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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용성 스님 2차 건백서

‘대처식육’ 척결…불교정화운동의 토대

1926년 9월 총독부에 건의
대처승 주지 반대 무산되자
비구·대처 구분 차선책 주장
비구 종단 조계종 출범배경


▲용성 스님
1926년 9월 어느 날, 용성 스님은 조선불교의 현실을 목격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부처님가르침에는 ‘출가수행자가 아내를 얻고, 육식을 할 수 없음’에도 어느 때부터 ‘대처식육’이 만연돼 가고 있는 조선불교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세속화되고 있는 조선불교를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용성 스님은 깊은 고민 끝에 다시 한 번 조선총독부에 진정서를 내기로 결심했다. 이미 용성 스님은 지난 5월에도 함경도 석왕사 주지 대전 스님과 합천 해인사 주지 회진 스님 등 비구 127명에게 연서를 받아 1차 건백서를 제출해 큰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당시 용성 스님은 “대처식육을 하는 승려들이 많게 되었는데 이는 불교 교지에 어긋나는 일로 조선불교를 망하게 할 징조”라며 “조선불교의 장래를 위해 대처승의 비구계를 취소하고 대처승이 주지를 맡는 것을 금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 건백서로 불교계에서는 대처식육에 대한 문제점을 공유하는 논의들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건의에도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조선불교의 세속화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때문에 용성 스님은 2차 건백서에서 근본적으로 승려들의 대처식육을 막아야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부처님계율을 올곧게 실천하고 있는 비구승의 전통을 유지할 수 있는 차선책을 제안했다. 즉 결혼한 승려와 그렇지 않은 승려를 구분해 일부 본산의 사찰만이라도 비구승이 주지를 맡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사실 대처식육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의 영향으로 알려져 있다. 즉 일본 제국주의를 등에 업고 조선에 상륙한 일본불교계에 의해 급격히 세속화가 진행됐다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이었다. 물론 이미 세속화된 일본불교의 유입이 조선불교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근대기 조선불교 내부에서의 계율 경시풍조가 만연되면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김광식 교수는 ‘용성의 건백서와 대처식육의 재인식’(2008, 선문화연구 4권)에서 “일제가 대처식육을 권장하거나 공인한 사실은 있었지만 강요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조선불교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대처식육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1920년대 후반 일본 유학승들이 대거 귀국했는데, 이들 사이에서는 결혼이 보편화돼 있었다.

 

따라서 이들이 본산 주지에 취임하기 위해 본산 사법 개정을 추진했다. 실제 1926년 3월 교무원 평의원회는 “부인을 얻지 않고 고기를 먹지 않는 스님이 불과 몇 사람 밖에 되지 않으니 가정을 이룬 승려에게도 본말사 주지 자격을 줄 것”을 결의, 총독부에 그 안을 제출했다. 이처럼 대처식육에 대한 합법화는 조선불교 내부의 요구에 의해 진행됐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이런 까닭에 용성 스님은 이런 조선불교의 현실에 개탄했고, 총독부에 법 개정 반대를 건의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제는 이를 거부하고 그해 10월 대처승의 본산 주지 취임을 인정했다. 결국 조선불교의 세속화를 막고자했던 용성 스님의 노력은 소기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용성 스님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님은 ‘대각교 운동’을 전개하며 불교 활성화와 대중화, 기존교단과의 차별성을 추진했다. 특히 용성 스님은 1927년 황무지를 개간해 경남 함양에 ‘화과원’이라는 과수원을 짓고 ‘선농불교’를 실현했으며 엄격한 지계를 바탕으로 한국불교의 전통계맥 복원에 앞장서는 등 불교전통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용성 스님의 이런 노력은 30여년 후 불교정화운동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그 결과 비구승 전통을 계승한 대한불교조계종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로부터 50여년. 조계종 각종 선거 때면 후보들의 은처 문제가 곧잘 등장하면서 적지 않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과연 조계종은 여전히 비구승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일까.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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