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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덕·황리선 부부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공부 시작하게 된 계기
법학자이자 뛰어난 불교학자
새로운 재가불자 모델 제시

 

왕이나 귀족 문벌의 식객(食客)으로서 주인의 보호를 받으며 자문 역할을 담당했던 지식 계층이 있었다. 직하(稷下)란 신분이다. 유교의 문벌 전통과 학통의 전승을 수립한 유생들의 집단화의 제도였다. 그러나 내가 이 말의 중요성을 인지한 것은 전혀 개인적 차원에서였다. 장학제도의 혜택은 커녕 “뭐 그런 공부도 있어”라는 조소적인 시선을 받은 것이 나의 불교학이고 종교학이었다.


1960년대 중반 나는 황산덕 교수와 황리선 부부의 직하로 불교공부를 시작했다. 황산덕 교수는 저명한 법학교수였고 언론인이었으며 나아가 사회적으로도 우여곡절을 겪는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내가 접한 황산덕 교수는 오히려 전형적인 종교인이었고 무엇보다도 신심 깊은 불자였다. 지금의 성균관대 정문 옆 골목길에 위치한 황 교수의 집은 주말이면 젊은 학자, 제자들의 훌륭한 식객처였고 우리들은 항시 초대받기를 기다렸다. 그 가운데는 나의 스승이었던 고 이기영 교수, 서경수 교수, 리영자 교수도 항시 참석했다. 물론 가장 나이 어렸던 나는 말석에 앉아 어른들의 담론에 귀를 기울였다.


황산덕 부부는 프랑스에서 갓 귀국한 이기영 학문의 신선함과 폭을 인지한 최초의 분들이었고, 서경수의 재기발랄한 발언을 경청해 주신 분들이었으며 이후 이분들을 계속 밀어 주었다.


황산덕 부부는 본래 개신교와 가톨릭신자였다. 집안의 내력 때문이었겠으나 워낙 지적인 이분들은 쉽게 불교로 기울어졌고 기독교계가 알면 펄쩍 뛸 불교로의 개종을 과감히 실천에 옮긴 분들이다. 실천불교의 표본인 청소년들을 위한 룸비니학생회를 키운 것도 이 두 분이다. 종교자유정책 대표로 활약 중인 서강대 박광서 교수도 이 불교학생회출신이었다. 그리고 불교학자 못지않은 깊은 이해, 더욱 서구에서의 불교학의 추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나의 이런 증언은 집 이층에 위치한 좁다란 서재의 서가에 법학관계 문헌 이외에 불교전문 서적들이 나란히 꽂혀 있었던 사실에 근거한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은 자크 메이(Jacques May)의 불어판 찬드라낄티(Candrakirti, 月稱)의 ‘쁘라산나빠다(Prasannapada)연구’ 단행본이었다. 지금은 중론연구가 심화되어 우리 학계도 이 문헌을 쉽게 참고용으로 다루고 있다. 1959년 간행된 산스크리트, 티베트역본에 근거한 이 연구서적은 당시로서는 불교학연구의 결정판이었다. 혹 서가의 이 책은 우연이었을까? 그 후 나의 인생역정이 미국 대학 도서관에서 한국불교 관계 서적을 뒤적거리게 하였다. 그때 동아시아 서가에서 나는 황산덕 교수가 지은 ‘중론송’ 번역본과 원효의 ‘열반종요연구’ ‘여래장연구’를 접하고는 자크 메이의 책이  우연히 꽂혀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절감했다. 두 책을 읽으며 황산덕은 법학자였던가 혹은 불교학자였던가를 새삼 반추하였다. 그리고 우리 학문 분류방식과 직종 분류방식을 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열반종요’나 ‘여래장‘연구는 기존의 축자적 언어학적 연구방식을 뛰어 넘어 여러 지식 체계가 융합적으로 녹아있는 해석학적 접근이었다. 이기영의 원효 연구를 밀어주면서 당신 역시 뒤에서 법학(Dharma學)을 연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법학(法學)이란 학문은 인간학으로서 ‘Dharmalogy(法學)’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그 분의 지론이 투영된 것은 아닐까?

 

▲이민용 이사

더욱이 최초의 재가불교론을 석사학위논문으로 제출한 황리선 보살은 나를 ‘쁘띠(작은) 이기영’이라 애칭하며 대학원 시절 개인 장학금을 지원해 주셨고 황산덕 교수는 결국 나의 주례선생님이기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이렇게 되면 나는 그 분들의 문하이거나 직하(稷下)였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혹 앞으로 한국 불교신행 서술에 ‘재가불교(불자)’라는 새로운 항목이 설정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이 두 분을 앞세워 다양한 재가불자의 상을 그리고 싶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 이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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