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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통사곰파를 지나 부탄으로

멀게만 느껴지던 은둔의 왕국, 한 걸음 옮기니 그곳이었다

부탄 양식 불교 사원의
낯선 법당 예절에 당황


인도-부탄 국경 마을은
왕래 자유로운 한 동네
간단한 출입국 절차 밝고
문 하나 지나니 ‘다른 세상’

 

 

▲통사곰파는 칼림퐁 인근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원이다. 1692년 당시 부탄 국왕의 직접 지휘 하에 창건돼 부탄식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스님들이 기도법회를 진행하고 있는 법당 내부의 모습이 앞서 보았던 시킴의 여느 곰파와 확연히 다르다.

 

 

인도 시킴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통사곰파다. 칼림퐁 인근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인 통사곰파는 1692년 부탄 국왕이 직접 지휘해 창건한 부탄 양식의 사원이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곰파 건물은 19세기에 새로 지어진 것이다. 고르카족의 독립운동이 거세던 시기 사원이 파괴됐기 때문이다. 이후 시킴 국왕의 지원을 받아 복원됐고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벽화가 남아있어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통사곰파는 칼림퐁 시내의 북서쪽에 인접해 있다. 부탄식 사원인 통사곰파의 모습은 앞서 지나온 시킴의 여러 사원 건물과는 분명 달라 보인다. 여타 사원의 중심법당들이 전면에 회랑을 설치하거나 화려하게 장식돼 있는 넓은 창을 갖고 있던데 비해 이곳 통사곰파는 기도바퀴가 건물 주위로 띠를 두르듯 설치돼 있다. 쭉 뻗어 나온 지붕 처마와 소박한 장식의 작은 창문들도 앞서 보아온 곰파와는 다른 모습이다.

 

 

▲통사곰파의 중심법당은 19세기 재건된 것이다.

 


법당 내부의 모습도 새롭다. 일반적으로 법당 입구 맞은편 전면에 불단이 마련돼 있어 참배객은 법당에 들어서면서 불단에 모셔져 있는 불보살상을 바로 참배할 수 있다. 그러나 통사곰파는 법당 한 가운데 네모난 기둥처럼 불단이 설치돼 있다. 그나마도 불단 전체가 오색천으로 가려져 있어 어느 종류의 불보살상이 어떤 형태로 봉안돼 있는지 보이질 않는다. 때마침 스님들의 기도 시간이어서 법당 안에는 70여 명 스님들의 기도 소리가 낭랑하게 울린다. 불단이 중앙에 마련돼 있으니 스님들은 중앙의 불단을 바라보며 법당의 벽을 등지고 빙 둘러가며 앉아있다. 불단이 한 쪽 벽면에 설치돼 있을 경우 불단 가까운 맨 앞자리부터 자연스럽게 상석이 되는 것과는 달리 중앙의 불단을 중심으로 둘러가며 자리가 배치돼 있으니 그 앉은 모습이 마치 ‘원탁의 기사들’ 같아 딱히 어느 곳이 상석이랄 것이 없다. 다만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안쪽 중앙에 조금 높게 법상이 마련돼 있어 그 곳이 가장 상석임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일행이 법당에 들어서자 지객 소임을 맡은 듯 한 스님 한 명이 작은 카펫을 깔아 자리를 마련해 준다. 이런 형태의 법당은 처음이라 불단에 어떻게 참배해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더구나 70여 명 스님들이 모두 중앙의 불단을 바라보며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으니 그 가운데로 들어가 불단 앞에 설 용기가 나질 않는다. 잠시 눈치만 살피며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있는데 마침 티베트 복식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인이 법당에 들어선다. 순간 그 여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재빨리 관찰한다. 법당에 들어선 티베트 여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 중앙의 불단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합장을 하고 불단 주변을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돈다. 입으로 외우는 것은 아마도 ‘옴마니반메훔’ 진언인 것 같다. 그렇게 세 바퀴를 돌고 나서는 네모난 불단의 4면에서 각각 삼배를 한다. 미루어 불단의 네 방향에 각각 불보살상이 봉안돼 있는 것이 분명하다. 스님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스님들 역시 법당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여인의 행동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여인의 참배가 끝나자 역시나 스님이 자리를 마련해 준다. 모든 것이 우리와는 다른 모습. 방법을 알았지만 법당 중앙으로 걸어 들어갈 용기는 아직 부족하다. 그냥 앉은 자리에서 우리식으로 삼배를 올린다.


스님들의 기도는 7일간 계속되는데 아마도 티베트 전통의 기도 기간인 듯 하다.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네 차례로 나눠 한 번에 두 시간 가량 기도를 계속한다고 하니 매우 중요한 기도 의식인것 같다. 스님들 중에는 어린 동자승도 여럿이다. 이곳 통사곰파에는 동자승들을 포함 약 80여 명의 스님이 있다. 기도 시간에는 특별한 소임을 맡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참석해야 한다. 그 특별한 소임 중에는 불자들이 공양한 버터등잔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소임도 포함되나보다. 법당 옆 작은 건물엔 등잔에 버터로 불을 밝히는 버터등 수십 개가 나란히 놓여 불을 밝히고 있다. 그 안에서 한 젊은 스님이 꺼진 버터등에 새로 불을 붙이고 있다. 버터가 다 타버린 등잔에 버터를 보충해 넣는 것도 이 스님 몫이다.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등잔을 살피는 스님의 모습을 잠시 카메라에 담는데 운전기사가 재촉을 한다. 오늘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중심법당 옆에는 버터등을 켜는 기도공간이 따로 있다.

 


칼림퐁의 통사곰파를 마지막으로 시킴에서의 일정은 마무리됐다. 오늘 중으로 다음 목적지인 부탄으로 들어가야 한다. 육로를 이용해 인도에서 부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국경마을인 자이가온을 거쳐야 한다. 칼림퐁에서 자이가온까지는 약5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업무가 오후 6시에 끝나므로 그 전에 인도 출국과 부탄 입국까지 모든 절차를 마쳐야 한다. 서둘러 동쪽으로 길을 잡는다.


부탄으로 가는 길은 멀다. 칼림퐁시내를 벗어나니 고도는 급격히 낮아지고 기온은 빠르게 오른다.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평지도 넓게 펼쳐진다. 구불구불한 산길만 며칠 달렸더니 오랜만에 만나는 곧은길이 도리어 어색하다. 그런데 운전기사는 간만에 신이난 모양이다. 제법 속도를 올리며 달리는가 싶었는데, 달려도 너무 달렸다. 분명 ‘부탄 방향’이라는 도로안내 표지를 보고 들어선 길이 점점 한산해 지더니 마침내 차가 다니기 힘들 정도로 작은 시골길로 바뀐다. 이 길은 부탄과 인접해 있는 인도 국경 지역의 마을 사람들이 걸어서 부탄을 오가는 옛 길이다.

 

외국인과 차량은 이 길로 부탄에 입국할 수 없어 차를 돌린다. 사실 부탄과 인도의 국민들은 비자없이 서로의 국경을 오갈 수 있다. 인도 화폐인 루피도 부탄 내에서는 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니 국경마을 주민들은 그냥 이웃 동네 가듯 서로 오가는 일이 흔하다. 하지만 우리는 정해진 관문과 절차를 거쳐야 한다. 무엇보다 부탄에서 우리를 안내할 가이드가 아침 9시부터 국경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이래저래 마음이 조급하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1시간여 만에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 인도와 부탄의 국경마을 자이가온에 가까워지자 길가에 붉은색 번호판을 단 차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한다. 부탄 차량이다.


자이가온은 작지만 국경마을답게 차량으로 북적인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길가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드나드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인도와 부탄을 오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출국도장을 받아야만 하는 외국인들이 일부러 찾아가야하는 곳이다. 입구에 내리니 부탄 전통복장을 차려입은 가이드 킨레이씨가 일행을 먼저 알아보고 다가와 인사를 건낸다. 그 역시 별다른 절차 없이 자이가온으로 들어온 듯 싶다. 그의 도움을 받아 출입국사무소에서 여권을 제출하고 간단히 출국 절차를 마친다. 인도에서 우리를 태워준 차량 운전기사와는 이곳에서 작별하고 킨레이씨가 타고 온 붉은색 번호판의 부탄 차량으로 갈아탄다. ‘인도 국경’이라는 작은 안내판이 서 있는 국경을 넘어서니 곧바로 부탄 전통 양식으로 세워진 커다란 ‘푼출링게이트’를 지난다. 이곳부터 부탄이다.


푼출링은 인도의 국경마을 자이가온과 맞닿아있는 부탄 쪽 마을이다. 하지만 국경선에 걸쳐있는 하나의 마을을 인도에서는 자이가온, 부탄에서는 푼출링이라고 부른다는 편이 더 정확할 듯 싶다. 두 마을 사이의 왕래가 그만큼 자유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자이가온은 전형적인 인도의 도시답게 복잡하게 오가는 차량 사이로 오토바이와 자전거, 사람들이 뒤섞여 지나다니는데 비해 푼출링으로 들어서자 도로의 표정부터가 확연히 다르다. 차도에는 중앙선과 횡단보도가 표시돼 있고 길가에는 보행자들을 위한 인도가 설치돼 있다. 남녀 모두 전통복식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눈에 띄고 많이 오가고 길가에 마구 버려져 있던 쓰레기도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무엇보다도 인도 국경 턱밑까지 돌아다니던 길가의 소들이 푼출링에서는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는다. 분명 이곳은 부탄이다.


일행을 태운 차는 별도의 절차 없이 푼출링게이트 바로 옆 호텔에 일행을 내려 준다. “이곳에서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킨레이씨가 일행의 여권과 사진 등을 갖고 가 푼출링게이트 옆에 있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입국 절차를 밟는다. 입국 확인에 굳이 본인이 갈 필요가 없다. 부탄의 독특한 외국인 관광객 관리시스템 때문이다.

 

 

▲부탄의 관문인 푼출링게이트. 부탄 전통건축양식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부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소 15일 전 부탄 입국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부탄에서 머물 호텔 예약확인서와 부탄에서 이용할 차량 및 가이드, 그리고 식사비용 등이 포함돼 있는 관광비용을 미리 지불했다는 영수증을 제출해야 한다. 그 비용이 하루 평균 200달러 전후다. 물론 더 좋은 호텔이나 차량, 음식 등 고품질 여행을 원할 경우 이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른다. “부탄 여행은 돈이 많이 든다”는 입소문이 생겨나는 이유다. 이런 모든 절차는 여행사를 통해 대행해야 하는데 부탄의 모든 여행사들은 부탄왕실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다. 부탄으로 들어오는 외국인 여행자수를 제한하겠다는 취지인 동시에 관광객들이 지불하는 비용의 일부가 왕실로 전달돼 각종 국영사업을 진행하는 중요한 국가제정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30여분 만에 킨레이씨가 입국확인도장이 찍힌 여권과 관련 서류, 그리고 기자임을 증명하는 프레스카드를 들고 돌아온다. 이 카드가 있어야만 관공서와 사원 등에서 취재가 가능하다고 한다. 프레스카드를 받아드니 드디어 ‘히말라야에 꽃핀 은둔의 불교 왕국 부탄’에 대한 취재가 시작된 듯 가벼운 흥분이 몰려온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프레스카드가 막상 부탄의 무수한 불교사원 안에서 ‘전통’의 벽에 가로막혀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상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부탄에서의 첫 날, 부탄의 국가 상징인 용 그림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는 국경마을 호텔에서 내일을 기다리며 서둘러 잠을 청한다.

 

부탄 푼출링=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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