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진령게송
31. 진령게송
  • 법보신문
  • 승인 2013.08.2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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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중생들 위한 게송
요령 흔들며 영가 초청
상황 맞게 게송 읽어야

 

대령한 존재에게 한마디 일러준 착어가 끝나면, 이제 청혼을 위한 장치들이 전개된다. 청혼은 이름만 불러서는 올 수 없는, 오지 않는 존재들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한 다음 시행된다. 청혼만 해서는 올 수 없거나 오지 않는 존재들이란 첫째 자유가 없는 이들을 의미한다. 자유가 없다는 것은 지옥에 있다는 말이다. 둘째 오고 싶은 마음이 없는 존재들이다.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한 원수들은, 자신들을 위해 좋은 법문과 진수성찬을 준비했다고 해도 듣지도 않고 마음을 내지도 않는 존재들이다. 이 같은 존재들은 이름만 부른다고 해서 듣고 곧바로 재가 열리는 도량에 오지도 않고 올 수도 없다. 이런 존재들을 위해 관음시식과 같은 의식에서는 신묘장구다라니, 일체유심조하는 파지옥게송과 파지옥진언, 해원결진언, 나무대방광불화엄경과 삼보의 칭명 등이 행해진다. 이러한 의식들이 진행되는 초두에서 읽는 게송이 진령게송이다. 요령을 흔들며 염송하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이차진령신소청(以此振鈴伸召請) 금일영가보문지(今日靈駕普聞知) 원승삼보력가지(願承三寶力加持) 금야금시래부회(今夜今時來赴會)’


‘이 요령을 흔들어 청하니, 오늘의 영가는 널리 듣고 아시고, 삼보님의 힘과 가피의 힘을 입어 오늘밤 이 시간에 이 법회에 이르소서.’ 이름만 부르는 데서 좀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청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게송은 대령, 관음시식, 구병시식, 상용영반, 종사영반 등의 의식을 행할 때 요령을 흔들며 영가를 부를 때 쓰인다. 이 게송 소리를 들어야 하는 대상을 표시하는 2구를 보자. 여기서는 ‘오늘의 영가’라고 하고 있는데, 관음시식 등에서는 명도귀계(冥途鬼界)라고 하여 저승세계의 귀신 영가라고 규정하고 있다. 재 도량에 청혼하는 진령게송에 ‘금일영가’와 ‘명도귀계’ 중 어느 것이 옳을까. 재래의 범음집(1709, 2001) 등의 대령이나 관음시식에는 위 예처럼 모인영가 금일영가로 영가를 특정하고 있다. 금일영가나 모인영가라고 하면 당일 왕생극락을 발원하며 재를 올리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행 관음시식에는 명도귀계라고 하여 불특정 다수의 영가에게 법회를 알리는 역할로 바뀌어 있다. ‘명도귀계’의 불특정 다수 영가를 우선 청하는 시식의식은 화엄시식 같은 곳에서는 적합하다고 할 수 있지만, 특정 영가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는 49재와 같은 재의 진령게송은 금일영가 모인영가라고 하는 것이 적합하다. 또 4구의 오늘밤의 ‘금야’도 근자의 본에서는 ‘금일’이라고 하고 있는데, 낮에 재를 올리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만 맞지 않다. 금일은 오늘이 아니라 오늘 낮이다. 시식은 삼경에 행해지므로 금야라고 하는 것인데 낮에 시식과 재를 봉행하면서 ‘금야’가 ‘금일’로 슬그머니 바뀌어 버렸다.


큰북이 날짐승과 들짐승을 제도할 때 쓰는 법구이고, 범종이 지옥중생 제도하는 데 쓰이는 법구인데, 범종과 유사한 요령을 흔들며 게송을 염송한다는 자체가 이미 거기에 지옥중생을 청하고 제도한다는 것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진령게송의 대상을 명도귀계라고 한정할 필요는 더욱 없다.

 

▲이성운 박사

그렇지만 세월을 따라 삼보와 신중을 청하는 진령게송이 출현하게 되니 자연 변별될 필요는 있었을 것이다. 화엄시식이나 전시식과 같이 불특정 다수 영가를 청해 베푸는 시식이 아니라면, 진령게송에는 당일 재를 올리는 재주의 특정영가를 청하는 게송으로 복원되어야 할 것이다.

이성운 동국대 외래교수 woochun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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