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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일심교 군용열차 대서사건

조선불교계 항일 비밀결사조직 실체 드러나

1939년 10월16일 발각돼
초월스님 등 일심교 회원
용산역에 ‘조선독립’남겨
일제에 모두 검거돼 와해


1939년 10월16일, 경성 용산역을 관리하던 용산경찰서 일본 경찰들과 용산헌병분대는 비상이 걸렸다. 이날 조선인 징용병을 실고 만주로 가기 위해 잠시 용산역에 정차해 있던 군용열차에서 ‘조선독립만세’라는 커다란 낙서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낙서는 군용열차 뿐 아니라 용산역 구내 곳곳에서 발견됐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한 일본 군경들은 즉각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려 낙서를 한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곤 사건 발생 1주일만인 10월23일 유력한 용의자로 박수남을 지목했다. 당시 박수남은 조선운송주식회사 용산영업소 인부로 사건이 발생한 이후부터 출근을 하지 않고 잠적한 상태였다. 일본 경찰들은 곧 그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연행해 취조를 시작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오르내리는 모진 고문. 결국 박수남은 모든 것을 실토하고 말았다. 일본 경찰과 헌병들은 이 사건의 배후에 초월(사진·1878~1944) 스님을 중심으로 한 조선 비밀결사조직인 ‘일심교’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곧 일제는 초월 스님을 비롯해 일심교 회원 70여명을 검거했다. 1939년 10월 발생한 ‘일심교의 군용열차 대서(大書)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그러나 일제는 이 사건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고, 때문에 일제강점기 조선불교계의 항일 비밀결사조직인 ‘일심교’의 활동은 역사의 베일에 감춰져 있었다.


그러다 지난 2011년 근대불교사 연구자인 김광식 박사가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돼 있던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한 일심교 검거에 관한 건’ 등 일제 비밀첩보문건 등을 발굴하면서 일제강점기 불교계 비밀결사조직인 ‘일심교’ 활동의 전말이 공개됐다.


김광식 박사에 따르면 일심교는 초월 스님이 1921년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결성한 비밀·저항운동 단체였다. 초월 스님은 1891년 14세의 나이에 지리산 영원사로 출가해 20대에 영원사 조실에 오르는 등 뛰어난 수행자였다. 특히 스님은 범어사·동학사·월정사 등에서 강사를 역임했을 뿐 아니라 동국대의 전신인 불교중앙학림의 초대 강사로 내정될 정도로 조선불교계의 대표적인 강백으로도 유명했다. 그러던 스님은 ‘모든 법은 확고한 일심으로 통한다(統萬法明一心)’는 화엄경 사상을 바탕으로 ‘조선인이 한마음으로 단결하면 곧 독립을 실현할 수 있겠다’는 신념으로 ‘일심교’를 조직했다. 특히 일심교는 △일심이면 모든 일이 가능하다(一心 萬能主義) △여러 종교를 일심교로 통일(群敎 統一主義) △모든 인류가 일심이 되면 세계평화가 이뤄진다(世界 平和主義) 등 3대 강령으로 동지들을 규합하고 조직체계를 정비했다.


일심교는 결성 이후 경성 진관사 마포 포교당에 사무소를 마련하고 1930년대 말까지 조직적인 항일운동을 진행했다. 국내 독립운동본부를 운영했으며, 군자금 모금, 상해 임시정부와 만주독립군에 자금 지원, 독립선언서 및 독립운동 신문 배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일심교가 군용열차에 ‘조선독립만세’라는 글을 쓴 것도 항일 의지를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심교는 1939년 10월11일 일제의 육군지원병제도를 반대하고, 조선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비밀리에 낙서운동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곤 조선운송주식회사에 위장 취업한 박수남 등을 시켜 10월14일 용산역 구내와 군용열차 등에 ‘조선독립만세’의 글을 쓰도록 했다.


그러나 박수남의 체포로 인해 조직원 전체가 검거됨에 따라 일심교는 더 이상 활동을 하지 못하고 와해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초월 스님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3년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또 스님은 이듬해인 1944년 독립운동 군자금 사건으로 다시 구속돼 청주교도소에서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순국하면서 일심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훌쩍 지나서야 세상에 공개된 일심교. “불교사상과 경전적 근거를 갖고 독립운동을 전개한 경우가 없었다”는 김광식 박사의 말처럼 초월 스님과 일심교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한국독립운동사를 풍성하게 할 토대가 될 수 있다. 불교계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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