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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문화와 깨달음

기자명 법보신문

얼마 전 미국에서 티베트 승려 7인이 대론을 선보여 화제가 된 바 있다. 부처님 가르침을 문자적 이해와 자구 암송을 바탕으로 현실과 접목하여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수준에 도달하여야 대론이 가능하다. 대론은 티베트 불교를 세계화시킨 주요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몇 해 전 아테네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두 가지 점이 필자를 놀라게 하였다. 하나는 파르테논 신전 등이 뼈대만 앙상하게 방치되고 있었다. 터키와 달리 그리스는 고대 유적을 복원하는데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서구 문명의 진원지로 관광 수입이 큰 도움이 될 텐데 국가 경제가 어려운데도 왜 그럴까라는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또 하나는 근무시간이 6시간이라는 점이었다. 관공서 금융기관 심지어 학교까지 오후 4시면 문을 닫았다. 이것은 외형상 놀라움이다.


내가 정작 놀란 것은 2500년 전 전통이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다는 점이다.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시민들이 토론을 하였듯이 지금도 시민들은 일찌감치 카페나 식당에 모여 밤늦게까지 대화를 즐기고 있었다. 매일 만나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을까? 학교 교육도 주입식 강의가 아닌 토론식 교육에 충실하고 있다 한다. 소피스트들이 지식을 파는 것을 비판한 소크라테스 이후 무상 교육의 전통이 대학까지 시행되고 있다는 것도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 힘이 서구 민주주의를 탄생시켰으리라.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그들의 얼굴에는 자부심과 긍지가 넘쳐 여유로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국 교육은 여러 문제가 많지만 가장 부족한 교육이 토론이다. 자기주장을 자유롭게 피력하되 나름의 논리와 근거를 댈 수 있어야 토론이 진행된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한국 교육은 토론에 서툴고 대화마저 합리적이지 못하다. 상대의 의견을 묻고 경청하는 풍토는 가정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데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한 게 유교적 전통이었고 식탁에서 식구들과 대화를 한다 해도 훈계나 잔소리뿐이었다. 유일한 대화의 장인 식탁에서 마저 이러하니 자녀는 부모와 함께 마주하는 식탁을 피하려 든다.


대화는 상호 존중의 원칙에 입각해야 평등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면 한마디씩 훈수하는 조언은 있어도 주의 깊게 들어주는 대화는 보기 드물다. 모두 수직적 사고에 익숙한 탓이다. 이렇게 주장을 반항으로 인식하는 부모와 교사, 직장 상사라면 창의로운 자기주장은 싹부터 잘리는 수모를 당한다. 한국 정치가 민주적으로 성장 발전 못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연원한다. 설교, 훈계, 주입식 강의 대신 경청과 공감으로 이루어지는 깊숙한 대화는 수평적 사고의 산물이다. 권위주의적 사고에서 민주적 사고로 전환되어야 자유로운 대화와 창의적인 토론이 가능하다. 성적과 업적에 가치를 둔 수직적 교육에서 인성과 과정을 중시하는 수평적 교육으로의 전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것은 학교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 그리고 종교에서도 그리되어야 한다.

 

▲최훈동 원장
한국불교가 현대화되고 세계화되려면 수평적 교육과 수행에 주목해야 한다. 깨달음의 민주화야말로 오늘 한국불교가 풀어야 할 막중한 과제이다. 깨달음의 결과를 중시한 돈오돈수보다 깨달음의 과정을 중시하는 점오돈수이어야 한다. 깨달음이 산속이나 선원에만 있다면 깨달음은 대중과 분리되고 만다. 깨달음의 대중화는 역동적인 현실의 삶 속에 붓다의 정신이 용해해 들어가는 것이다. 그 첫걸음은 경전 한 구절 한 구절에 대해 토론 강의를 하는 것이다. 경율론의 수평적인 탁마 이후 그것을 바탕으로 수행의 힘을 더하면 한국 불교는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고 자정과 쇄신도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최훈동 muha8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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