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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작자미상, ‘미원계회도’

기자명 법보신문

마침내 굴러가는 진리의 수레바퀴…중생 위해 법을 펼치다

 

▲‘불족적’, 인도 보드가야.

 

 

불볕더위 속을 맨발로 걸어오신 부처님


누구에게 전할 것인가. 중생에게 진리를 전해주겠다고 결심한 부처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알라라 칼라마였다. 그는 부처님이 사문이었던 시절에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에 도달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준 선인이었다. 부처님은 그의 가르침대로 수행하여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무념무상의 평온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정도 박식하고 지혜로운 수행자라면 틀림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처님은  천안(天眼)으로 알라라 칼라마가 있는 곳을 찾았다. 그런데 이미 죽은 지 7일이 지난 뒤였다. 다음으로 떠오른 사람은 웃다카 라마풋타였다. 선정삼매의 최고 단계인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에 오른 선인이니만큼 충분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도 역시 전날 죽었다.  


부처님은 잠시 또 생각에 잠겼다. 그때 떠오른 사람들이 예전에 같이 수행하던 다섯 비구였다. 그들은 항상 부처님 곁을 따라다니며 수행했으나 부처님이 고행을 버리시자 ‘사문 고타마가 타락했다’고 오해하고 떠난 수행자들이다. 부처님은 다섯 비구들을 위해 진리를 전해주리라 생각하고 천안으로 둘러보았다. 그들은 바라나시 근처의 녹야원에 머물러 있었다. 갠지스강 근처에 있는 바라나시는 수많은 수행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부처님은 다섯 비구들을 만나기 위해 바라나시로 향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보드가야의 우루벨라에서 바라나시까지는 200km가 넘는다. 서울에서 속초까지의 거리다. 보드가야나 바라나시는 모두 무척 더운 지역이다. 머리 위로 뙤약볕이 바늘처럼 찔러대는 곳. 그 길을 부처님은 맨발로 걸었다. 동행하는 사람 하나 없이 외롭고 적막한 길을 오로지 진리를 전해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주저 없이 걸었다. 인도에 가 보면 안다. 지난여름에 우리가 겪었던 불볕더위는 엄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도에서는 배고픔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 목마름이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갈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실수록 더 마시고 싶은 타오르는 갈증. 물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더위에 지쳐 해거름이 되면 그저 하루를 견뎠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진다. 아, 오늘 하루도 잘 버텼구나.


그런 더위를 뚫고 부처님은 중생을 만나기 위해 걷고 또 걸었다. 한낮의 태양에 지글거리는 땅바닥은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달궈진 철판처럼 후끈거렸다. 돌투성이 자갈길과 쇠똥과 시궁창이 흐르는 길도 걷고 또 걸었다. 어떤 길이 앞에 놓여도 부처의 마음은 평온했다. 자비심으로 가득한 마음에는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들어설 틈이 없었다. 보드가야의 마하보디사원에 가면 입구 좌측에 ‘불족적(佛足跡)’이 새겨져 있다. 부처님의 발자취다. 돌 위에 새겼기 때문에 불족석(佛足石)이라고도 불린다. 묵직한 원형 돌 중앙에 발자국이 새겨져 있고 주변에는 사람들이 뿌린 꽃들이 떨어져 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보고 신심을 느낀 순례객들이 뿌린 꽃들이다. 딱딱한 돌조각 위에 놓인 고운 꽃잎은, 부처님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사람들의 마음이 꽃처럼 환하게 밝아진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우리도 부처님처럼 우리 발길 닿는 곳에 꽃을 피웠으면, 하는 바람도 담겨 있을 것이다.
불족적은 탑과 함께 무불상시대(無佛像時代 : B.C 6세기-A.D1세기 후반)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은 예배 대상이었다. 무불상시대를 지나 불상이 본격적으로 제작된 시대에도 불족적은 경쟁적으로 사방에서 제작됐다. 사람 키보다 더 큰 불족적도 발견할 수 있다. 불족적의 유행에 대해 사전에는 ‘누구나 부처님의 발자취를 보고 존경하고 기뻐하면 한량없는 죄업을 소멸한다고 하여 예로부터 이것을 만들어 숭배하고 공경하는 일이 유행하였다.’고 되어 있다.(‘불교사전’, 동국역경원). 성스러운 분의 커다란 발자취로 죄 많은 중생의 작은 발자취를 덮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불족적을 향한 경배가 어찌 자신의 죄업 소멸에 대한 기원뿐이랴. 부처님이 걸어가신 길이 놀랍도록 숭고하고 거룩하기 때문일 것이다.


불족적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오로지 상대방을 염려하고 소중히 여긴 부처님의 자비심의 표현이자 구도심의 상징이다. ‘삼귀의(三歸依)’를 할 때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는 ‘귀의불(歸依佛) 양족존(兩足尊)’이다. 두 발 가진 존재 중 가장 높은 이에게 귀의한다는 뜻이다. 이 때 양족(兩足)은 복덕과 지혜, 계(戒)와 정(定), 대원(大願)과 수행을 원만하게 갖춘 부처님을 의미한다.


부처님은 멈추지 않고 바라나시로 계속 걸었다. 불타는 더위 속으로 한 줄기 바람이 위로처럼 지나갈 때면 부처님의 마음이 살짝 설레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해줄 수 있다는 흥분 때문이었다.
 

 

▲작가미상, ‘성세창 제시 미원계회도’, 1540년, 비단에 수묵, 93×61cm, 국립중앙박물관.

 

 

 

▲ ‘성세창 제시 미원계회도’ 세부.

 

 

사간원 관리들의 계회


‘성세창 제시 미원계회도(成世昌 題詩 薇垣契會圖)’는 사간원의 계회를 그린 작품이다. 미원은 조선시대 언론을 담당한 삼사(三司: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하나인 사간원의 별칭이다. 전․현직 사간원의 관리들이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모여 계회를 열었다. 두 그루 소나무가 서 있는 언덕 아래는 선비들이 앉아 담소하기 좋을 정도로 평평하다. 관모를 쓰고 관복을 입은 선비들은 야외에 놀러온 사람들답지 않게 경직된 자세다. 마치 야외에서 오찬 회의를 진행하는 것처럼 편안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늘 계회는 난상토론이 벌어지는 오찬 모임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사간원 관리들의 야유회 같은 성격이 짙다. 편안해야 할 인물들을 굳이 어전회의에 참석한 신하들처럼 딱딱하게 표현한 것은 그들이 조선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중추적인 기관에서 근무하는 관료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들 앞에는 개별 반상이 놓여 있다. 격식을 갖출 때 등장하는 상차림이다. 한쪽에는 큰 탁자 위에 술동이가 놓여 있고 그 앞에서 시중드는 사람 둘이 분주하게 음식을 장만한다.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실속 있게 살아가는 사간원 관리들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는 계회다. 


언덕 뒤로는 어깨에 짐을 들고 있는 사람이 한 명 다리를 건너고 있고, 강에는 고기잡이배가 떠 있다. 계회 장면을 그렸으면서도 배경을 살리기 위해 신경 썼음을 알 수 있다. 산수에 비해 인물이 유난히 작게 표현된 것은 조선 전기 계회도의 특징이다. 조선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 갈수록 배경보다는 인물이 더 비중 있게 그려진다. ‘성세창 제시 미원계회도’는 1540년에 제작됐는데 조선 전기의 대가 안견(安堅)의 화풍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산과 언덕 등이 편파(偏頗)적으로 한쪽으로 쏠려 있으면서 구름기둥처럼 불안정한 표면처리 등은 안견의 ‘사시팔경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이다. 기록화일수록 새로운 화풍보다는 전통성을 선호한다. 


조선 초기의 계회도는 3단으로 구성됐다. 맨 위 상단에는 모임 제목을 전서체(篆書體)로 멋을 부려 썼다. 중단에는 산수를 배경으로 의관을 갖춘 선비들의 모임 장면이 그려졌다. 하단에는 계회에 참석한 구성원의 이름과 생년, 등제년, 위계, 관직명 등을 적은 좌목(座目)이 들어간다. 이런 형식의 계회도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그려지지 않은 조선 회화의 독특한 특징이다. 계회도는 문인 관료들의 모임을 그린 기록화다. 문인들은 친목도모와 풍류를 즐길 목적으로 계회를 자주 열었다. 뜻 깊은 모임이었던 만큼 계회장면은 참가자의 수만큼 그림으로 제작해 나눠 가졌다. 같은 제목의 계회도가 여러 점 전해진 이유도 그 때문이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사람과 사람은 만나고 헤어진다. 여러 명이 함께 만날 수도 있고 단 둘이 만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만남이 인생을 확 바뀔 정도로 중요한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하품만 나오는 지루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똑같은 만남인데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낸 셈이다. 어느 경우에나 만남은 거기에 참석한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있는 지 살펴보면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다섯 비구를 위해 처음으로 법의 수레바퀴를 굴리시다


드디어 도착했다. 바라나시의 녹야원에 도착한 부처님의 눈에 다섯 비구의 모습이 보였다. 부처님은 반가운 마음으로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멀리서 부처님이 다가오시는 것을 본 다섯 비구는 머리를 맞대고 쑥덕거렸다.
“저기 사문 고타마가 온다. 그는 고행을 그만 둔 타락한 사람이다. 그가 가까이 오더라도 아는 체도 하지 말고, 인사도 하지 말자. 그저 앉을 자리나 내어주자.”


그러나 그들의 결심은 몇 분도 되지 않아 무너졌다. 마음은 부처님을 외면하려 했으나 몸은 벌써 일어나 거룩한 분을 향해 합장하고 있었다. 이론보다 중요한 것이 인품이다. 부처님 주위는 보통 사람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성스러운 기운이 감싸고 있었다. 다섯 비구는 무엇에 끌린 듯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부처님을 예배하고 맞아들였다. 한 사람은 부처님의 옷과 발우를 받아 들었고, 한 사람은 물과 수건을 가져와 부처님의 발을 씻어주고 윗자리에 모셨다.


부처님은 다섯 비구들에게 진리를 말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다섯 비구들은 부처님의 법문을 잘 들으려 하지 않았다. 비록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한때 그는 고행을 버린 타락한 사문이 아닌가. 그 생각을 읽은 부처님이 중도에 대해 말씀하셨다.


“수행승들이여, 세상에는 두 개의 극단이 있다. 수행자는 그 어느 쪽에도 기울어져서는 안 된다. 첫째는 욕망이 이끄는 대로 쾌락에 빠지는 것이다. 이것은 천하고 저속하며 어리석고 무익하다. 둘째는 고행에 빠져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다. 이것은 몸만 힘들게 할 뿐 천하고 무익하다. 나는 이 양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얻었다. 중도에 의해 지혜를 얻었고 번뇌의 세계를 완전히 벗어나 적멸과 깨달음과 눈뜸과 열반에 이르렀다.”


그날 밤은 부처님이 처음으로 중생들에게 진리의 법을 말씀하신 역사적인 날이었다. 이날의 설법(說法)은 특별히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 부른다. 처음으로 법륜을 굴렸다는 뜻이다. 부처님의 설법을 전법륜(轉法輪)이라 하는 이유는 그 법이 전륜성왕이 가진 윤보(輪寶)와 같기 때문이다. 윤보는 수레바퀴 모양으로 생겼는데 왕이 행차할 때는 회전해 적을 쳐부수고 사방을 정복한다는 보물이다. 부처님의 설법은 완전한 진리로 반론의 여지가 없는 법륜이다. 전륜성왕의 바퀴처럼 막강하다. 부처님을 전륜성왕에 비유한 것은 두 사람 모두 세계를 지배한 무소불위의 정복자이기 때문이다. 전륜성왕이 물리적인 힘을 내세운 외면적인 지배자인데 반해 부처님은 바른 가르침으로 중생을 교화한 내면적인 지도자라는 점이 차이점이다.


아무리 위대한 가르침이라도 듣는 사람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소용없다. 우파카가 그런 경우다. 부처님이 바라나시에 오는 도중 한 고행자를 만났다. 그가 우파카였다. 그는 자이나교도였는데 부처님의 환한 얼굴빛을 보고 범상치 않은 수행자라 여겨 스승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그의 질문에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모든 것을 이겼고 모든 것을 깨달았다. 나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으니 스승이라 부를 만한 사람이 없다. 나는 번뇌를 물리치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몸과 마음이 모두 청정하다. 누구라도 나와 같이 마음의 장애를 제거하면 나와 같이 될 수 있다.”


근기가 부족해서였을까. 우파카는 부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그냥 가버렸다. 이로써 그는 부처님의 첫 번째 제자가 될 수 있는 행운을 놓쳤다. 이런 안타까운 모습이 어찌 우파카뿐이겠는가. 우리 또한 날마다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을.


중도의 가르침으로 시작된 부처님의 설법은 계속됐다. 쾌락과 고행의 양극단을 벗어나 중도에 의해 도달한 열반의 세계를 ‘니르바나’라고 부른다. 온갖 고뇌를 극복한 절대적인 평온 상태로 해탈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니르바나에 이를 수 있는 중도의 세계는 무엇인가. 부처님은 그것을 여덟 가지로 말씀하셨다.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으로 우리는 이것을 ‘팔정도(八正道)’라 부른다. 성스러운 여덟 가지 진리라는 뜻이다. 팔정도에 의해 사문 고타마는 지혜가 생기는 열반에 이르러 부처가 되었다.


팔정도의 실천은 왜 필요한가. 인간의 삶 자체가 괴롭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것도 괴로움이고 늙음도 괴로움이다. 질병도 괴로움이고 죽음도 괴로움이다. 싫은 사람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인간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다 괴로움이다. 이것이 바로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다.


인생이 괴롭게 된 데는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다시 태어나는 원인이 되고, 기쁨과 탐욕과 즐거움을 찾는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것, 그것은 ‘갈애(渴愛)’다. 갈애는 목이 타는 듯한 욕망과 집착이다. 성욕, 수면욕, 재산욕, 권력욕, 명예욕 등이 모두 갈애다. 감각적, 관능적, 육체적 욕망도 갈애다. 갈애 때문에 모든 생명체는 윤회의 사슬에 묶여 있다. 괴로움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찾아내는 것.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集聖諦)’다.


병을 알았으니 병을 치료해야 한다. 고의 원인이 갈애라는 것을 알았으니 갈애를 소멸시키면 된다. 타는 듯한 욕망을 남김없이 없애고 단념하고 떨쳐버림으로써 해탈에 이르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극복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滅聖諦)’다.


어떻게 하면 갈애를 없앨 수 있는가. 팔정도의 실천을 통한 중도의 깨달음에 의해 없앨 수 있다 앞서 얘기한 팔정도 즉 정견(올바른 견해), 정사유(올바른 생각), 정어(올바른 말), 정업(올바른 행위), 정명(올바른 생활), 정정진(올바른 노력), 정념(올바른 마음), 정정(올바른 명상)이 그것이다.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극복을 실현하기 위한 길의 진리(滅聖諦)’다.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集聖諦)’, ‘괴로움의 극복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滅聖諦)’, ‘괴로움의 극복을 실현하기 위한 길의 진리(滅聖諦)’를 합해 ‘네 개의 성스러운 진리’라는 뜻으로 ‘사성제(四聖諦)’라 한다. 사성제는 부처님 이전에는 결코 들어 본 적 없는 법으로 지혜가 일어나고 광명이 일어나는 불교만의 독특한 가르침이다.

다섯 비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그 중에서도 콘단냐(교진여)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자마자 바로 깨달음을 얻었다. 부처님의 기쁨은 무척 컸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신들도 기쁨의 환호성을 울렸다. 천지가 진동할 정도로 우렁찬 소리였다. 나머지 비구들은 깨달음을 얻기까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부처님은 그들을 위해 설법을 계속했다.

 

▲조정육

깨달은 비구는 깨닫지 못한 비구들이 설법을 듣는 동안 탁발을 대신하며 도반을 도와주었다. 오래지 않아 나머지 네 명의 비구들도 콘단냐와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이로써 부처님을 따르는 다섯 명의 아라한(阿羅漢)이 탄생했다. 아라한은 소승 불교의 교법을 수행하는 성문 사과(聲聞四果) 중 가장 높은 지위인 아라한과(阿羅漢果)에 도달한 성자(聖者)를 의미한다. 드디어 불(佛), 법(法), 승(僧) 삼보(三寶)로 이루어진 불교 교단이 갖춰졌다. 위대한 불교 교단의 시작이다.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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