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사연구소 문명대 소장
한국미술사연구소 문명대 소장
  • 법보신문
  • 승인 2013.10.0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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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 속 민화 요소 고찰은 민화 연구의 전환점 될 것

민족 기원·정서·생활 담은
서민 대중의 그림 모두 민화
한족화 별도의 장르로 인정
대학 내 전문학과 육성해야
불화와의 비교 연구가 초석

 

 

▲문명대 소장

 

 

민화의 성격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문인화가나 정통 화원화가가 아닌 무명의 화가가 그린 속된 그림을 민화라 한다.’ 다시 말해 비전문 화공이 민중의 그림 욕구에 부응하여 그린 소박 단순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넓은 의미의 민화는 왕공이나 사대부를 포함한 우리의 모든 국민이 그리고 사용하던 회화로써 순수 감상용이 아닌 실용적인 목적으로 그려진 작가 미상의 그림’이라고 하여 실용성과 작가미상을 강조한 민화의 정의도 있지만 대체로 위의 정의가 대세로 굳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의는 민화에 대한 단순한 정의일 뿐 체계화되고 논리화된 정의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일찍부터 민화를 민요나 민담과 함께 우리나라 예술의 독특한 장르이고 우리나라 미술의 한 특징으로 생각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화를 민족의 그림, 민중의 그림, 민생의 그림이라 정의 내릴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첫째 민족의 그림이라는 점입니다. 구석기 이래 공동생활을 영위하던 시기부터 우리 민족의 생활과 기원을 담은 그림들이 그려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원시적인 그림으로 시작했지만 차츰 세련되고 함축적인 의미도 담은 그림으로 진전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민족의 정서를 담은 그림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부터 그 원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족 정서를 담은 본격적인 민화는 18, 19세기의 것이 대부분 현존하고 있습니다. 흔히 민화로 분류하는 그림 가운데 민족 정서가 담겨 있지 않는 그림은 엄격한 의미에서 민화라 할 수 없고 다만 그런 그림이라 하더라도 내용에 민화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든가 민족 정서로 저절로 변해진 내용이라면 민화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둘째 민족의 그림입니다. 민화는 민중 속에서 저절로 발생하고 꽃피운 그림으로 이를 향유하는 사람도 서민 대중이고 이를 그린 작가도 이 대중 속에서 자발적으로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그림은 서민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즐겨 가질 수 있으며 누구나 깊은 수련 없이도 쉽게 배울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민 대중 속에서 저절로 생겨난 이 민화는 작가와 향유층이 혼연일체가 된 예술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작가도 서민들 속에서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민생의 그림입니다. 민화는 서민대중 이른바 민중의 갖가지 생활상을 그린 그림을 말합니다. 수렵어로나 농업생산은 물론 상공업, 집안 대소사 그리고 종교 의식과 사상 활동에 이르기 까지 서민대중들의 모든 생활상을 그린 그림을 민화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동의 기쁨과 고달픔, 서낭당이나 칠성각에서의 간절한 기원 등이 담겨있는 그림도 다 같은 민생의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민화는 민족의 정서를 담은 그림이며 민중들 속에서 저절로 생성된 그림이고, 민중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그린 그림이라는 뜻을 간직하고 있다고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민화에 궁중화나 문인화까지도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민요와 대비해 볼 경우 이들을 민화라 말할 수는 도저히 없을 것입니다. 대신 민족화의 개념을 넓혀 민족의 정서를 표현한 그림을 모두 통틀어 한국민족화라 정의하고 문인화나 종교화 등은 제외한 한국민족이 조성한 모든 채색화를 한족화 또는 한국화로 넓힐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화 또는 한족화를 우리나라 대표적 그림으로 내세우고 대학의 학과로 발전시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민화도 한국화 내에 중요한 장르로 자리 잡는다면 앞으로 민화의 위상도 확고하게 높아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민화의 정의가 민족, 민중, 민생의 그림이므로 이런 특징이 잘 남아있고 그 조성연대도 정확한 그림은 불화 밖에 없습니다. 불화 속에는 민화의 특징이 잘 남아 있을 뿐 아니라, 편년도 확실하기 때문에 민화를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고 또한 이를 체계화하고 편년하는데는 더 없이 좋은 자료이며 그 기본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화 가운데 민화적 요소가 가장 잘 표현된 그림은 감로도, 괘불도, 수월관음도, 약사불도, 치성광불도, 산신도, 신중도, 영정 등이 있습니다.


감로도(甘露圖)는 재의식에 주로 사용되던 불화로 천도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세속의 온갖 생활고와 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활의 모든 단면들이 묘사되고 있어 민화의 요소가 다양합니다. 보석사 감로도(1649년)는 병풍과 모란꽃의 묘사가 민화의 모란꽃과 비교되고 있습니다. 직지사 감로도의 시장에서 연희를 하는 연희장면도 민화의 좋은 소재가 되며, 호환을 그린 장면의 호랑이는 민화의 호랑이와 비교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양식 편년을 정할 수 있습니다. 통도사 감로도(1786년)의 백호도 민화의 백호와 비교되기도 합니다. 청룡사 감로도(1682)처럼 연지의 연꽃들을 민화의 연꽃과 비교하면 그 특징과 조성연대를 비교사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각종 보살상의 연꽃 지물도 민화의 꽃들과 얼마든지 비교될 수 있습니다. 직지사 감로도의 연자·연꽃들도 민화의 연꽃들과 비교되며, 용주사 감로도의 맹인점쟁이나 고아, 서당 등도 민화의 천연성이 강한 것입니다. 이처럼 시대에 따른 감로도 속의 소재들을 민화들의 도상 및 양식 특징과 서로 비교하면 민화의 편년을 정할 수 있고 지방 양식까지도 파악할 수 있어 민화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괘불화에도 민화적 요소가 상당수 있으며 특히 모란 그림 같은 꽃 그림이 중요시됩니다. 불교박물관 소장 청량사 석가괘불도(1725년)에는 석가모니부처님 주위로 모란 꽃송이 들이 묘사되고 있는데 풍성하고 화려한 모양이 일품이어서 민화의 모란과 잘 비교되고 있습니다. 또한 보관의 꽃들과 천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조선조 말 관음괘불도 등에서 보이는 동자도 민화의 좋은 소재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월관음도, 약사도, 치성광불 속에도 다양한 민화적 요소가 있습니다.


수월관음도에는 하늘에 달이 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달 속에는 방아 찧는 토끼가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 방아 찧는 토끼는 보편화된 민담으로 민화의 중요한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강산 장락사 소장 수월관음도나 경도 노산사 수월관음도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약사삼존도나 약사불도 중 일광과 월광보살의 보관에는 세발 까마귀와 방아 찧는 토끼 그림이 대부분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국립박물관 약사삼존도 등은 대표적인 예이며 이런 표현은 상당수 약사불도에 표현되고 있습니다.


치성광불도 또한 치성광불의 좌우에는 일광과 월광보살이 주로 협시하고 있기 때문에 삼족오와 토끼 그림이 상당수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런 삼족오나 토끼 도상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유래하지만 조선 말 민화의 중요한 소재로 묘사되기 때문에 서로의 도상특징을 비교하면 민화의 특징과 편년이 밝혀 질 수 있을 것입니다.


산신도에는 늙은 고송 아래에 호랑이가 앉아 있거나 누워있고, 이 옆에 의인화된 산신이 신선 또는 도인의 풍으로 앉아있으며 그 옆에는 차 끓이는 동자가 묘사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호랑이는 상당히 해학적인 모습이어서 민화의 호랑이 그림과 거의 유사하며 신선과 동자 등도 민화의 주제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이러한 호랑이 그림은 호랑이 민화의 편년과 특징 연구에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지장보살도나 신장도 등 18세기 말 내지 19세기 그림에서는 동자도 등이 원 속에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 또한 민화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은 영정의 민화적 요소입니다. 조선시대 후반기의 수많은 영정들에는 민화적 요소가 많이 묘사되고 있는데 책거리, 돗자리, 기명 등 다양한 요소들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민화는 민족의 그림이자 민중의 그림이며 민생의 그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민화는 궁중화 등과 다르지만 민화의 한 성격인 민족화를 더 확대해서 문인화나 종교화를 제외한 채색화를 한국민족화 또는 한국화로 정의해서 민화도 이 한국화의 한 장르로 평가해야 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또한 불화 속 민화적 요소는 매우 다양해 이들을 민화와 비교사적으로 논의한다면 민화의 특징과 편년을 체계화 할 수 있어 민화연구에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이 강연은 한국민화학회가 9월7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민화와 불교문화’를 주제로 개최한 학술발표회에서 문명대 한국미술사연구소장이 ‘민화의 성격과 불화와의 관계’를 주제로 발표한 기조강연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문명대 소장
미술사학자이며 동국대 예술대학 미술학과 교수, 한국미술사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미술사연구소장이며 동국대 명예교수, 서울시 문화재위원장이다. 저서로 ‘한국조각사’ ‘한국미술사의 이론과 방법’ ‘고려불화’ ‘마애불’ ‘한국불교미술사’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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