 무엇보다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예수는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인간 심성의 변화와 가치관의 전환을 요구하는 여덟 가지의 가르침을 설파한다.


예수의 이같은 설교 내용에 비추어 부처님의 설법을 꺼내든다면 불이 탄다는 의미의 ‘연소경’을 들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가 산위에서 설교를 했듯 이 경 또한 가야산이라는 산에서 설법을 했다. 부처님은 여기서 불을 비유로 들어 세상을 진단하고 그 세상으로부터 뛰쳐나오는 가르침을 설한다. “비구들이여 수행승들이여, 일체가 불타고 있다.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일체가 불타고 있는가? 수행승들이여, 눈, 귀, 코, 혀, 몸, 뜻도 불타고 있고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뜻도 불타고 있고, 이들 간의 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감수도 불타고 있다. 어떻게 불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로, 성냄의 불로,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 늙음, 죽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으로 불타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보아서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시각도 싫어하여 떠나고, 형상도 싫어하여 떠나고, 시각의식도 싫어하여 떠나고, 시각접촉도 싫어하여 떠나고, 시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감수도 싫어하여 떠난다. 싫어하여 떠나서 사라지고 사라져서 해탈한다. 해탈하면 ‘나는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겨나서 이와 같이 ‘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그는 분명히 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이 설해졌을 때에 1천여 수행승들의 마음은 집착 없이 번뇌에서 해탈했다.

 

위의 ‘연소경’과 예수의 ‘산상수훈’을 비교한다면 예수는 부처님처럼 세계와 인간의 실상을 파악하려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 구원에 이르는 길도 당연히 신이 창조한 세상 속에서 이루어진다. 기독교의 관점에서는 세상과 자신의 구조를 자세히 알 필요는 없다. 구원은 신에 의해서 이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무엇보다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세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야 된다고 보았다.

 

▲이제열 법사

불교의 관점에서는 자신과 세계는 타오르는 불과 같기 때문에 벗어나야 할 대상으로 본다. 예수의 교훈대로 아무리 팔복을 실천하여 구원에 이른다 해도 눈, 귀, 코, 혀, 몸, 뜻 등의 일체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는 다만 세속 차원의 구원이지 출세간의 구원은 아니라고 본다.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예수의 설교와 해탈을 목적으로 하는 부처의 설법은 산을 중심으로 하는 교훈에서도 방향을 달리하고 있다.

 

이제열 법림법회 법사 yoomalee@hanmail.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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