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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하늘 위의 아이들-2

기자명 법보신문

티베트 유목민 다와의 삶서 자연을 배우다

해발 4000m의 넓은 초원서
양·야크를 벗 삼아 살아가는
티베트 유목민 어린이의 삶
비문명화 됐지만 자연에 순응

 

 

▲유목민의 삶을 살아가던 티베트의 초원사회는 오늘날 중국의 개방 정책으로 급격한 현대화를 겪고 있다. 자연에서 모든 것을 배우고 알아가던 하늘 위의 아이들은 이제 현대화된 학교를 다니고 부모와 떨어져 산다. 다와도 지금은 초원에서 내려와 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대학은 북경으로 갈 예정이다.

 


저 파란하늘, 저 구름 속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떤 이는 하늘 위의 구름을 열어 그 너머의 세계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 하고 노력하는 과정을 불교공부이라고 말하고 선(禪)이라 했다. 이런 이야기를 받아들인다면 다와는 매일 ‘선’ 공부를 하고 있는 셈이다. 다와는 7살 먹은 초원 위의 소녀다. 다와의 엄마는 전형적인 티베트 유목민으로 매일 야크와 양을 끌고 초지와 물을 따라 다니는 이동의 삶을 추구한다. 아빠도 유목민이지만 1년에 볼 수 있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생필품을 구하러 라싸에 가거나 장사를 하러 설산을 넘어가기 때문이다.


다와가 살고 있는 곳은 해발 4000미터 상공의 초원이다. 파란하늘과 뭉게뭉게 흰 구름 그리고 일망무제의 초록색 대지가 다와의 앞마당인 셈인데 가끔 지상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여기를 티베트라고 부른다. 다와는 이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다.


다와는 친구가 많다. 이름이 각기 다른 100마리의 양들과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야크 그리고 하루 종일 졸졸 따라다니는 순둥이(개)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다와의 제일 친한 친구는 바람, 별, 달, 그리고 다와가 걸어 다니는 초원이다. 초원은 맨발로 걸어 다녀도 좋을 만큼 촉감과 대지의 향기로 그윽하다.


다와는 아침잠을 좋아한다. 어제도 밤늦도록 순둥이와 별을 보며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침마다 야크 똥을 주워야 하기 때문에 아침이 오는 것이 싫기도 하다. 일어나면 바로 점심이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오늘은 다와의 마음을 알았는지 신선한 아침 우유를 벌써 준비해 놓고 밖으로 나갔다. 아마도 오늘은 양털을 벗기는 날인가 보다. 양털 벗기는 날은 엄마가 무척 예민하다. 왜냐하면 양털로 1년 먹을 것을 장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치가 빠른 다와는 얼른 우유 한잔을 마시고 야크를 데리고 초원으로 나갔다. 다와는 막힘이 없고 장애가 없는 녹색의 초지를 양들과 함께 돌아다니는 일이 매우 즐겁다. 양들의 번호를 확인한 후 다와는 야크 똥을 본격적으로 주우러 다녔다. 똥이 다와의 얼굴보다 커서 무겁지만 밤에 천막 안에서 지펴야할 연료가 떨어졌기 때문에 열심히 주워야 한다.


어느덧 점심이다. 오전 내내 돌아다녔더니 배가 고픈가 보다. 다와는 순둥이를 데리고 텐트로 돌아와 짬바와 차를 먹는다. 그리고 얼마 전에 문명의 세상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이 올라와서 같이 사진 찍으며 선물로 준 사탕과 과자를 집어 든다. 엄마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달고 고소한 것이 매일 먹는 짬바 가루 보다 훨씬 맛난가 보다. 밖을 보니, 엄마가 여전히 큰 가위를 들고 양 뒷다리를 잡아채는 걸 보니 양털 벗기기가 아직 안 끝난 모양이다. 다와는 야크를 친구처럼 생각한다. 추울 때는 야크의 털을 감싸고 자면 아주 따뜻하고 심심하면 타고 다녀도 되기 때문이다. 많은 야크 중에서 다와가 유독 좋아하는 야크는 이름이 ‘응삼이’인데 눈망울이 크고 걸음걸이가 느려 다와를 등에 잘 태워 준다. 응삼이는 젖도 매일 많이 내준다. 점심을 먹고 다와는 응삼이 옆에 누워서 순둥이랑 낮잠을 자려고 누었다. 입에는 사탕을 오물오물 물고 하늘을 응시했다. 오늘따라 태양이 뜨겁기 보다는 따뜻하고 바람이 솔솔 불어와 저절로 잠에 빠진다. 한참을 자다가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에 놀랐는지 눈을 뜬다. 오늘도 저 아래의 세상에서 이곳으로 놀러온 사람들이 우리 야크들을 보며 탄성을 지르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다와는 낮잠이 깨버려 즐겁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오늘도 혹시 사탕을 받을지 몰라 은근슬쩍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바다에서 타고 다니는 배 모양의 모자를 눌러 쓰고 까만 안경(썬글라스)에 빨간 입술을 한 여자가 싱긋 웃으며 묻는다. “애야 여기 사니? 사진 좀 같이 찍을까?” 다와는 못 알아들었지만 무엇을 요구하는지 얼굴 표정으로 이내 알아차렸다. 같이 사진을 찍고 있노라니 저 만치서 한 무리의 아저씨들이 몰려와서 같이 사진찍자며 끌어당긴다. 다와도 내심 싫지는 않았는지 웃으며 같이 찍었다. 그런데 어떤 아저씨가 자기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며 말한다. “애야 너는 왜 얼굴 볼이 이렇게 빨가니? 피부가 터질 것 같구나. 크림이라도 바르지?” 다와도 안다. 저 사람이 뭘 말하고 있는 것인지. 그런데 여기 티베트의 고원에는 햇살이 뜨겁고 일사량이 높아서 다와 엄마도 옆집 아줌마도 모두 얼굴이 빨갛다. 마치 빨간 사과 두 개가 양 볼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곳에는 태양으로부터 피부를 지켜주는 썬 크림과 보습제라는 것이 없다. 그래서 평소 얼굴을 씻지 않는다. 피부의 노폐물이 그나마 얼굴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목욕도 1년에 한번 할까 말까이다.


저녁이다. 이곳은 학교가 없기 때문에 엄마가 다와의 공부를 책임진다. 오늘도 저녁을 먹자마자 엄마는 공책과 연필을 준다. 공책에 티베트 모음과 자음을 10번씩 쓰는 것이 오늘 숙제다. “이런 거 안 쓰면 안 돼?”하고 물어보지만 엄마는 매일 시킨다. 그래도 다와가 못 이기는 척 참는 건 이 숙제가 끝나면 엄마의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억지로 글쓰기가 끝나자 엄마는 오늘도 티베트 민가에서 유행하는 노래와 역사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오늘은 티베트의 고대 왕이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이야기이다. 그 재미있다는 ‘하늘의 문’으로 들어가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오늘은 엄마의 이야기가 별로 재미가 없다. 왜지? 다와가 엄마의 얼굴을 빠끔히 쳐다보니 엄마는 목소리에 생기가 없고 리듬감도 없다. 아마 하루 종일 양 털 벗기기가 힘이 들어서인 것 같다. 다와는 잘 됐다 싶어 천막 밖으로 나왔다. 별을 보기 위해서다. 이 순간은 순둥이도 좋아한다. 별들은 춤을 추고 있다.

 

하늘을 바라보며 초원 위에 누었다. 이맘때 초원에는 각종 벌레들의 울음소리로 전쟁이 난다. 그런데 사실 울음이 아니고 벌레들이 짝짓기를 하려고 자기과시를 하는 것이라고 엄마는 이야기 한다. 아빠별, 엄마별, 순둥이별, 응삼이별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다와는 순둥이와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저 멀리 설산을 바라보며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도한다. 내일은 다와가 좋아하는 과자와 설탕을 사가지고 돌아오시려나? 이렇게 다와의 하루는 저물어 간다. 사회가 성숙되고 문명화 될수록 자연에 덜 얽매이게 되는 경향이 짙다. 이는 반대로 비문명화된 사회일수록 자연에 대한 의존도와 밀착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자연에서 의식주가 해결되며 교육과 사상이 이루어진다. 여기 티베트에서는 내 뜻대로가 아닌 자연의 뜻대로 모든 것이 굴러간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심혁주 한림대 연구교수 tibet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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