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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어산어장 동주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청정심서 우러나온 소리 하나 온 법계 흔든다

10대중반 중병앓아 목숨위태
살아나면 출가 부처님전 기도


대강백 대은스님 상좌로 입도
범패 최고봉 송암스님 사사
지월스님 ‘속지말라’에 참선


무념무상 선정 극치의 소리
계행·법력 수반되어야 가능
염불도 정성 다해야 ‘가피’
한글의식 체계·보급에도 혼신

 

 

▲“선정의 극치에서 나오는 소리가 범패”라는 동주 스님은 “입으로는 경문을 외우지만 그 뜻을 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 가양동에 자리한 홍원사는 목조 건물은 아니지만 운치 있으면서도 장엄하게 서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환희심을 불러일으킨다.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각종 법회가 열리는 도량이지만 이곳엔 아주 특별한 인재양성 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다름 아닌 한국불교전통의례전승원. 불교음악의 진수가 담겨 있다는 범패의 맥이 꿈틀거리고 있는 도량이다.


범패(梵唄)란 범음(梵音)의 가패(歌唄)라는 뜻이다. 범음은 ‘성스러운 소리’이고, 패(唄)란 ‘찬탄’의 뜻이니 ‘성스러운 찬탄’의 노래 또는 소리라 보면 크게 틀리지 않다. 무엇을 찬탄하는가? 부처님 말씀을 찬탄한다.


범패는 다시 안채비소리와 바깥채비소리로 나눈다. ‘채비’란 특별한 일을 맡기기 위해 임시로 임명하는 ‘차비(差備)’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설이 있는데 설득력 있다.


안채비소리는 절 안의 법주(法主)처럼 학식 높은 승려가 부르는 노래다. 일례로 재주(齋主)를 축원 하는 장면에서 요령을 흔들며 낭송하는 것을 안채비소리라 보면 된다. 바깥채비소리란 범패를 전문으로 하는 절 밖의 범패승의 노래다. 영산재나 수륙재 등의 큰 재를 올릴 때 범패 스님을 초청해 부르게 한다. 바깥채비소리는 다시 홋소리와 짓소리로 분류된다.


홋소리와 짓소리를 문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통상 재에서 부르는 노래는 안채비소리와 홋소리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은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짓소리는 홋소리를 다 배우고 난 범패승이 배우는 노래로, 한문으로 된 산문이나 산스크리트어(Sanskrit) 사설로 되어 있다. 짧은 가사임에도 음 하나하나를 길게 늘려 부르는 특색이 있는 만큼, 영산재와 같은 큰 재의 시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짓소리는 최고 수준에 이른 범패 전문 스님만이 낼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은 모든 소리를 자유자재로 내는 스님을 어장(魚丈)이라 한다. 어산(魚山)은 범음범패를 총칭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재를 올리는 현장도 의미한다. 따라서 범패의 최고 수준에 도달한 사람을 어장(魚丈)이라 칭한다.


홍원사 한국불교전통의례전승원장 동주 스님이 바로 조계종 어산어장이다. 조계종 어산학교의 기틀을 다진 스님이 동주 스님이요, 2004년 조계종단 차원에서 첫 영산재가 재현된 것도 동주 스님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 송암 스님과 동주 스님이 영산재를 시연하고 있다. ⓒ석선암 스님

 


온양 오봉암에서 자란 동주 스님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운암 스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운암 스님이라 하면 당시 지화(紙花)의 대가로 전국에 알려졌던 스님이다. 큰 절의 재가 있으면 어김없이 운암 스님에게 지화장엄을 의뢰했을 정도다. 그 날도 이름 모를 어떤 재가 펼쳐졌다. 소리가 들려왔다. 의미는 몰랐지만 스님들이 내는 소리에 담긴 신성함이 어린 동주 스님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 이후 동주 스님은 동은 스님에게 말했다. “출가하고 싶습니다.” 동은 스님은 “더 크면 출가해라”며 ‘허허’ 웃을 뿐이었다.


16살 때 서울로 올라 온 스님은 서울 구로동에서 약국을 경영했다. 현대 시스템에 견주어 보면 약사를 고용 해 약국을 운영한 셈이다. 2년여 동안 운영한 약국은 생각보다 번창했다고 한다. 급기야 약대를 졸업 해 제대로 된 약국을 운영할 마음을 먹고 검정고시 준비에 들어갔다. 화근의 시작일까? 아니면 불연의 시작일까?


열이 오르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늑막염에 비롯된 큰 병이었다. 백약이 무효였다. 수십일 동안 엄청난 고통에 시달린 동주 스님은 피골이 상접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스님은 부처님 앞에서 다짐했다. ‘만약 살 수 있다면 출가하겠습니다!’ 가피가 있었던 것일까? 그 이후 스님은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운암 스님 앞에 나가 자신의 출가 뜻을 전했다. 운암 스님은 ‘은사를 잘 만나야 한다’며 어린 동주 스님을 데리고 용인 화운사로 향했다. 그곳엔 대은 스님이 주석하고 있었다. 대은 스님은 동은 스님의 부탁에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좋다’며 제자로 받아들였다. 당시 강백으로 유명했던 대은 스님의 제자이었기에 동주 스님도 강백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숙연은 강백으로 닿지 않았다.


대은 스님은 동주 스님을 불러 ‘중노릇 제대로 하려면 의식부터 잘 배우라’일렀다. 옛 스님들이 오래 간만에 만나면 으레 나누는 대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상좌는 몇인가?’, ‘중질은 가르쳤는가?’, ‘화장할 나무는 마련해 놓았는가?’ 여기서 ‘중질’이란 목탁염불 즉 기본적인 불교의식을 제대로 가르쳤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대은 스님 역시 제자에게 불교의식을 가르치고 싶었을 터. 동주 스님은 김포 문사사로 가 영산작법에 능했던 벽응 스님에게 일상의식을 배웠다. 그리고는 이내 신촌 봉원사로 가 노전 방 하나 얻고는 송암 스님으로부터 본격적으로 범패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때가 대략 1965년인데 그 때까지만 해도 강백의 뜻을 접은 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천지개벽할 일이 벌어졌다.


지금의 서울 보문사인 탑골승방에서 대은 스님은 비구니 스님들에게 경전을 강의했는데 이 때 송암 스님은 의례를 가르치고 있었다. 대은 스님이 송암 스님을 찾았다. 대은 스님은 절을 올리며 부탁드렸다. ‘동주에게 스님이 알고 계시는 범패의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 인연이 이어져 동주 스님은 어산어장이라는 반열에 오르게 됐다. 올해 초 동주 스님은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3호 경제어산 보유자로 인정됐다.


범패를 설명할 때 흔히 인용하는 말이 있다. ‘범패는 신앙심을 토대로 한 것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몸(身), 입(口), 정신(意)을 통해 어우러지게 하는 수행 기능을 지닌다. 이러한 음악은 사물(四物: 법고, 운판, 목탁, 대종)과 함께 어우러져 작법과 더불어 청각 및 시각적인 것을 통해 의식을 보다 장엄화시키며, 또한 교리수행의 방법으로 신심을 더욱 심화시키는 기능을 갖는다.’


범패의 수행기능이란 무엇일까? 여기엔 어떤 마음으로 범패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속뜻도 담겨 있을 법하다. 동주 스님은 차 한 잔 내며 송암 스님을 떠올렸다.


“먼 산만 응시하며 ‘봉원사 근처엔 얼씬도 말아라. 화두 놓칠라!’던 스님의 모습 지금도 확연하게 그려집니다.”
태고종 소속의 송암 스님이었지만 신문사나 방송국이 찾아오면 조계종 소속의 동주 스님을 후계자로 지명하곤 했다. 그런 제자가 선방으로 가 참선하겠다며 스승 곁을 떠났던 것이다. 여기엔 그만한 연유가 있다고 한다.


“당시 봉원사엔 ‘땡초 스님’이라 알려진 지월 스님이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사중으로부터 많은 핀잔을 들으면서도 아랑곳 하지 않고 며칠이 멀다 하고 술 한 잔 걸치곤 했습니다. 지월 스님은 자정만 되면 자고 있는 저를 흔들어 깨우며 ‘속지 말라, 속지 말라’소리쳤는데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지월 스님이 무척이나 싫었지만 분명 무슨 사연이 있을 듯싶었습니다.”

 

 

▲ 범패의 맥이 살아 숨 쉬고 있는 흥원사 전경.

 


어느 날, 지월 스님은 어김없이 탁주 냄새 풍기며 동주 스님을 흔들어 깨웠다. 동주 스님은 일어나 지월 스님에게 절을 올렸다. ‘무엇에 속지 말라는 것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어찌 하면 중노릇 잘 할 수 있습니까!’ 지월 스님은 금강산 보덕굴과 낙산사 홍련암에서 정진했던 자신의 행적을 들려주었다.


노 스님을 모시며 홍련암에서 관음기도를 할 때였다. 노 스님이 물었다. ‘너는 무슨 기도를 하느냐?’ ‘관음기도 합니다,’ ‘관세음보살이 누구더냐?’ 지월 스님은 여기서 꽉 막혔다. ‘관세음보살이 누구인가?’는 화두로 잡혔다. 100일 기도를 하는 동안에도 이 화두는 풀리지 않았다. 결국 지월 스님은 노 스님에게 ‘다시 찾아 뵙겠다’며 하직 인사를 올렸다. 그 때 노 스님이 말했다. ‘다시 올 것 없다. 네가 관세음보살이다.’ 지월 스님은 그 자리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걸어 온 길을 내보인 지월 스님은 ‘동주 스님의 귀가 뚫렸는지 안 뚫렸는지를 가늠하기 위해 흔들어 깨웠다’고 했다 한다. 선기를 받아들일 만한 그릇이 되는지를 나름대로 짚어 본 것이리라. 지월 스님은 동주 스님에게 다시 한 번 ‘지금부터라도 속지 말라’ 당부했다고 한다. 그 자리서 환희심이 일었다. 선방으로 가야겠다는 일념 밖에는 없었다.


스승 송암 스님 곁을 떠난 동주 스님은 7년 동안 전국 제방 선원에서 정진했다. 그렇다고 범패를 놓은 건 아니었다. 해제 때는 토굴에서 정진하며 송암 스님으로부터 사사한 범패를 읊조렸다. 다른 뜻은 없었다. 훗날 누군가에게 전수시켜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범패가 새롭게 다가왔다.


“배울 때는 소리 하나하나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만 머물러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잡념 없이 부르다 보니 범패야말로 선정의 극치에서 나오는 소리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선방 좌복 위에서 얻은 선정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분명한 건 잡념 없는 맑고 깨끗한 심신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동주 스님은 ‘바로 그것’이라 한다.


“여러 경전에서도 범음 특성에 대해 자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현담경에서는 ‘이 소리는 매우 화창하다’고 했고, 장아함 도니사경에서는 ‘범음성은 정직(正直. 바르고 곧음.), 화아(和雅. 조화롭고 우아함), 청철(淸澈. 매우 맑음), 심만(深滿. 깊고 가득 참), 주편원문(周偏遠聞. 두루 미쳐 멀리까지 들림)의 다섯 가지 청정함을 지닌 소리’라 언급하고 있습니다. 십송률에서는 ‘성패(聲唄. 범음에 의한 범패)의 소리를 들으면 신체가 피로하지 않고 기억하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게 한다. 또한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성음(聲音)의 조화가 허물어지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언어의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고 되어있습니다.”


범패의 감화력이란 실로 깊고도 폭넓게 미친다는 사실을 경전은 적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으로 범패를 해야 할까?


“송문관의(誦文觀意). 입으로는 경문을 외우지만 그 뜻을 관해야 합니다. 또한 범패의 법도를 제대로 알아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계행이 청정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옛날에는 어산에도 ‘유나’가 있었다고 한다. 법도에 맞게 소리를 내는지, 절차 흐름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냉철하게 짚어내는 임무를 유나가 맡았던 것이다. 적어도 두 번 잘못하면 재단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한다. 이는 불문율에 가깝다. 정성을 다함은 물론 이 의식 또한 수행으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경전과 옛 스승들은 현장(어산)에서 명쾌하게 전했던 것이다.


범패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다. 소리를 좀 하고 절차를 안다 해도 함부로 행할 수 없는, 계행과 법력이 수반되어야만 시도할 수 있는 의식이 범패다. 흔히 하는 염불도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 지 명확하게 다가온다.


“청아한 목탁, 염불소리 한마디가 누군가의 심금을 울립니다. 불연이 맺어지는 순간이지요. 청정심서 우러나온 소리 하나가 온 법계를 뒤흔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50년 가까이 범패에 매진 한 동주 스님의 일갈이다. 홍원사에 주석하고 있는 동주 스님은 한글의식 체계화와 보급 확산에도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범패의 맥은 지금도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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