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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관찰

기자명 법보신문

생멸한 조건따라 사라진 인연 직시해야

너무도 빨리 변하는 세상서
적응 못하면 도태되기 십상
변화에 끌려 집착 시작되면
현상과 본질 왜곡은 필연적

 

스마트 시장이 열리면서 삶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졸면 죽는다’는 말이 더 이상 자동차 운전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기존의 거대 공룡기업들이 맥없이 흔들리고 있다. htc, 캐논, 올림푸스 그리고 도요다가 그렇다. 반대로 새로운 강자가 등장하고 있다. 새로운 강자도 언제까지 강자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강자들이 입을 모아 ‘졸면 죽는다’고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이 너무도 빨리 변하고 있다. 그 거대 기업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작은 기업이나 소시민들은 현재의 변화를 감지하기도 전에 다음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우리는 정말로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을 매순간 알아차리고 매순간 받아들이고 있을까. 우리의 몸과 마음도 매 순간 변하고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차리며 받아들이고 있을까. 정행품 경문을 보자.


“가부좌를 풀 때면, 중생들이 모든 행법(行法)이 다 흩어져 소멸되는 것임을 관찰하기를 발원해야 한다.”


‘가부좌를 푼다’는 것은 수행의 과정에서 잠시 휴식을 갖는다는 말이다. 가부좌를 하고 우리는 계정혜 삼학을 닦는다. ‘닦는다’는 말은 바꾸고 고친다는 뜻이다. 우리의 몸과 말과 마음에서 바꿀 것은 바꾸고 고칠 것은 고치는 행위다. 노력을 하는 데는 자세를 올바르게 해야 오랜 시간 집중할 수 있다. 우리는 수행을 정해진 시간에 하거나 아니면 전문적으로 하루 종일 하기도 한다. 어떻게 하든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알맞은 휴식이 다음의 노력에 에너지를 공급해 준다.
‘모든 행법이 다 흩어져 소멸되는 것임을 관찰한다’에서 ‘행법’이란 우리의 감각기관과 마음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말한다. 즉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이 된다. 그것들은 조건이 모이면 존재하는 듯 하다가 조건이 흩어지면 소멸되어 사라진다. 모두 무상(無常)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무상을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처럼 생명을 갖고 있는 존재에게 무상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모습으로 온다. 태어나서 죽는 사이에 겪게 되는 것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늙어가게 되고 수시로 병이 들어 고통을 겪는 것이다. 어쨌든 태어난 존재는 반드시 죽게 된다. 광물들의 무상은 성주괴공(成住壞空)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광물들은 조건이 모이면 만들어졌다가 일정시간 유지하고 무너져서 사라지는 과정을 겪는다. 어느 광물도 예외는 없다. 식물의 무상은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마음도 생주이멸의 모습을 갖는다. 생겨나서 머물다 변화하고 소멸된다.


우리가 매 순간 무상을 보게 되면 수행은 크게 발전을 한 상태가 된다. 무상에는 원인의 단계와 결과의 단계가 있다. 결과의 단계에서는 변화를 줄 수 없다. 결정된 결과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결과를 회피하려는 무리한 노력이나 마음을 쓰지 않는다. 노력을 해도 마음을 써도 후회와 고통만 더해질 뿐이다. 원인의 단계에서는 우리가 노력을 하고 마음을 쓸 수 있다. 모든 것은 조건이 모이면 이루어지고 조건이 흩어지면 사라지기 때문에, 우리는 특정 사안에 대하여 조건을 모을 것인지 아니면 조건을 흩을 것인지 선택하고 노력하면 된다. 원인의 단계에서 미리 선택하고 노력하면 삶은 선택의 과정이 된다. 반대로 결과의 단계에서는 결정된 상황이 주어지고 어쩔 수 없는 삶을 살게 된다. 또 일체가 무상하기 때문에 일체의 상황에서 원인의 단계와 결과의 단계를 동시에 만날 수밖에 없다. 무상한 현상에는 결정적인 결과는 없다. 일시적인 결과가 있고 그 결과는 다시 다음 결과를 이루는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된다. 결과에 순응하면서, 필요한 원인을 모으는 동시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무상을 깊게 이해하면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일이 쉬워진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것은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다. 관계와 관계 속에 흐르는 무상의 도리에 순응하면서 집착하는 마음만 내려놓는 것이다. 당연히 관계를 맺는 사람에게 정성과 공경을 다해야 한다. 관계가 편안할 때도 집착하지 않으면서 정성과 공경을 다하고, 관계가 불편할 때도 집착하지 않으면서 정성과 공경을 다한다. 사물이나 환경과의 관계에서도 사물이나 환경을 버리고 떠나라는 말이 아니다. 사물이나 환경과 맺고 있는 관계에서 집착하는 마음만 내려놓으라는 말이다. 집착을 내려놓고 정성과 공경을 다할 수 있다면 무상을 깊게 체득한 상태일 것이다.


집착이 우리 마음에 일어나면 우리의 인식체계는 착각과 왜곡현상이 발생한다. 마치 돋보기나 졸보기를 사용해서 사물을 보면서, 자신은 돋보기나 졸보기를 사용하고 있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경우와 같다. 보고 듣기는 분명히 하였지만, 집착하는 대상에 대해 과대평가를 하거나 과소평가를 하게 된다.

 

▲도암 스님

자신의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하니 내려놓을 수도 없다. 그리고 자신은 객관적이라고 믿는다. 무상을 이해하고 무상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 집착이 없이 노력하고 집착이 없이 받아들일 때, 우리의 인식활동은 착각과 왜곡현상에서 벗어나게 되고 삶의 무게도 가벼워진다.

 

도암 스님 송광사 강주 doam19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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