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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고혼청

기자명 법보신문

외로운 혼을 초청하는 의식
왕조시대 끝나며 형태 변화
국가청·승혼청 내용 사라져

 

고혼청은 재의식인 관음시식 등을 봉행하기 위해 시식을 베풀 대상을 청하는 의식이다. 앞 호에서는 고혼청을 하기 전에 청하는 증명청에 대해 설명했었다. 고혼은 무주(無主)고혼으로 제사를 올려줄 주인이 없는 외로운 혼을 지칭하며, 증명청 다음에 고혼청이 이어진다. 그런데 고혼청의 청사를 보면, “일심봉청~ 누구의 모모영가~ 승불위광 내예향단 수첨법공”의 구조인데, ‘~’ 자리에는 4구의 변려문의 법문이 설해지고 있으며, ‘모모 영가를 일심으로 받들어 청하오니 부처님의 위광을 받들어 향단에 이르러 법공양을 받으소서’라고 하여 ‘누구의 모모 영가’라고 하여 특정영가를 우선적으로 청하고 있다. 현재 행해지는 시식의 고혼청은 대개 그렇다고 보인다. 당일 재를 올리는 특정의 대상 영가를 청하여 제사를 올리는 시식을 하면서 ‘고혼청’이라고 하고 있다. 연유는 무엇일까.


석왕사 ‘권공제반문’(1574)의 예를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 의문에는 증명청 다음에 국혼청(종실청), 승혼청, 고혼청의 세 곳의 영가를 청하는데, ‘일심봉청~ 제왕 명군 후비와 병종권속’이라거나 ‘승니등중’이라거나 ‘비구와 단월의 기부 선망부모 사존제자 열명영가 삼대가친 구족망령 시방법계 무주고혼등중’이라고 청하는 대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당해 재자의 영가는 3번 청한다. 그런데 이후 국가불교가 아닌 시대를 지나면서 국혼청, 승혼청은 사라지게 되었다. 국혼청만 사라져야 함에도 승혼청도 같이 사라져 버렸다. 법계고혼청만 남았지만 이름은 여전히 고혼청이라고 부르고 있다. 현대의 조계종 ‘통일법요집’의 ‘영가청’이라는 명명은 그 범위가 유주무주 영가일 터이므로 아쉽지만 한 의미는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국혼과 승혼청이 사라지고 고혼청만 남게 되자 고혼보다 우선적으로 재자의 인연 영가를 먼저 세 번 청하고 이후에 고혼청을 하는 방식이 새롭게 형성되었다. 예를 보면, ‘당일 재를 올리는 인연 영가가 주인이 되어 상세선망 광겁부모 다생사장 누대종친 원근친척 제형숙백 자매질손 일체 친척등중영가’라고 하며 당일 재 도량의 주변에서부터 다양한 인연의 무주고혼 영가의 초청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그런데 당해 영가가 주(主)가 되어 조상과 스승 영가와 도량내외의 유주무주영가, 운집고혼 영가, 비명액사 일체애혼 등을 청하게 되면서 ‘다생사장’이라고 하여 별청의 승혼청의 흔적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또 여기 등장하는 ‘영가위주(靈駕爲主)’라는 표현은 아마도 조선 후기의 모습으로 이해된다. ‘작법귀감’(1826) 대령에도 국혼은 구별하고 ‘노소비구 사미행자 단월 등 각각 복위 현고현비 법사은사~ 일체친속영가’라고 하여 승혼과 인연영가를 함께 청하고, 가람창건 이후 일체 유주무주 고혼불자를 청하지만 ‘영가위주’라는 표현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불교가 오랫동안 국가불교적인 지위를 구가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로 말미암아 찬란한 불교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해서 오늘날 불교계는 한국문화재의 많은 숫자가 불교문화재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것을 자랑하고 자부심을 갖는 것이 능사인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성운 박사

문화재는 문화의 산물이다. 문화재는 문화를 형성한 주체들의 수행과 사상과 철학을 읽어내고 동화될 때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화재만 자랑하는 것은 족보만 자랑하는 것만도 못할 수 있지 않을까.

 

이성운 동국대 외래교수 woochun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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