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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한 조계종 정체성 확립

기자명 법보신문

앞으로 새로운 4년을 열어 갈 조계종 제34대 총무원 집행부가 포교전법·종무행정·사회문화 분야별 세부 종책을 발표했다. 지난 4년 간 갖가지 승풍 실추 사건과 관련 의혹으로 잠잠할 날이 없었던 만큼 ‘청정 수행환경 조성’ 및 ‘자성과 쇄신 지속 추진’이라는 목표 하에 제시된 다양한 세부 실천 항목이 눈길을 끈다. 변화가 기대되는 바이다.


그런데 이런 종책 실현에 앞서 집행부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모든 분야에 적용시키는 방식으로 일을 추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조계종도의 행동을 규제하는 실질적인 법체계이자 종단을 지탱하는 근간인 종헌·종법에는 조계종의 정체성이 명시되어야 하며, 모든 조항은 조계종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 종헌·종법은 이런 점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종교단체로서의 조계종을 종헌·종법에서는 이렇게 규정한다. ‘본종은 승려(비구·비구니)와 신도(우바새·우바이)로써 구성한다.’(종헌 제3장 제8조) ‘승려는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하고 수도 또는 교화에 전력하는 출가 독신자라야 한다.’(종헌 제3장 제9조) ‘이 법에서 승려라 함은 구족계를 수지한 비구, 비구니를 말한다.’(승려법 제1장 제3조) 이 조항들을 고려할 때 조계종의 승려는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한 비구, 비구니라는 정의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종헌·종법의 내용 역시 구족계와 보살계를 기반으로 구성되어야 하며, 적어도 그 이념에 반하는 규정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스스로 규정한 정체성과는 달리 실제 조항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승려법 제46조이다. 그 가운데서도 제3항 ‘불계 중 4바라이죄를 범하여 실형을 받은 자’는 주목할 만하다. 이는 멸빈 대상을 언급한 것이다. 멸빈이란 ‘승가로부터의 영구 추방’이라는 벌로 극도의 중죄를 저지른 승려에게 내려진다. 율장에서는 승가 추방에 해당하는 죄를 바라이죄라 하여, 음욕과 살인, 5전 이상의 도둑질, 그리고 깨닫지 않았으면서 깨달았다고 거짓말하는 대망어, 이 4종을 든다. 승려법 제46조에서 4바라이죄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아 ‘사분율’을 참고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이 규정은 ‘실형을 받은 자’라는 묘한 한 구절을 삽입함으로써 율장의 의도는 물론이거니와, 불교출가자의 본질과 관련하여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특히 ‘음욕법’과 관련된다.


출가자의 성 행위를 금지하는 음욕법은 부처님이 가장 처음 제정한 조문이다. 다시 말해 승가에 가장 먼저 나타난 악행이었다. 이는 ‘음욕’이 수행자에게 있어 가장 절제하기 어려운 본능이자, 가장 경계해야 할 행동임을 보여준다. 음욕에 대한 부처님의 입장은 단호하다. 그 이유는 음욕이 불도 수행을 방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장도법(障道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의미가 무시된 채 승려법 제46조에서는 ‘실형’에 초점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 음욕법을 저질러도 실형만 받지 않으면 멸빈 대상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음욕으로 인해 실형을 받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사실상 이 조문은 조계종도의 음욕 행위를 법령상 묵인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조계종이 구족계를 수지한 비구·비구니를 주요 구성원으로 하는 청정승가를 추구한다면, 음욕에 대해 이렇듯 너그럽고 애매한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정체성의 혼란을 초래하는 규정은 구성원을 혼동에 빠뜨릴 뿐이다.

 

▲이자랑 교수

현재 조계종이 안고 있는 갖가지 혼란은 정체성의 혼란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종헌·종법 외에도 종지·종통 및 종조·종명 등 조계종은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종헌·종법을 비롯한 이들 과제를 해결하고 이에 부합하는 실천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할 때, 종도들을 결집시키고 종단을 이끌어가는 새로운 원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제34대 총무원 집행부에 이를 기대해본다. 

 

동국대 불교학술원 이지랑 연구교수 jarang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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