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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근기

기자명 도암 스님

적성 맞지 않으면 평양감사도 마다해

불교에서 근기란 실력과 적성
참선 외 9개 공부법으로 구분
방편이 적성에 맞아야 성취
근기 맞는 수행으로 미망 벗길


몇 달 전의 일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신도가 근심을 털어놓았다. “아이가 모 대학을 다니는데, 그만두고 다시 재수를 하려고 합니다.”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 말을 들어보니 그 학교의 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불교에서는 개인의 실력과 적성을 묶어서 근기라고 한다. 불법이 아무리 좋아도 근기에 맞지 않으면 시간만 낭비하고 개인적으로는 고생만 한다. 근기에 맞는 수행 방편문을 만나면 수행하는 만큼 진보가 있게 된다. 세간의 삶이나 출가의 삶이나 근기에 맞는 인연을 만나야 성취가 있다. 정행품 경문을 보자.
“선관당(禪觀堂)에 들어갈 때면, 중생들이 위없는 선관당의 보좌에 올라 부동의 경지에 안주하기를 발원해야 한다.”


‘선관당(禪觀堂)에 들어갈 때면’에서 ‘선관당(禪觀堂)’은 수행을 하는 장소나 집을 말한다. 참선을 위해서는 선당이 있고 염불을 위해서는 염불당이 있다. 경전을 배우고 가르치며 연습하는 장소는 강당이 된다. 건축물이 있어도 되고 건축물이 없는 노지도 가능하다. 선관당이라 말한 것은 그 기능을 말한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8만 4천 법문이 있고, 이 법문이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선관(禪觀)이다. 일체의 법문이 선관을 목표로 하고, 이것을 벗어나지 않는다.


불법을 배우고 성취하는 방법으로 중국에는 10개 종파가 있다. 이 가운데 참선을 중심 수행으로 하는 종파가 있느니 종문(宗門)이라 한다. 나머지 아홉 종파는 의지하는 경전의 종류에 따라 나누어졌는데 교하(敎下)라 한다. 종문의 ‘종’자와 교하의 ‘교’자를 따서 종교라 하고, 종교라는 말은 10종파를 아우르는 일체불법을 이르는 말이다. 현재 일반상식으로 말하는 종교와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10개 종파를 공부하는 10개의 반으로 나눌 때, 종문(宗門)의 선종은 천재 반에 속한다. 선종의 조사들이 말에 의하면 최상승의 근기라야 이 공부법으로 성취를 이룰 수 있다. 최상승 근기는 수행의 측면에서 보면 천재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숙세의 선근이 깊어서 일체 세간의 명리에 마음이 없다. 선지식을 만나 탁마를 받으면 오래지 않아서 깨달음을 얻는다. 깨달음을 얻고 점진적으로 닦아나가는 사람과 단박에 깨달음과 닦음을 성취하는 사람의 두 부류가 있다.


교하(敎下)에는 대승의 화엄, 천태, 유식, 삼론, 남산율, 밀종, 정토와 소승의 성실, 구사가 있다. 일반 근기의 사람들이 선택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수행방편문이다. 일반적인 사람은 일반적인 과정을 소화하는 반에 들어가 학습을 해야 수행에 성취가 있다. 경전을 통해 불법의 대의를 배우고 종파의 수행법을 익혀나간다. 세상에서 익힌 악하고 탁한 습관을 경전의 가르침에 비추어 알아차리고 내려놓는다. 악하고 탁한 습기가 줄어들면 자연히 삼매를 깊게 체득하고 깨달음이라는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선정이 깊어지면 지혜를 열게 되는 것이다. 견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진행하는 교하(敎下)의 수행은 지관(止觀)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불법을 배우고 익히는 장소는 모두 종파에 상관없이 선관당(禪觀堂)이라 한다.


‘위없는 선관당의 보좌에 올라’에서 ‘위없는 선관당’이란 무상정등정각을 말한다. 불법에 인연이 있어 불법을 배우고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배우고 수행하는 실질적인 목표가 있어야 한다. 불법을 배우는 것이 단순히 불법에 대한 지식정보를 늘리는 것이라면, 그 사람에게는 이 불법이 여러 가지 세간의 학문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식정보는 늘어도 지혜는 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불법을 통해 몸의 행위가 지혜롭고 말의 행위가 지혜로우며 마음의 행위가 지혜롭기를 바란다. 지혜롭다는 것은 선한 것을 포함하는 말이다.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가 점점 더 선하고 지혜로워져야, 불법을 만나 배우고 수행한 실질적인 이익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최종 목표는 부처님의 경지인 최상의 깨달음을 내가 얻고 또 다른 모든 사람이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부동의 경지에 안주한다’는 것은 계·정·혜 3학을 잘 닦아서 지혜를 얻었다는 말이다. 근기가 수승하다는 말은 기초가 튼튼하다는 말이다. 금생에 배웠든 전생에 배웠든 계법을 배우면 계법이 생활이 되고 교법을 들으면 교법이 생활이 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나쁜 견해나 습관을 빠른 속도로 벗어나고 좋은 습관을 빠른 속도로 배운다.

 

보통의 사람이 노력하면 2보 전진 1보 후퇴를 하면서 꾸준히 나아간다. 하근기가 중근기가 되고 중근기가 상근기가 된다. 상근기가 최상승 근기가 되고 깊은 삼매력으로 지혜를 열어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깨달음이 있어야 더 이상 번뇌나 망상의 영향력에 의해 흔들리는 일이 없게 된다.

 

▲도암 스님

즉 괴로움과 미망을 벗어나는 것이다. 모든 중생이 다 이렇게 되기를 발원하면서 수행을 시작하는 것이 보살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정행품에서는 ‘중생들이 위없는 선관당의 보좌에 올라 부동의 경지에 안주하기를 발원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도암 스님  송광사 강주 doam19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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