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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불광사 회주 지홍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모든 존재 어우러지는 공존 세상이 반야공동체

현대사회 유대관계 해체 가속
시스템 지배하는 사회로 변화
자살, 실업, 소외 직접적 원인


고립된 존재 없다는 게 불교
모든 존재의 관계성 통찰이
공동체 회복하는 열쇠 될 것

 

 

▲지홍 스님

 

 

현대사회는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오랜 세월 동안 개인과 사회를 지탱해 왔던 가치와 제도의 붕괴입니다. 물론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던 부당한 제도와 가치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입니다. 근대 사회는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사회적 규범과 공동체의 해체를 동반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인간 상호간의 유대의식은 퇴색하고 가족제도와 가정의 해체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개인과 가정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분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갈수록 파편화되어가는 개인주의 문화가 확산되면서 일인용 식당과 카페가 늘어나고, 소외되고 고독한 삶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높아지는 청소년의 자살률, 실업과 실직에 따른 고립과 좌절도 이런 사회적 흐름과 무관치 않을 것입니다.


물질적 풍요와 의학의 발전은 평균수명의 연장을 가져왔습니다. 한국의 경우 여자는 84세, 남자는 77세로 평균수명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늘어난 수명만큼 행복한 삶이 연장된 것은 아닙니다. 노년을 쓸쓸히 보내는 독거노인의 증가, 가족들의 보살핌 속에 맞이해야할 죽음마저도 고독사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사람의 온기 대신 가상화된 미디어를 통해 인간 자체가 아닌 인간에 관한 정보를 만나고 있으며, 가족과 공동체가 아닌 시스템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가족이 아니라 각종 시설에 수용되어 고독한 삶을 사는 것이 복지사회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는 현대사회의 맨얼굴입니다.


인간은 감정을 가진 존재이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사람들은 정서적 유대가 필요하고, 정서를 교감하는 대화가 필요하고, 소소한 일상을 주제로 감정을 나누는 위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대의 삶은 유대와 공감이 사라지고 시스템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전통사회에서 한 사람의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우주적 의존성과 서로 연결된 존재로 이해되었습니다. 불교에서는 그와 같은 관계성을 ‘연기(緣起)’ 또는 ‘법계(法界)’라고 했습니다. 모든 존재는 우주적 관계성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고립된 존재는 없다는 것이 불교사상의 핵심입니다.


모든 존재를 하나로 연결 짓는 이런 관계성에 대해 철학자들은 ‘존재의 거대한 고리(Great Chain of Being)’라고 불렀습니다. 모든 존재를 연결 짓는 고리가 있다는 사유는 작게는 한 인간을 다른 인간과 연결 짓게 하고, 인간과 사회를 통합적으로 사유하게 했습니다. 나아가 전체 우주와 개체가 하나로 연결된 우주적 공동체로 이해하도록 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와 같은 관점은 끊임없이 관계와 유대를 사유하게 했고, 가족과 공동체적 삶을 설계하도록 했습니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그와 같은 존재의 고리는 허구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히 개체와 개체, 개체와 전체를 잇던 존재의 고리도 단절되어 갔습니다. 단절된 존재의 고리는 개인을 넘어 사회적 유대의 해체, 파편화된 삶의 일상화, 쓸쓸한 노후와 외로운 죽음을 기다리는 고독한 시대상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가 직면한 이와 같은 문제를 해소할 답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왔던 전통적 가치와 삶 속에 있을 지도 모릅니다.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꿈꿔 왔던 공동체적 정신과 삶이야말로 현대사회가 직면한 고립과 분절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종교도 이와 같이 파편화된 개인, 외로운 사람들의 삶에 대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때가 됐습니다. 그리고 함께 어우러지는 삶, ‘나’라는 협소한 자아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인간적 유대와 배려가 살아 있는 공동체적 삶의 길을 제시해야할 책무가 있습니다.


대개 종교의 첫 출발은 공동체 형태로 시작했습니다. 종교의 공동체적 전통은 파편화된 개인의 영혼을 보듬어 왔고, 외로운 삶들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풀어 왔습니다. 이런 전통은 나와 남이라는 구분을 넘어 전체를 하나로 묶고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그와 같은 정신에 주목해야할 때가 됐습니다. 그것이 인간다운 사회를 만드는데 종교가 기여할 수 있는 역할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끊임없이 공동체를 지향해 온 역사였습니다. 불교사는 절속(絶俗)과 은둔이 아니라 이상적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불교 교단은 승가(僧伽)라는 전통과 함께 출발했습니다. 사부대중으로 구성된 공동체인 승가는 철저한 공동체를 지향했습니다. 함께 먹고 자고, 함께 수행하고, 함께 공부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거룩한 공동체가 승가입니다. 그런 점에서 승가는 공동체에 대한 불교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건강한 수행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하는 노력은 불교의 중국전래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시도됐습니다. 중국의 여산혜원 스님에 의해 결성된 백련결사 운동은 신행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선종에서도 이와 같은 공동체 운동은 지속됐습니다. 선원은 그 자체가 하나의 수행 공동체였습니다. 선승들은 함께 노동하고, 함께 수행하는 완벽한 수행공동체였습니다. 특히 백장선사에 의해 선원의 규범이 확립되면서 수행공동체는 더욱 체계를 잡아갔습니다. 선원은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수행과 더불어 노동이 권장됐으며, 직무의 분담과 대중의 화합이 강조됐습니다.


이와 같은 공동체 운동은 한국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났습니다. 고려시대 보조지눌 스님의 정혜결사나 원묘요세 스님에 의한 백련결사가 대표적입니다. ‘결사(結社)’라는 말 자체가 여러 명의 사람들이 뜻을 모아 수행집단을 결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눌 스님은 뜻을 같이하는 스님들을 향해 세속적 명리를 버리고 함께 공부하고, 함께 노동하며 수행공동체를 건설하자고 설파했습니다.


이와 같은 공동체 운동이 불교를 건강하게 했고, 세속화로 치닫는 타락을 극복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이와 같은 결사정신과 공동체적 전통은 갈수록 미약해지고 있습니다. 급격한 사회변동과 종교의 세속화는 공동체 정신과 삶의 양식을 와해시켰습니다. 이런 현상은 불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종교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되었습니다.


물질적 성장을 달성한 오늘날 종교는 공동체적 정신과 삶을 담보하지는 못했습니다. 건물은 거대해졌으나 소유는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의 것이 됐습니다. 공유와 베풂과 같은 공동체적 정신은 퇴색하고, 독점과 사유화가 종교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제 종교가 가진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파편화로 치닫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할 시점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와 같은 정신과 근거를 종교적 가치와 전통으로부터 찾고자 합니다.


불광법회를 창립하고 불광사를 창건한 광덕 큰스님 또한 크게 보면 공동체 운동을 펼치신 분입니다. 불광운동은 작게는 불광이라는 수행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었으며, 크게는 우리 사회를 ‘바라밀국토’로 만들고자 하는 공동체운동이었습니다. 광덕 큰스님께서 추구하셨던 그와 같은 공동체는 ‘반야공동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습니다. 지혜의 눈으로 보면 나와 남은 둘이 아니며, 나와 우주는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통찰 속에 모든 존재가 하나로 어우러져 조화와 공존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 반야공동체의 이상입니다.


반야의 관점에서 볼 때 나와 너라는 구분은 단지 물질적 현상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실재로 믿고 집착하는 독립된 개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법성과 불성(佛性)만이 진정한 존재의 실상입니다. 삼라만상은 모두 다 “불성으로 한 몸이며,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것이 광덕 큰스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온 세상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모든 존재들에게 진리의 피가 흐르고, 진리의 온기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라고 사유할 때 작게는 개인의 마음에 평화가 오고, 가정에는 안녕과 화목이 옵니다.

 

정리=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이 글은 불광연구원이 10월19일 서울 불광사 보광당에서 개최한 국제학술포럼에서 불광사 회주 지홍 스님이 ‘현대사회의 위기와 종교공동체의 역할’이란 주제로 했던 기조강연을 요약한 것입니다.

 



지홍 스님
1970년 부산 범어사서 출가했다. 1971년 사미계를, 1974년 비구계를 수계하고 1990년까지 광덕 스님을 시봉했다. 1994년 조계종 개혁회의 의원 겸 포교부장, 1998년 서울 조계사 주지를 역임하고 11, 12, 13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불광사·금강정사 회주이며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본부장과 불교출판문화협회장 등을 맡고 있다.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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