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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방곡사 회주 묘허 스님

삼취정계 육바라밀 떠나 성불의 길 어디서 찾으랴

부처님께서 성도 전 마신
서말 여섯되의 젖은 ‘법유’
탐·진·치 삼독심 여의고
육근 청정히 닦은 수행 상징
중생의 성불도 다를 바 없어

 

 

▲묘허 스님

 

 

‘관심론’은 마음을 관(觀)하는 이치와 방법을 설하신 달마 스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입니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대승불교를 일으키신 달마 스님에게 제자인 혜가 스님이 “어떤 것이 불교를 닦고 수행하는데 제일 요긴한 일입니까”라는 질문을 합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달마 스님의 대답은 ‘관심일법 총섭제행(觀心一法 總攝諸行)’입니다. ‘마음을 관하는 이 법이 일체를 다스리니 가장 중요한 법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답을 듣고도 혜가 스님이 계속 질문을 합니다. 몰라서가 아닙니다. 모르는 척 하면서 계속 질문을 하고 답을 듣습니다. 바로 중생을 위해서입니다. 그 문답을 기록한 것이 ‘관심론’입니다.


그 문답 중에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실 때에 관한 혜가 스님의 질문에 대해 오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혜가 스님이 달마 스님에게 묻습니다.


“부처님께서 서 말 여섯 되의 우유를 마시고서야 불도를 이루셨다고 하였는데 (스승께서는) 어찌하여 마음을 관(觀)하기만 하면 해탈할 수 있다 하십니까.”


그러니 대답하시기를 “부처님께서 마셨다고 하는 것은 세상의 부정한 젖이 아니라, 진여의 청정한 법유니라. 서 말이라고 하는 것은 삼취정계(三聚淨戒)이고 여섯 되라는 것은 육바라밀(六波羅密)이니라.”


즉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 마셨다는 젖은 사람의 몸에서 나는 부정한 젖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는 그 속에 들어있는 상징을 설명하십니다. 서 말 여섯 되의 젖이라는 말씀 속에 들어 있는 깊은 상징을 상세히 풀어주고 계십니다.


서 말은 삼취정계를 뜻합니다. 삼취정계란 섭률의계(攝律儀戒), 섭선법계(攝善法戒), 요익중생계(饒益衆生戒)입니다. 섭률의계란 부처님께서 만드신 계율을 지킴으로써 일체의 허물과 악을 버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섭선법계란 착하고 어질고 올바르고 조금도 거짓이 없는 일체의 선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익중생계란 일체의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해결해 이익 되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삼취정계란 바로 이러한 실천행을 뜻하는 것입니다.


또 여섯 되는 육바라밀을 상징합니다. 즉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여섯 가지 행을 말하는 것으로 내 몸에 있는 육근을 깨끗이 한다는 뜻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입으로 말하는 것과 같이 내 몸의 육근을 깨끗이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곧 육바라밀을 닦는 것입니다.


이처럼 삼취정계와 육바라밀이 상징하는 것은 탐진치 삼독심을 여의는 것과 육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서 말 여섯 되의 젖을 드시고 성불하셨다는 것은 탐진치를 여의고 육근을 깨끗이 닦아 진리를 구함으로써 깨달음을 이루셨다는 것이지 결코 욕망에 휩싸인 몸에서 나온 부정한 우유, 즉 욕망을 탐해서는 도를 이룰 수 없다는 뜻이 서 말 여섯 되라는 상징 속에 들어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달마 스님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시고 덧붙여 부처님을 법유를 내는 황금 소에 비유하십니다.


“대자대비로써 일체를 가엾게 여시기어 청정한 법의 육체에서 이와 같은 삼취정계와 육바라밀의 미묘한 젖을 내어 해탈을 구하는 모든 이를 먹여 기르시니 여래만이 마셔서 도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이 마시기만하면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얻는 것이니라.”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은 청정한 법 그 자체이십니다. 그것을 육체에 비유하자면 청정한 법의 육체이니 그 가르침은 또한 삼취정계와 육바라밀의 미묘한 젖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체 중생 또한 진리의 말씀, 그 청정한 법유를 마셔 삼취정계와 육바라밀을 실천하기만 하면 도를 이룰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달마 스님의 이 같은 가르침을 듣고도 혜가 스님은 또 다시 질문을 합니다.


“경전 가운데에 성전을 짓거나, 부처님의 모습을 만들거나, 향을 사르거나, 꽃을 흩거나, 장명등을 켜거나, 밤낮 여섯 차례 예불을 하거나, 지계를 지키는 등 온갖 공덕을 닦으면 모두 불도를 이룬다 하셨는데 오로지 마음을 관하는 한 가지 법이 모든 수행을 다 닦는 것과 같다고 하신 말씀은 반드시 허망한 말씀일 것입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문답입니다. 앞서도 혜가 스님은 경전을 이유로 들며 “경전에서는 이러이러하게 나와 있는데 어찌 마음을 관하는 것만으로 해탈을 이룰 수 있느냐”고 따지듯이 묻더니 스승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 또 다시 경전의 말씀을 들어 반박을 하는 것입니다. 이 역시 혜가 스님이 몰라서였겠습니까. 아닙니다. 혜가 스님은 이렇게 질문을 계속 함으로써 중생이 빠질 수 있는 어리석음을 하나하나 경계하고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가운데 이번엔 절을 짓고 불상을 조성하는 등 불사와 공덕에 관해 말하는 것입니다.


달마 스님 역시 짐짓 모르는 척하며 답을 하십니다.


“수도 없는 방편으로 중생들을 인도하시려고 유위의 일을 빌려 무위의 이치를 나타내신 것인데, 그대가 어찌 알 수 있겠느냐. 안으로 수행하지 않고 오직 밖으로만 구하며 복을 바라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니라.”


달마 스님의 설명은 이번에도 명쾌합니다. 수행하지 않고 절을 짓고 불상을 조성하고 향을 사르는 등 겉에 보이는 모습만 그럴듯하게 꾸며 놓는다고 해서 깨달음에 다가가는 것은 아닙니다. 안과 밖이 모두 맑고 깨끗해야 합니다.


그것에 대해 달마 스님께서는 ‘가람’이라는 말의 뜻이 ‘청정한 곳’임을 말씀하시며 “삼독심을 영원히 없앤다면, 육근을 항상 깨끗이 하며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여 안과 밖을 청정하면 이것이 곧 가람을 짓는 것이니라”고 설명하십니다. 불상을 조성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모습을 만들거나 그린다는 것은 모든 중생들이 불도를 구하는 것으로…여래의 참 모습과 묘한 모습을 빌리는 것이지 어찌 금이나 구리를 부어 만든 것을 말하겠느냐?”

 

부처님은 물감으로 그리거나 금이나 은이나 동으로 주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금·은·동으로 부처님을 조성하려면 쇳물도 있어야 하고 쇳물을 만들 불도 있어야 쇳물을 부어 만들 주조틀도 있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진정한 부처님은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으로 화로가 되고 법으로써 불이 되고 지혜로써 공장이 되고, 삼취정계와 육바라밀로써 형태가 되어 몸 속에 있는 진여불성을 녹이고 다스려 온갖 계율의 틀 속으로 들어가 가르침대로 받들어 행하되 하나도 빠짐없이 하면 저절로 참된 모습을 이룰 수있으리라”는 달마 스님의 가르침은 참다운 부처란 무엇인가에 관한 명쾌한 설명입니다.


이후에도 ‘관심론’에는 다섯 가지 향을 피우는 법, 꽃을 흩는 법, 등불을 밝히는 법, 도를 행하는 법, 재계를 지키는 법 등 깨달음을 이룬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고 무엇을 실천해야 하며 그 마음자세는 어떠해야 하는 지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언행이 일치되고 지행이 일치돼야 합니다. 절에 가서 절을 짓고 탑 세운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개개인은 누구나 다 불성의 종자를 갖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몸을 화로로 삼고 법의 불을 밝혀 지혜의 공장에서 진여불성을 녹이고 다스려서 삼취정계와 육바라밀이라는 계율의 틀 속에 부어 스스로 부처의 모습을 만들어야 합니다.


재가불자들이 달마 스님의 가르침 가운데서도 ‘관심론’을 만날 기회가 흔치 않습니다. 오늘 여기 모이신 불자님들이 이처럼 귀한 가르침을 만나셨으니 집으로 돌아가셔서도 잊지 마시고 실천하는 불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공부하신 것은 모두 여러분의 것입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이 법문은 경기도 광주시 대법사(주지 정봉 스님)에서 8월28일 열린 ‘달마관심론 산림법회’서 단양 방곡사 회주 묘허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묘허 스님

1957년 상주 남장사에서 한산당 화엄 스님을 은사로 득도하고 1965년 월하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1963년 불교전문강원 대교과를 졸업하고 1965년 성암 강백화상 밑에서 대교이력 및 전등록을 이수했다. 보광선원에서 수선안거 이래 제방에서 정진, 23안거를 성만했다. 1975년 은해사 말사 법주사 주지, 1979년 대전 신탄진 신흥사 주지를 역임하고 현재 단양 방곡사 회주로 주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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