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고혼 다게
39. 고혼 다게
  • 법보신문
  • 승인 2013.10.2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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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쉬는 순간이 곧 열반
“차 드시고 윤회 벗어나라”
맑은 차 올리며 해탈 기원

 

고혼을 맞이하며 청해 자리에 앉도록 하고 나면 차를 올리게 된다. 이 때 외는 게송을 고혼 다게라고 하는데 현재 ‘관음시식’에는 다음의 게송이 쓰이고 있다.


‘百草林中一味新(백초림중일미신)/ 趙州常勸幾千人(조주상권기천인)/ 烹將石鼎江心水(팽장석정강심수)/ 願使亡靈歇苦輪(원사망령헐고륜)’


이에 대해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불교상용의례집’은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온갖 초목 한결같은 신선한 차 맛/ 조주 스님 몇 천 사람 권하였던가/ 돌솥에다 맑은 물을 다려 드리니/ 망령이여 드시고서 안락하소서.” 이어 제령과 고혼을 부르고 있다. 번역의 이해를 중심으로 두어 가지 미감을 짚어보자.


첫째로 ‘백초림중’은 ‘갖가지 초목 중에 하나의 맛으로서의 신선한 차’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위에서 보듯이 ‘온갖 초목’ 또는 ‘백초 숲 속에’ ‘세상의 모든 맛’ 등으로 해석한다. ‘백초’와 ‘일미’의 대립을 통한 최상의 차라는 의미인데, ‘백초 숲 속에’라고 하면 어느 정도 의미가 살아나지만 ‘온갖 초목’ ‘세상의 모든 맛’이라고 하면 구체성이 좀 떨어진다. 또 ‘한결같은 신선한 차 맛’이나 ‘일미(一味)가 새로운데’라고 하면 백초와 일미의 미감은 드러나지 않는다. 백 가지 차 가운데 최상의 차로 새싹 명(茗)의 차라는 뜻으로 읽혀져야 되지 않을까 싶다.


둘째 마지막 구의 ‘원사망령(願使亡靈)’가 고본 ‘청문’(16세기)에는 ‘원사선령(願賜仙靈)’으로 등장한다. 현재 결구는 망령에 이어, 제령, 고혼을 삼창하며 윤회를 쉬길 바라고 있다. 이 구절에서 ‘사(使)’와 ‘사(賜)’의 의미상 차이는 적지 않다. ‘하여금 사’자로 해석하면 망령으로 하여금 고륜(윤회)을 쉬게 하는 타력적인 기원이 되는 반면, ‘줄 사’자로 해석하며 이제 재자가 망령에게 차를 내려 올리니 드시고 고륜을 쉬기를 바란다는 자행적인 의미가 더 부각된다. 조주 스님의 ‘끽다거’ 용례가 사용되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의미가 잘 드러난다. ‘이 차 한 잔 드시고 다른 생각 할 것 없이 윤회를 벗어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관음시식’이 천도의례라고 할때 의미가 잘 드러난다고 주장하겠지만 불교가 추구하는 자력 자각의 의미는 아무래도 퇴색된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윤회의 크나큰 업력으로 불보살님의 자비원력 없이는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허나 재나 시식의 핵심은 타력적인 모습으로 보이지만 실은 자각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시식이나 제사가 혼용되고 있지만 시식은 일체 중생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보시바라밀을 행하는 자력 수행의 백미인데, 제사 내지 천도의 시혜의례로 수용되며 타력성이 돋보일 뿐이라고 생각된다.


한 잔의 차를 올리며 윤회를 쉬라고 하는 것을 단순한 찬사로만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차를 마시며 헐떡거리는 마음을 쉬는 찰나가 곧 윤회를 쉬는 것이다. 찰나즉영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선령(仙靈)은 선가(仙駕)라고 하여 선왕 선후의 영가로 국가의례의 흔적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운 박사

하지만 선왕 선후가 아니더라도 이미 육신의 몸을 벗은 이들은 선인의 영가라고 하여 인간 이상의 세계에 노닐고 있다고 이해한다. 이는 불교의 시식이 유가의 조상신을 받드는 제사와 유사한 의미로 착근되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해서 고혼에게 올리는 차 한 잔에 담겨 있는 깊은 울림은 결코 적지 않다고 하겠다.

 

이성운 동국대 외래교수 woochun1@daum.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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