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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힘

기자명 법보신문

사람이 갖고 있는 감정을 한 단어로 정의 내린다는 건 녹록치 않은 일이다. 시시각각 변화해 가는 심정이나 기분의 일부분을 딱 잘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의 내리려 하는 건 소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갈무리하기 가장 어려운 감정은 무엇일까? 기쁨(희.喜)과 슬픔(애. 哀), 즐거움(낙. 樂)과 분노(憤怒)는 그래도 명확하게 떨어진다. 그렇다면 사랑은?


그 어떤 철학자나 예술인도 사랑을 한마디로 정의해 내지 못했다. ‘아낌없이 줄 수 있어야’사랑이고,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어야’ 진정한 사랑이라 하지만 이 모두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나타낼 뿐 정의 내린 건 아니다. 국립국어원도 많은 고민이 있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른 사랑 정의는 이러했다. ‘이성의 상대에게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사랑의 상대는 이성이어야만 했다. 하지만 2010년 사랑은 ‘상대에게 성적으로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었고, 최종 결정한 2012년 사랑은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이다. ‘이성의 상대’가 삭제되고 ‘어떤 상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국립국어원이 좀 더 포괄적 의미의 사랑을 택했다 할 수 있다. 해외 선진국에서 말하는 사랑 정의에 가깝다.


영어권 웹스터 사전에서의 러브(Love)는 ‘연대감이나 인격에서 일어나는 다른 사람에 대한 강한 감정’, ‘성적 욕망에 기초한 끌림은 물론 존경심 자비심 또는 공통의 관심사에 기초한 감정’까지 포함하고 있다. 롱맨 사전에서는 ‘다분히 성적 매력과 결합된,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강렬한 느낌’으로 정의하고 있다.


프랑스어 라투스 사전에서의 아모르(Amour)는 ‘다른 사람의 열정적인 특성 또는 성적인 특성에 대한 갈망’이라 정의한다. 독일 두덴 사전에서는 ‘한 사람에게 향한 강한 친근감,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매력에 기초한 감정’, ‘유대감이나 헌신 또는 이와 유사한 감정과 결부된 감정으로 한 사람이 다른 성의 사람에 대해 갖는 감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남녀, 이성 사이에서 샘솟는 감정만을 사랑으로 정의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사랑에 대한 정의가 새롭게 내려지면서 ‘애인’이나 ‘연인’도 수정됐다. ‘이성 간에 사랑하는 사람’ 애인은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으로 수정됐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남녀’ 연인은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두 사람’으로 변경됐다. 이성, 남녀가 모두 삭제됨으로써 ‘사랑’은 이전보다 더 큰 힘을 얻게 됐다.


최근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몇 단체가 국립국어원의 사랑 정의에 제동을 걸었다. ‘상대’ 대신 ‘남녀 또는 이성’으로 표기하라는 주문인데, 결국 2010년 이전의 ‘사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주된 이유는 동성애 합리화는 물론 이를 확산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도 좁은 식견을 앞세운 억지다.


기독교 단체 주장대로 사랑을 ‘남녀’간의 감정 관계로 한정한다면 박애정신을 담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이다. ‘자연을 사랑하자’는 현수막은 지금이라도 거둬들여야 한단 말인가? 이미 아들과 딸들에게 ‘사랑한다’ 말하는 부모들에게 ‘사랑’교육을 다시 시켜야만 하는 것일까? 모정과 부정도 알고 보면 사랑이요, 우정과 연민도 사랑에서 파생된다. 흔히 말하는‘이성간의 사랑’은 넓은 의미의 ‘사랑’ 한 자리를 차지 할 뿐이다. 기독교 단체의 말대로 ‘언어는 사회 구성원의 인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그렇다면 동성간의 애틋한 감정을 사랑 범주 안에 아예 넣어두려 하지 않는 건 지나친 차별이라는 사실은 왜 인식하지 못하는가? 소수의 인권도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현 시점에서 기독교단체의 ‘사랑’회귀 주장은 시대착오적 발상에 불과하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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