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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작자미상, '지옥초지' / 정조, '파초' '들국화'

기자명 법보신문

부처님께 귀의하는 빔비사라왕, 승가 최고의 외호자 되다

 

▲작가미상, ‘지옥초지(地獄草紙)’, 12세기, 두루마리, 종이에 색, 26×242cm, 도쿄국립박물관.

 

 

“비구들이여,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 눈이 불타고 있고 눈에 비치는 형상이 불타고 있다. 눈에 의한 인식이 불타고 있고, 눈과 그 대상과의 접촉이 불타고 있다. 무엇으로 불타고 있는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불타고 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걱정하고 슬퍼하는 불길로 타오르고 있다. 귀도, 소리도, 코도, 혀도, 몸도, 마음도, 마음의 대상도 한결같이 맹렬하게 불타고 있다. 번뇌의 불을 끄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눈과 형상과 코와 혀와 몸과 마음과 접촉하는 일체에 대해 하잘것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하잘것없다고 생각하면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집착에서 벗어나면 해탈할 수 있고, 해탈하면 청정한 수행이 완성된다. 청정한 수행이 완성되면 생존의 밑바닥이 없어졌으므로 더 이상 윤회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혼이 불 속에서 고통당하는 무간지옥

 

‘지옥초지(地獄草地)’는 죄인들이 불의 지옥에서 고통 받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핏빛 같은 불꽃이 화면 가득 이글거린다. 맹렬한 기세로 흔들리는 불꽃은 결코 사그라질 기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순식간에 하늘과 땅을 다 태워버릴 것 같다. 섬뜩하다. 주제인 불꽃을 붉게 칠하고 배경을 회색으로 칠한 것도 화마의 끔찍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세상이 다 타버렸다. 불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회색빛 폐허만 남는다. 온통 잿더미인가 싶어 바닥을 보니 흐릿하게 움직이는 물체가 보인다. 사람이다. 벌거벗은 사람들이 불꽃 속에서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고 있다. 모두 알몸이다. 산 사람이 아니라 죽은 영혼이기 때문이다. 고통을 견디지 못한 영혼이 불을 피해 도망친다. 화가 난 지옥의 사자가 철퇴를 들고 쫓아온다. 어떤 영혼도 무시무시한 지옥의 사자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어쩌다 운 좋게 도망친 영혼도 여지없이 붙잡혀 불 속에 던져진다. 이곳은 무간(無間)지옥. 고통의 순간이 한 순간도 쉬지 않아 붙여진 이름이다.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은 죽음 이후에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곳곳이 불타고 있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불타고 있다. 


일본의 헤이안(平安:894-1185)시대 말기부터 가마꾸라(鎌倉:1185-1336) 시대 초기까지는 극심한 사회혼란을 바탕으로 정토신앙이 유행했다. 겐신(源信:942-1027)스님의 가르침을 따른 호넨(法然:1133-1212)스님은 정토종(淨土宗)을 창시했고, 그의 제자 신란(親鸞:1173-1262)스님은 정토진종(淨土眞宗)을 창시했다. 종파는 다르지만 모두 염불을 강조하고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한 정토종 계열이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아미타부처님이 죽은 자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아미타래영도(阿彌陀來迎圖)’와 ‘육도윤회’(六道輪廻)하는 중생의 모습을 그린 ‘육도회(六道繪)’가 수없이 많이 제작됐다. ‘육도윤회’는 사람이 지은 선악의 과보로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 천의 육도를 끝없이 되풀이하면서 고락을 받는다는 사상이다.

 

 

▲ 작가미상, ‘지옥초지(地獄草紙)’ 부분, 12세기 말, 종이에 색, 높이 26.4cm, 나라국립박물관.

 

 

‘육도회’ 중 ‘지옥초지’는 중생들에게 죽음 이후를 생각해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주는데 효과적으로 활용됐다. 지옥의 묵시록이다. 『지장경(地藏經)』에 묘사된 무간지옥은 대지옥이 열여덟 곳이고 그 다음의 지옥이 오백 곳이고 그 다음 지옥이 천백이나 될 정도로 그 수가 많다. ‘지옥초지’는 이승에서 지은 죄의 무게에 따라 지옥에서 고통 받는 영혼들의 갖가지 모습을 소름끼치도록 잔인하게 묘사했다. 네 명의 귀신들이 이승에서 간악한 죄를 지은 인간들을 맷돌에 가는 지옥, 사나운 눈빛을 한 수탉이 이승에서 짐승에게 잔혹하게 굴었던 사람들을 갈갈이 찢어 죽이는 지옥, 잔인하게 생긴 새와 짐승이 사람 몸을 쪼아 먹고 뜯어 먹는 지옥 등 수많은 지옥의 모습이 음산하면서도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그린 지옥도가 마치 실제 장면을 그린 것처럼 생생하다. 그들이 현실에서 본 모습을 조금 과장되게 그린 것이 지옥의 모습이다. 당시 사회는 지옥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 걸핏하면 사람 목숨이 날아가는가 하면 짐승들이 버려진 시체를 뜯어 먹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지옥초지’는 지옥이라는 이름을 빌린 인간 세상의 풍속화나 다름없다. 12세기 일본에서 그려졌지만 어느 시대에나 적용 가능한 현재진행형 ‘리얼 토크’다. 시공간을 초월해 끝없이 확대 재생산된 지옥의 참상은 인간의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전개될 것이다.


부처님이 ‘타오르는 불의 법문’을 들려주신 것은 1천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수도인 라자가하(왕사성)로 가던 길이었다. 가야산에 올라 비구들에게 들려주신 법문이다. 부처님은 비유의 왕이라 칭송받을 정도로 법문 듣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를 예로 들었다. 그런데 하고많은 비유 중에 왜 하필 불이었을까. 설법을 듣는 상대가 밤낮으로 불을 섬기던 바라문의 수행자였기 때문이다. 카샤퍄 삼형제와 그를 따르던 천 명의 제자들이 모두 바라문의 수행자였다. 그들에게 불만큼 친숙한 대상도 없었으리라.


‘말’은 ‘생각이나 뜻을 전달하기 위해 일정한 소리의 체계에 따라 발음 기관을 통해 내는 소리’다. 말하는 사람의 생각이나 뜻이 전달되지 않는 소리는 말이 아니다. 소음일 뿐이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말도 말이 아니다. 일방적인 폭력이다. 유치원생한테는 유치원생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순정한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 전문가들에게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용어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주는 번거로움을 생략해도 좋다. 듣는 사람의 지식수준은 고려하지 않은 채 아무데서나 전문용어를 떠벌리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다. 현학적인 허세를 부리기 위한 과시에 불과하다. 부적절한 외국어를 남발하는 것만큼이나 저급한 행동이다. 쉬운 단어를 선택하면 자신의 격이 손상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은 부처님한테 배워야 한다. 부처님이 이 우주를 통찰할 수 있는 엄청난 진리를 설명하시면서 얼마나 쉬운 단어를 선택하셨는지를.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달해주는 사람이라면 법문하는 동안 더욱 예민하게 신도들을 관찰해야 한다. 자신이 법문하는 동안 하품하거나 조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순전히 법문하는 사람의 잘못이다. 듣는 사람의 신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법문하는 사람이 언어 선택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수준 낮은 사람은 없다. 수준 낮은 강사가 있을 뿐이다. 신심이 절로 우러나는 법문을 듣는데 하품이 나올 리 없다. 허리가 아플 틈이 없다. 부처님은 당시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바라문에서부터 일자무식인 천민까지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진리를 가르치셨다. 학식이 높은 사람만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말은 독백하기 위해 내뱉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한 것도 아니다. 듣는 사람에게 생각이나 뜻을 전달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기왕이면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낡은 관념 위에 새로운 생각을 심는 것인 만큼 새싹처럼 푸릇푸릇해야 한다.

 

빔비사라왕의 귀의

 

드디어 부처님이 라자가하에 도착하셨다. 부처님은 교외의 야자나무 숲에 있는 묘지에서 머무르셨다. 묘지는 일종의 사당과 같은 곳으로 많은 수행자들이 쉬는 장소였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에게도 부처님의 소식이 전해졌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셨다는 소식이었다.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이 출가 당시 처음 만났을 때 한 가지 부탁을 했었다. 만약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시면 반드시 자기에게 와서 가르침을 내려달라는 부탁이었다. 이제 그 약속을 지킬 때가 됐다. 빔비사라왕은 크게 기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처님은 대단히 명성이 높으신 분이다. 세상의 공양을 받아 마땅하신 분, 최고의 깨달음을 얻으신 분, 하늘과 사람의 스승이신 분,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분이다. 그분이 말씀하신 법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가 있다. 부처님은 원만하면서도 맑고 깨끗한 행실을 드러내신다. 이런 아라한을 뵙는 것은 큰 행운이다.”
빔비사라왕은 나라 안에 있는 수만 명의 신하와 군인, 바라문과 장자들을 이끌고 부처님을 방문했다. 그 곳에는 부처님께 예배하는 사람, 인사하는 사람, 합장하는 사람 등등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붐볐다.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을 뵙고 반갑게 예를 올렸다. 그런데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빔비사라왕과 함께 온 많은 사람들이 누가 부처고 누가 제자인 지 헷갈린 것이다. 그들은 나이 든 우루빌바 카샤파는 알고 있었지만 젊은 부처님은 잘 몰랐다. 부처님을 처음 본 사람들은 당연히 백 살이 넘은 우루빌바 카샤퍄가 스승이고 젊은 부처님이 제자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생각을 알아차린 부처님은 카샤파에게 불을 섬기는 바라문의 제사를 그만 둔 이유를 설명하라고 말했다. 카샤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집착을 벗어난 무소유의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희생을 통해 감각적인 기쁨을 얻는 바라문의 제사에서는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진리의 세계였습니다.”


그런 다음 일어서서 예를 올린 후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대고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야말로 저의 스승이시며 저는 세존의 제자입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누가 스승이고 누가 제자인 지 알게 됐다. 부처님은 빔비사라왕과 모인 사람들을 위해 보시와 지계 그리고 사성제에 대한 법문을 일러주셨다. 부처님의 법문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며 흔연하게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법문을 듣고 난 빔비사라왕은 다음과 같은 말로 기쁨의 마음을 표현했다.


“나는 일찍이 태자였던 시절에 다섯 가지 소원을 세웠습니다. 첫째는 국왕이 될 것, 둘째는 내 영토에서 부처님이 출현하실 것. 셋째는 그 부처님을 섬기고 받들 것. 넷째는 부처님이 나를 위해 설법을 해 주실 것. 다섯째는 내가 부처님의 법을 깨달을 수 있을 것 등이었습니다. 이제 이 다섯 가지 소원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말한 후 불, 법, 승 삼보에 귀의했다. 이로써 빔비사라왕은 왕의 신분으로 처음으로 불교에 귀의한 사람이 되었다. 이튿날 빔비사라왕은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식사를 올려 공양했다. 오랜 소원을 이룬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이 식사하시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부처님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때 번쩍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이거다!’


지금 부처님한테 가장 필요한 것은 머물 곳이었다. 그곳은 거리에서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아서 다니기 편해야 한다. 가고 싶은 사람이 언제든 갈 수 있고, 낮이나 밤이나 고요해서 속세를 떠나 조용히 명상할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 빔비사라왕은 그런 장소를 골라 부처님과 비구들을 위해 기증했다. 이것이 바로 불교 최초의 정사인 죽림(竹林)이었다. 그때까지 부처님은 숲 속에 있는 묘에서 설법하며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부처님은 빔비사라왕에게 죽림을 받으신 후 다시 법문을 들려주신 후 묘지로 돌아가셨다. 

 

 

▲ 정조대왕, ‘파초’, 종이에 먹, 84.6×51.5, 동국대박물관(좌), 정조대왕, ‘들국화’, 종이에 먹, 84.6×51.5, 동국대박물관(우).

 

 

문화의 황금시대를 연 문예군주 정조

 

조선시대의 문예군주는 세종대왕과 정조대왕이다. 두 임금이 통치하던 시기에 우리 문화는 가장 풍요롭게 꽃피었다. 학문과 예술, 의학과 과학, 농업 분야에서 놀랄만한 발전을 이루었다. 통치자가 누구냐에 따라 한 시대의 문화역량이 결정되는 것은 군주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세종대왕과 정조대왕은 ‘큰 임금’이란 뜻의 ‘대왕(大王)’에 어울릴만한 빼어난 군주였다. 세조나 중종 등 다른 왕들은 세조대왕이나 중종대왕이라 부르지 않는다. ‘대왕’은 세종이나 정조처럼 훌륭하고 뛰어난 업적을 남긴 왕에게만 붙일 수 있다.


세종대왕과 정조대왕은 모두 그림 그리는 사람을 아꼈을 뿐만 아니라 친히 붓을 들어 그림을 그렸다. 『조선왕조실록』 에는 세종대왕이 ‘난죽(蘭竹)’을 그렸다는 기록이 세 군데 적혀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세종대왕의 진작으로 확인되는 그림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물론 그 어떤 그림보다 아름답고 위대한 한글 ‘훈민정음’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다행히 정조대왕의 그림은 두 점이 전한다. 그 중 ‘파초’를 살펴보자.


‘파초’는 배경 없는 화면에 파초 한 그루와 괴석을 그렸다. 파초의 몸체와 잎사귀는 모두 뼈대 없이 몰골법(沒骨法)으로 그린 것이 특징이다. 파초와 괴석을 그린 심사정(沈師正)과 상고재(尙古齋)가 모두 구륵법(鉤勒法)으로 선을 긋고 잎맥을 드러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파초라는 식물은 나무처럼 단단하지 않고 부드럽다. 수직으로 서 있는 파초의 몸체를 연한 붓질로 묘사한 데서 사물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이 돋보인다. 한 잎사귀에 먹의 농담(濃淡)을 적절히 활용한 것도 참신하다. 바위 표면은 파초와 달리 거칠거칠한 질감을 살리고자 했다. 무생물인 바위 때문에 물기를 빨아들인 파초잎이 더욱 싱싱하게 느껴지는 산뜻한 작품이다. ‘파초’에서 확인된 붓질과 담묵법은 ‘들국화’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두 작품 모두 왕의 그림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담백하고 소박하다. 당당하게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모든 물에 비친 밝은 달의 주인)이란 호(號)를 쓴 주인공이 그렸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의외일 정도로 얌전하다. 화려함을 과시하기보다는 가슴 속의 문기(文氣)를 표현하고 싶은 고아함이 담긴 작품이다.

 

필자는 커피 매니아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도 좋은 커피라면 무리하게 사치를 부릴 정도로 가려 마신다. 긴 시간동안 커피 투어를 하면서 한 가지 결론을 얻었다. 좋은 커피일수록 맛과 향이 자극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훌륭한 커피는 원래부터 내 몸이 원한 음료였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마신 사람에게 순종적이다. 입 안에 들어가는 순간 한 치의 간극도 없이 밀착된다. 순하게 섞이면서 자신이 적신 땅의 완강한 적의를 일시에 무장 해제시킨다. 명성에 뒤따르는 거만함은 찾아볼 수 없다.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도 그 맛의 정체는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 커피의 진가는 다 마시고 나서야 알 수 있다. 몇 시간이 흘렀는데도 입안에 커피향이 오롯이 살아 있다. 생명력이 긴 커피다. 형편없는 커피일수록 맛과 향이 강하다. 첫 모금을 들이키는 순간부터 전투적으로 혀를 압박한다. 거만하고 표독스러워 차분하게 음미할 시간을 전혀 허락하지 않는다. 모질고 야만스럽다. 본능적으로 외면하는 거부감을 무너뜨리기 위해 우유니 캬라멜이니 하는 달콤한 속임수를 동원한다. 그 달콤함에 취해 홀짝홀짝 마시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분이 상한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마신 커피인데 마시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헝클어진다. 기분 나쁜 커피의 전형적인 예다. 좋은 커피는 원두가 결정한다. 본질이 중요하다. 첨가물은 혀 속임일 뿐이다. 본질이 좋으면 혀를 속이는 첨가물이 필요하지 않듯 좋은 그림도 굳이 화려한 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먹 하나만으로 다양한 울림을 주는 여러 층의 색을 보여줄 수 있다. 정조의 ‘파초’가 그러하다. 


그 자신이 예술가였으며 예술을 사랑했던 정조대왕의 관심 덕분에 조선 후기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찬란한 문화가 꽃필 수 있었다. 정조가 문화 군주였다면 빔비사라왕은 불교를 보호하고 전파하는데 큰 도움을 준 왕이었다.

 

▲조정육

빔비사라왕같은 사람을 우리는 ‘불교 외호세력’이라 부른다. 위대한 종교나 사상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지지해주는 조력자가 필요하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위대한 가르침이라 해도 빔비사라왕 같은 외호세력이 없었다면 불교는 결코 세계종교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빔비사라왕이 제공한 죽림정사는 부처님의 위대한 제자들이 귀의한 곳이다. 지혜제일로 불리는 사리불과 신통제일로 불리는 목련이 부처님의 제자가 된 곳이고 ‘위대한 가섭’이라 불리는 ‘마하가섭’이 귀의한 곳이다. 부처님과 이들 제자와의 아름다운 만남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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