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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도쿄 네즈미술관 소장 고려시대 승탑

기자명 법보신문

이민족 침공으로부터 북방을 지키는 호국의 무신

인도신화서 유래된 사천왕
일본은 북방천왕 위상 높아


한국서 건너간 승탑사천왕상
중국식 다문천왕 특징 담겨
관련연구 없어 가치 남달라

 

 

▲ 네즈미술관 소장 고려시대 승탑의 다문천상의 도상은 통일신라시대까지는 전혀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고려시대에 들어서도 거의 볼 수 없는 매우 드문 모습의 귀중한 자료다.

 

 

한국 문화재에 대한 일본인들의 조사는 한일합방 이전인 1902년 무렵부터 시작됐다. 당시의 조사는 어디까지나 일본의 조선통치를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우리 민족문화의 전통을 발견한다거나 선양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그 무렵 일본에서는 골동취미가 보편화됐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은 우리 문화재가 반출되는 빌미가 됐다. 당시 일본인들에 의해 도굴되고 반출된 문화재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 교토대학 명예교수를 지냈던 고고학자 우메하라 수에지(梅原末治)는 당시 도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을 정도다.


“대체로 반도의 유적 파괴, 특히 고분의 도굴은 일찍이 고려청자가 묻혀 있는 고분이 많은 개성을 중심으로 규모가 작은 것에서 시작되어 차차 경상남도 선산 부근을 비롯해 낙동강 유역에 있는 유적까지 이뤄졌다. 1923~1924년에는 낙랑고분에 대한 대규모 도굴까지 하기에 이르렀다.”(‘조선의 고대문화’)


한편 일본에서는 근대적 의미의 정원만들기라고 할 수 있는 조원(造園)활동도 성행했는데 교화(敎化)를 목적으로 하는 정원을 조성할 때 배치시킬 석물이 필요했고, 이로 인해 석탑이나 석등 같은 석조 문화재의 수요 또한 증가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석탑이나 석등이 방치된 절터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런 절터들이 일본 골동품상들에게는 마치 보물섬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도쿄(東京) 지하철 오모테산도(表參道)역에서 걸어서 십분 정도 거리에 네즈(根津)미술관이라는 대규모 사립미술관이 있다. 이곳은 토부철도(東武鐵道)사장 등을 지내며 일본의 수많은 철도의 부설과 재건사업에 관여해 “철도왕”이라고 불린 사업가 네즈 카이치로(根津嘉一郞)의 수집품을 전시하기 위해 건립된 미술관이다. 1941년에 개관했으며, 교토(京都)의 후지이유린관(藤井有館), 도쿄의 오오쿠라집고관(大倉集古館), 효고현(兵庫)의 하쿠츠루미술관(白鶴美術館), 오카야마현(岡山)의 오하라미술관(大原美術館) 등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창립된 일본에서도 몇 안 되는 미술관 중의 하나다.

 

 

▲ 네즈미술관 소장 고려시대 승탑은 일제 강점기에 도굴돼 네즈 카이치로의 수집품 가운데 하나로 넘어갔다.

 


미술관 부지는 네즈카이치로의 사저 터이고, 드넓은 일본식 정원이 있는 뜰 안에는 일본·한국·중국에서 제작된 석불·석등·석탑·승탑 등 석조문화재가 산재하고 있다. 2006년 5월부터 2009년 10월까지 미술관은 내진설계 등을 위한 개축 공사 때문에 휴관을 하면서 외부 전문가들에게 그동안 조사가 미진했던 소장품에 대한 조사를 외뢰했고, 당시 도쿄에 체류하고 있던 나는 정원 석물조사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네즈미술관에는 불상·불화·범종·사경 등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가 상당수 보관돼 있는데, 지난 조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정원에 있던 고려시대 승탑이었다. 2008년 조사 당시 본관 건물 앞에 안치돼 석조승탑(현재 높이 3.18m)에는 8면의 탑신 중 4면에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는데, 그 중 북방다문천은 밑에서 받치고 있는 지천녀(地天女)의 양 손을 딛고 서있다. 소위 도발비사문천(兜跋毘沙門天)이란 도상이다. 이 상은 우리나라에서 통일신라시대까지는 전혀 흔적이 없고, 고려시대에 들어서도 거의 볼 수 없는 매우 드문 모습의 귀중한 자료다. 이 승탑에 대해서는 1960년 초에 고 김홍직선생이 간략하게 소개한 바 있지만, 도발비사문천에 대한 연구는 아직 없기 때문에 이 승탑이 갖는 미술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


원래 사천왕은 인도의 신화시대부터 호세신(護世神) 또는 방위신이었다. 이 재래신은 약샤(Yaksa) 또는 약쉬니(Yaksini)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는데, 약샤는 남성형 수호신이며, 약쉬니는 여성형으로 다산과 토지의 풍요로움을 관장하는 지모신(地母神)이었다. 인도의 재래신들을 불교에서는 일찍부터 사천왕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불교에 수용된 사천왕은 욕계육욕천(欲界六欲天)의 제일계인 사천왕천의 주인이 되는데 수미산의 중복에 살며 사방사주(四方四洲)를 수호하는 호법신이다. 이 중 북방의 천왕인 다문천은 사천왕 중에서도 그 위상이 가장 높아 중앙아시아·중국·일본 등지에서 독존으로서 신앙되기도 한다. 독존으로 모실 경우 일본에서는 비사문천(毘沙門天)이라고도 부른다. 비사문천은 산스크리트어의 바이슈라바나(Vais´ravan. a)를 음역한 것으로서, 그 의미는 ‘바이슈라바스신의 아들’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잘 듣는 자’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해 이를 의역한 한역명이 곧 다문천이다.


비사문천은 원래 인도 신화의 재보신(財寶神) 쿠베라에서 유래한 것이다. 쿠베라는 재보신으로서의 성격이 강했지만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점차 재보신보다는 무신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됐고, 불교의 호법선신인 사천왕이 됐다. 인도나 중국의 입장에서 북방이란 이민족이 침공해오는 주요 루트이기 때문에 북방을 담당하는 신에게 무신, 전쟁신의 가호를 바라게 된 것이다. 이런 사정은 고대 우리나라에서도 별반 다를 바 없어서 사천왕, 그중에서도 외적이 침범하는 북방을 지킨다는 비사문천에 대한 신앙이 호국 사상과 결부돼 특별히 발달했다.


비사문천의 도상중에는 지천녀(地天女)와 두 악귀가 배치된 독특한 모습의 상이 있는데 이 상을 특별히 도발비사문천(兜跋毘沙門天)이라고 한다. 도발비사문천에 대한 신앙은 중앙아시아의 코탄에서 시작됐으며, 중국도 그 영향을 받아 8세기말부터는 벽화와 조각 등을 조상하기 시작한다. 일본에는 당나라에 유학 갔던 승려들에 의해 전해져 밀교존상들과 함께 헤이안시대 불교조상의 중요한 테마가 된다. 현재 교토 토오지(東寺)에 있는 도발비사문천상은 원래 왕성수호신(王城守護神)으로 나성(羅城) 문루에 안치된 것을 문루가 도괴되면서 토오지로 옮겨온 것이다.


한국에서 사천왕은 7세기 후반 사리 용기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선정돼 조상되기 시작한다. 8세기 이후에는 석탑 탑신의 네 면에 많이 새겨지는데 현존하는 최고의 부도인 염거화상 사리탑(844년 경)에서 볼 수 있듯이 9세기 전반에는 승탑에도 등장하게 된다. 그 이후 승탑 안에 봉안된 사리를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조상되는데 네즈미술관 승탑에 표현된 사천왕상도 그 일례이다.

 

 

▲ 경북대 박물관 소장 석조승탑의 다문천상은 도상적 특징 가운데 두 악귀를 동반한 지천이 확인되는 작품이다.

 


동남면에 배치된 지국천왕상은 보관을 쓰고, 오른손에는 검을 들고 있다. 남서면에 배치된 증장천상은 보관을 쓰고 정면을 향해 사각형의 대좌 위에 서있으며, 양손으로 화살을 잡고 있다. 북서면의 광목천상은 보관을 쓰고 정면을 향해 서있으며, 배 앞에서 왼손위에 검을 얹어 놓았다. 북동면의 다문천상은 보관을 쓰고 정면을 향하여 지천녀의 양 손바닥 위에 서있다. 오른손은 허리 앞에서 수직으로 삼차극이란 창을 쥐고 있으며, 왼손에는 보탑을 얹어 놓았다. 4구의 사천왕상은 모두 표면에 마멸이 진행되고 있어 자세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중국의 초당에서 성립한 중국식 무장형 사천왕상의 도상을 보이고 있다.


마츠모토 에이이치(松本一)씨는 논문 ‘도발다문천왕도(兜跋毘沙門天圖)’에서 도발다문천왕의 도상적 특징에 대해 ① 소탑과 창극을 가질 것. ② 좌우에 두 악귀를 동반한 지천의 양 손바닥 위에 서 있을 것. ③ 두 다리를 벌리고 정면을 향해 직립할 것. ④ 갑옷을 입을 것. ⑤ 옷을 왼쪽으로 여밀 것. ⑥ 유익의 삼면 보관을 쓸 것 등 여러 가지 조건을 정리해 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도상적 특징을 모두 갖춘 작품은 거의 현존하지 않고 도상의 일부를 차용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한국에서 두 악귀를 동반한 지천이 확인되는 작품으로는 경북대 박물관 소장 승탑(보물 제135호)과 예산 보덕사 석등 다문천상을 들 수 있다. 또 머리에 삼산형 보관을 쓰고 오른손으로 보탑을 받치고 있는 법흥사 승탑의 다문천상의 경우는 이른바 도발비사문천의 특징이 직접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른바 도발비사문천의 도상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임석규 실장

한국의 도발비사문천상에 관한 연구는 충분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현존 작품이 적은 것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작품이 옥외에 있기 때문에 표면 마멸이 심해 세부적인 확인이 어려운 것도 연구에 방해가 되고 있다. 특히 네즈미술관 소장 석조 승탑의 경우 일본에 있기 때문에 한국 학자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것도 연구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네즈미술관 소장 승탑은 이른바 도발비사문천의 도상이 한국에 수용되는 양상을 엿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앞으로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 연구실장  noali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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