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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원장 직선제의 문제점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3.10.07 11:11
  • 수정 2013.10.0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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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 조계종의 향후 4년을 이끌어 갈 새로운 총무원장 선출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1994년 개혁종단 출범 이후 현 총무원장의 재임 시도라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이번 선거에 대한 사부대중의 관심은 뜨겁다. 특히 선출 방법의 문제가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한때 15인으로 구성된 추대위원회에서 선출하자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무산되고, 결국 종전대로 중앙종회의원 81명과 조계종 24개 교구본사에서 교구종회를 통해 선출된 240명, 도합 321명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에서 간접선거로 선출하게 되었다. 하지만 선거인단 구성에 대한 사부대중의 불신감은 높으며,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실제로 동화사, 마곡사, 그리고 법주사 등의 선거인단 선출 과정이 문제시되며 또다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추대위원회도 간선제의 선거인단도 신뢰할 수 없다는 사부대중이 주목한 것은 직선제이다. 일정한 자격 이상의 비구 혹은 비구니들이 모두 한 표씩 투표권을 행사하여 총무원장을 선출하는 방식의 직접선거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적어도 총무원장과의 역학 관계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추대위원회나 간선제의 부작용을 막고, 승가 구성원 전체의 의견을 반영하여 지도자를 선출하자는 것이다. 종단의 지도세력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현 상황을 고려할 때 이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자, 지금보다는 나은 결과를 도출해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심지어 유력 후보의 공약에까지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직선제 도입에 대한 승가 구성원의 인식은 분명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흐름을 바라보며 조계종이 불교라는 종교집단으로서 추구해야 할 이념을 간과한 채, ‘현실 고려’라는 명분하에 세속적 기준을 너무 쉽게 도입하려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승가에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승가 고유의 전통인 갈마(磨)가 있다. 현대의 우리에게는 산중공의 혹은 대중공사라는 말로 더 익숙한 승가 고유의 회의법이다. 혹자는 갈마를 근거로 직선제의 도입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이것은 아주 잘못된 이해이다. 일정한 경계 안에 속한 구성원 전원이 참석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이 존중되는 형태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갈마는 분명 직선제와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나 양자 간에는 매우 중요한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은 결과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본 가치의 차이이다. 직선제는 다수결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표를 주었다고 하는 결과가 정당성을 부여한다. 여기에는 많은 사람이 지지했다는 사실 외에 다른 가치는 없다.


하지만 갈마는 다르다. 갈마에서 내려진 결과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권위는 그 결과가 부처님의 법과 율에 부합하는가, 그리고 그 부합하는 결론에 모든 구성원이 만장일치로 동의했는가, 이 두 가지 점이다. 어떤 종교이든 추구하는 이념이 있으며, 구성원들은 그 이념의 실천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있다. 불교의 경우, 모든 구성원이 공통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는 당연히 부처님이 설하신 법과 율이다. 따라서 지도자를 선출하는 갈마 역시 절대적 판단 기준은 법과 율이어야 하며, 이에 근거하여 구성원의 의견 또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부처님의 법과 율에 근거하여 구성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선출’했다는 사실 만이 정당성을 부여하는 유일한 권위가 된다. 따라서 승가는 부처님의 법과 율에 해박한 지도자가 다른 구성원을 여법한 방향으로 인도해 가는 방법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갈마는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인 것이다.

 

▲이자랑 교수

직선제는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국가 지도자를 선출하는 최선의 방법일 수는 있지만, 여법에 의한 여법을 위한 여법한 승가공동체를 구현해야 할 승가 지도자를 선출하는 방법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직선제는 승가의 여법한 지도자 선출방법이 될 수 없다. 갈마를 되살려야 한다. 

 

동국대 불교학술원 이지랑 연구교수 jarang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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