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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국화축제와 총무원장 선거

도심 한복판 국화로 장엄한 도량
향긋한 꽃향기는 시름도 잊게 해
20일간 치열히 진행됐던 선거전
모두 털어내고 화합의 꽃 피우길

10월10일 세간을 뜨겁게 달궜던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가 끝났다. 20일에 걸친 치열한 선거 열기가 끝난 지금 문득 하늘을 보니 세상은 가을에 젖어있다. 하늘은 말끔하게 짙푸르고 바람은 몰라보게 서늘해졌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의 기억도, 선거과정의 급박함도 어느새 과거의 기억 저편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무엇보다 조계사의 가을이 싱그럽다. 서울 도심 한복판의 삭막한 도량이 언제 이렇게 변했는지 1만5000개 국화화분으로 만들어 낸 형형색색의 조형들이 한 폭의 그림을 보는듯하다. 조계종 종단 정치 1번지라는 조계사의 아름다운 변신은 더러운 진흙 속에서도 맑고 깨끗하게 피어나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의 연꽃과 다를 바 없다. 눈을 맑히는 국화꽃의 향연에 가을로 몸을 씻어내는 느낌이다. 꽃을 보는 내내 마음마저 허허로워 비좁던 도량이 어느 때보다 넓어져 있다. 특히 조계사 일주문을 장엄하고 있는 두 분의 미륵부처님에 눈길이 간다.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모습이 의미심장하다. 선거의 앙금을 모두 털어버리고 화합하라는 부처님의 당부처럼 느껴진다.

돌이켜보면 제34대 총무원장 선거는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과거 10일에 불과하던 선거기간이 이번에는 20일로 늘어났다. 그러다보니 어느 때보다 선거가 과열됐다. 선거는 승패가 있는 ‘제로섬’ 게임이다. 후보자들이 종책선거와 선의의 경쟁을 약속했지만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상대후보에 대한 과거를 들추고 흠결을 드러내는 일도 적지 않았다. 선거는 조금씩 혼탁해졌고 그 속에서 불교의 위상이 많이 추락했다. 불자들도 적잖이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자비문중이라고는 하지만 자비는 엷었고, 상대에 대한 배려도 약했다. 세간정치와 다를 바 없다는 볼멘소리도 많았다.

만장일치와 대중공의라는 불교의 전통적인 방식을 포기하고 선거를 통해 종단의 수장을 선출하는 방식을 받아들인 이상 종단의 세속화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역시 선거로 종단의 수장을 뽑는 것인 옳은 일이지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찌됐든 선거는 끝났다. 날선 공방이 오가던 조계사는 간만에 평온을 찾았다. 조계사를 지천으로 장엄하고 있는 국화의 향기를 맡으며 선거에 대한 자잘한 기억을 이제는 과거로 돌렸으면 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었을 것이라는 시인의 말처럼 선거를 둘러싼 많은 일들은 조계종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진통이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그리고 이제 서로 앙금을 모두 털어버려야 한다. 출가수행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한다. 붉혔던 얼굴을 펴고 서로 함께 법을 구하는 도반임을 확인했으면 한다. 스님들의 싸움에 재가자가 끼면 결국 상처만 입는다는 말이 있다. 편이 갈려 싸우던 스님들이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친밀해져 있는 모습을 비꼬는 말이다. 스님들의 이런 모습에서 과거 재가자들은 배신감 비슷한 것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선택을 했다고 반드시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 생각이나 관점이 다르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쉽게 화해하는 스님들의 모습은 세간의 인정에서 좀 더 자유롭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선거를 놓고 대립했던 스님들이 하루빨리 도반으로서의 애틋함을 회복했으면 한다.

 

▲김형규 부장
 

운문 스님은 가을을 체로금풍(體露金風)이라고 했다. 가을바람에 본체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말이다. 봄부터 여름까지 온몸을 치장했던 잎들과 열매가 떨어지고 나면 나무 본래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번 선거를 통해 조계종이 처한 모든 모순들이 거짓 없이 드러났다. 가을바람에 욕심의 찌꺼기를 털어내 버린 나무들처럼, 선거의 치열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지을 수밖에 없었던 허물을 불어오는 바람에 모두 날려버렸으면 한다. 

 

김형규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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