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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회통불교는 일본 제국주의 개념”

  • 교학
  • 입력 2013.11.0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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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헌 서울대 명예교수 등
‘한국불교사…’ 상·하 집필
불교사 연구 치밀한 검토
신앙과 학문 혼동 등 지적
지엽적 연구 이젠 지양해야


호국·통불교는 검증 안 거친
일본 근대불교학의 산물
몇몇 사례 일방적으로 모아
한국불교 특성화해선 안 돼

 

 

▲‘한국불교사 연구 입문’의 집필을 주도한 최병헌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불교사학의 발전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전통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는 역사의식의 정립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학자는 논문으로 말한다. 학문을 업으로 삼는 학자에게 논문은 일차적인 소통창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뭇 가벼운 논문이 있는가하면 천근처럼 묵직한 논문들도 종종 있다. 최병헌(71) 서울대 명예교수를 주축으로 28명의 학자들이 참여해 집필한 ‘한국불교사 연구 입문 상·하’(지식산업사)는 한국불교사 내용을 주제별로 나눠 지금까지의 연구성과와 과제들을 점검하고 새로운 연구 방향을 모색한 논문 모음집 형태의 개설서다. 지난 2008년 8월 최병헌 교수의 서울대 국사학과 정년퇴임을 앞두고 기획된 이 책에는 총 31편의 논문들이 수록돼 있다. 이들 논문 하나하나 한국불교사 이해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내용들이지만 이 중에도 단연 두드러진 것은 상권에 실린 최병헌 교수의 논문들이다.


먼저 ‘근대 한국불교사학의 전통과 불교사 인식’은 불교사 연구의 흐름을 심층적으로 검토한 논문이다. 여기에서 최 교수는 18~19세기의 전통적인 불교사서와 근대 불교사학의 경향을 비롯해 일제강점기의 한국불교사 연구, 민족해방 이후의 한국불교사 연구에 대해 거시적인 안목으로 서술하고 있다. 조선후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불교사와 관련된 문헌과 연구서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그에 대한 내용 소개와 더불어 날카로운 평가를 겸하는 등 최 교수의 해박함과 깊은 안목이 놀랍다.

 

특히 일본 학자들의 한국불교사 연구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도 눈에 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일본 학자의 학문적 성과로 다카하시 토오루의 ‘이조불교’(1929), 오야 도쿠죠의 ‘고려속장조조고’(1937), 누카리야 카이텐의 ‘조선선교사’(1930), 에다 토시오의 ‘조선불교사의 연구’(1977) 등 네 권을 꼽은 최 교수는 이들 저술은 광범위한 자료 섭렵과 정확한 해석, 일관된 체제와 객관적인 서술 등 연구방법 면에서 당시의 한국학자들을 뛰어넘는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동시에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그들의 역사 인식 모두 한국불교의 독특성이나 창조성을 부정하고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는 식민사관적인 견해를 보여주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논증했다.


최 교수는 방대한 연구사 검토 후 현대 한국불교사 연구의 문제점으로 △불분명한 문제의식 △연구사적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원점에서 맴돎 △신앙과 학문의 혼동 △특정 인물에 대한 선양사업과 학문적 연구의 미분화 △역사적 배경을 무시한 채 불교사상을 추상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 △민족적이고 호교적인 자기중심의 편협한 시각 등을 꼽았다. 이어 그는 한국불교사를 연구함에 있어 동아시아의 불교문화권, 나아가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불교문화권까지 포함하는 전체 아시아 문화권에서의 커다란 불교 흐름 속에서 한국불교의 위치와 역할을 이해하려는 거시적인 관점이 모색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두 번째 논문인 ‘한국불교사의 체계적 인식과 인식방법론’에서 그는 회통불교와 호국불교 개념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색함으로써 현재 불교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한국불교 성격 규정이 수정되거나 폐기될 수도 있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회)통불교와 호국불교라는 개념 자체가 메이지시기 일본 불교계에서 널리 사용되던 것으로, 한국 불교계에서 그 용어를 빌려와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요컨대 통불교와 호국불교는 일본 근대불교사학 성립 초기에 등장하기 시작해 ‘통불교일석화’(1902) ‘통불교안심’(1904) ‘통불교’(1905) 등을 비롯해 ‘불법호국론’(1856) ‘호법호국론’ 등 관련 책이 잇따라 발간됐고, 무라카미 센쇼(1851~1929)에 이르러 마침내 통불교와 호국불교라는 용어가 학술적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것이 권상로, 박한영 등 한국학자들에 의해 국내에 번역 소개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28명의 불교학자들이 참여해 31개의 주제로 엮은 본격적인 한국불교사 입문서다.
최 교수는 이러한 한국의 통불교론과 호국불교론이 일본의 영향 하에 관심을 갖게 됐지만 당시 그것은 일본 제국주의에 유린당하면서도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던 현실적인 생존의 의미를 가진 것이었으며, 일본의 식민지사학에 대항하려는 의지의 측면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빌려온 개념을 가지고 침략세력과 그 불교에 대항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한국 근대불교사학이 간직한 역사 인식의 모순과 한계점으로 지적되지 않을 수 없음을 지적했다. 또 일제 말기 전시체제에서 불교계가 호국불교라는 미명으로 전쟁협력에 나선 것이나 해방 후인 1960~70년대 군사독재정권 아래에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고양과 함께 호국불교론이 통불교론과 더불어 다시 주목을 받게 된 배경에도 독재정권의 정치적 의도가 깊이 배어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제라도 ‘호국’이나 ‘통불교’라는 개념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서 한국불교사에서의 국가와 불교의 관계,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며, 몇몇 사례만을 일방적으로 모아 한국불교의 특성으로 일반화시키려는 기존의 이해방법은 재고돼야 함을 역설했다. 이런 가운데 최 교수가 ‘통불교’를 본격적으로 확산시킨 육당 최남선에 대한 재평가도 돋보인다. 뒷날 학자들이 최남선의 ‘조선불교-그 동방문화사상에서의 지위는’(1930)에서 ‘통불교’만 주로 인용했지만 정작 최남선에게서 배울 것은 통불교론이 아니라 동서 문화교류라는 폭넓은 시각으로 아시아불교사의 전체적인 맥락과 전개과정에서 한국불교사의 이해를 추구한 넓은 안목과 그 구체적인 방법에 있음을 강조했다.


이밖에 ‘한국불교 역사와 불교-사회전환과 불교변화’와 ‘일제 침략과 식민지 불교’도 학술적 가치가 대단히 높다. 특히 ‘한국불교 역사와 불교’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불교사의 흐름 전반을 개괄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평생 불교사 연구의 외길을 걸어온 노학자의 내공이 그대로 묻어나는 ‘축소판 한국불교사개론’이다. 동아시아 불교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불교는 어떤 가치가 있으며, 어떻게 굽이쳐 오늘날에 이르렀는지를 거시적인 안목에서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병헌 교수는 “한국불교사학의 발전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전통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는 역사의식의 정립에서 비롯된다”며 “한국의 불교사학은 자기의 불교 전통에 대한 이해의 필요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현재의 불교철학과 문화의 계발 과정과 궤도를 같이해 발전하는 것이며, 현재적인 불교 발전의 한 고리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불교학자 28명 참여…논문 31편 게재


‘한국불교사 연구 입문’ 수록 논문들

 

이 책에는 최병헌 교수의 논문 4편 외에도 △불교수용 이전과 한국의 종교전통(나희라) △한국의 토착종교와 불교(서영대) △고대의 불교와 국가(신동하) △원효의 생애와 사상(남동신) △화엄사상(정병삼) △신라 유식학 연구의 현황과 과제(최연식) △발해불교(송기호) △고려시대 법상종의 연구동향(토니노 푸지오니) △고려 후기의 신앙결사(채상식) △고려 후기의 임제종 수용과 간화선(인경 스님) △원간섭기 고려불교에 대한 이해(강호선) △고려대장경(박상국) △고려시대 불교사서와 불교사 인식(김상현) △사원경제(이병희) △고려불교와 여성(김영미) △조선시대 불교사의 특성(김용태) △조선후기 진언집과 불교의식집의 간행(남희숙) △조선 후기 사기(私記)의 불교학적 의미(이정희) △조선시대 불교조각(송은석) △근대 불교종단 성립(김순석) △해방공간의 불교(김광식) △근현대 불서간행(윤창화) △일본 메이지시기 불교의 전개와 근대불교학의 성립(이태승) △일본 학계의 한국 화엄학 연구동향(김천학) △일본 학계의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오시카와 노부히사) △천주교 선교사들의 한국불교 인식(윤선자) △서양 학계의 한국불교사연구(판카즈 모한) 등 논문이 수록돼 있다.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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