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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꽃처럼 흩어진 스님을 그리며

기자명 법보신문

구절초 향기같던 한 스님
말기 위암 홀로 투병하다
병원비 부족으로 세연 끊어

 

청원 정토마을에서 30분 거리인 속리산 근교 산골 마을에 나와 세속나이가 비슷한 비구스님이 한분 살고 계셨다. 스님은 가을이 오면 직접 수확한 고추와 무, 배추, 송이버섯을 가지고 정토마을로 오셨다. 스님은 “차에 무언가를 가득 실은 후에야 정토마을에 오게 된다”며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우리는 오랜 세월을 그렇게 가을에 만나 차를 마시고 뜨락도 거닐면서 이웃이 되어갔다.


2005년 가을 스님은 억새 풀꽃을 한 아름 들고 차나 한잔 하자며 정토마을을 찾았다. 스님은 여름 내내 속이 아파 농사를 잘 짓지 못했다고 했다. 위암이었다. 너무 많이 퍼져서 수술도 못한다고 했다. 오월에 위암 진단을 받고 홀로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검사를 받다가 이렇게 찾아왔다며 허허로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산골마을 자그만 토굴서 어르신들과 함께 농사 짓고 백중날에는 마을잔치도 열곤 하던 스님에게는 늘 구절초처럼 그윽한 향기가 풍기곤 했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난감함과 막막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수술과 항암치료조차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에 대체의학이나 식이치료를 하는 곳이 없는지 알아보려 인터넷을 뒤져봤다. 2곳을 찾아 알아봤지만 모두 경제적 부담이 너무 컸다. 큰 병이 나면 언제나 돈이 가장 큰 문제가 된다. 스님들에게 치료비와 간병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줄 인적자원이 절실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며 대체의학을 병행하는 병원을 찾아봤다. 다행히 경제적 부담이 덜한 병원을 발견해 스님을 입원시킬 수 있었다.


병원서는 다양한 치료를 실시했고 스님의 상태는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 이제 정토마을에서 쉬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퇴원해서 오시면 편히 쉴 방사를 준비하며 종일 스님을 기다렸다.


하지만 해가 저물도록 스님은 오시지 않았다.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스님께서는 퇴원준비를 해달라고 말씀하시고 사흘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사라지기 전 스님은 바랑을 싸서 침대위에 올려놓았다고 했다. 병원 측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병실을 비우기로 했다. 간호사들이 병실에 들어가 이것저것 치우면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스님은 그곳에 계셨다. 자신의 허리띠에 육신을 맡기고 저 세상으로 떠난 것이다.


소식을 듣는 순간 땅이 꺼져버리는 것 같았다.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떠나셔야 했는지…. 가슴이 내려앉았다. 병원로비 CCTV를 살펴보니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스님의 모습이 보였다. 스님은 수화기를 붙들고 통장을 들여다보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병원비는 모두 340만원이고 스님의 통장잔고는 120만원이었다. 나머지 병원비를 구하다 결국 병원을 나오지 못하고 떠나신 것이다.


스님을 화장하고 유골은 토굴 작은 법당에 모셨다. 뒷산에 뿌리기 전, 그토록 좋아하시던 토굴서 하룻밤 쉬시게 하고 싶었다. 나는 스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미움과 안타까움이 한꺼번에 치밀어 올라 유골함을 흔들며 울었다. 돈이 부족하면 저한테 말씀하시지 왜 그렇게 가셔야만 했나요. 당신은 저에게 온갖 것을 주셔놓고 정작 돈이 부족하다는 말씀은 왜 하지 못하셨나요. 스님의 유골함을 부여잡으며, 이놈의 자재병원 하루빨리 지어야지 못살겠다고 통곡을 했었다.


스님께서 떠나시고 8년이 지난 올해 암환자 재활을 위한 프로그램과 식이치료, 대체의학, 면역요법 등 현대의학과 한의학을 접목한 자재병원이 정식운영에 들어갔다. 병원 2층 베란다서 햇볕을 쬐고 있는 어느 스님의 평화로운 모습에서 8년 전 스님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능행 스님
스님, 억새꽃 피어 바람과 노니는 시월이 다시 왔습니다. 언양 석남사 아래에 자재병원이 들어섰습니다. 그 동안 참 많은 산을 넘었습니다. 그때마다 스님께서 저에게 힘을 주시는 것 같아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그림자처럼 한번 다녀가세요. 부디 불국토에서 잘 계시기를.


능행 스님 정토마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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