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부활론
44. 부활론
  • 법보신문
  • 승인 2013.11.27 12: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수 부활은 기독교 핵심
자기 신앙 전파하는 근거
해탈중시하는 불교에서는
무의미한 생존 집착일 뿐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종교를 권할 때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내용이 예수의 부활이다. 예수님은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분이므로 이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누구도 죽음가운데 살아난 자가 없었는데 오직 예수만이 죽음으로부터 일어나 영생의 몸을 보였으므로 구원받을 곳은 기독교뿐이라고 외친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는 신성 모독죄로 십자가형을 받아 처형을 당하였다. 그것도 돌을 떡으로 만들고 물위를 걸었던 그 권세와는 너무도 다르게 나약함과 무기력 그리고 고통 속에서 최후를 마쳤다. 전지전능한 신은 왜 자신의 아들이 비참하게 죽는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었을까? 또 그 많은 천사들은 모두 어디 갔을까하는 의문을 남긴 채 예수는 그렇게 죽었다. 그러나 기독교 교리에 있어 예수의 생애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예수는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해 제자들 앞에 나타나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을 한다. 예수의 부활과 승천에 관한 일화는 신약성서 대부분에서 언급되고 있다. 막달라 마라아에게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묻기도 하고(요한복음20장), 11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나 생선도 구워먹고(누가복음24장),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나타나기도 하고(고린도전서 1장), 갈릴리 사람들이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보고(사도행전1장),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보았다(사도행전7장)는 등 많은 복음서마다 예수의 부활과 승천에 대해 서로 다르게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기독교교리를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부활과 재림에 관한 목격담이 각 복음서마다 서로 다르게 표현되어 모순이 있다고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부활과 승천을 확신하고 그 교리를 남들에게 전파하려 한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부활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없다면 그들의 신앙은 무의미하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가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너희 믿음도 헛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기독교에 있어 부활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는 예수의 부활을 어떻게 볼까?


불교에서 인간들이 짊어진 문제는 그가 신이건 사람이건 한 인물의 부활에 따라 해결되고, 안 되고 할 사안이 아니다. 말하자면 예수의 부활은 부활이고 각 개인의 문제는 각 개인이 짊어져할 것이다. 단지 예수가 부활했다고 해서 자신의 문제까지도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논리라면 예수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모든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또 불교에서는 죽은 자가 혹 다시 살아날 수는 있어도 영원히 존재할 수는 없다고 본다. 불교의 진리는 냉엄하다. 생자는 필멸이고 모든 법은 무상하기 때문에 하늘의 신들도 언젠가는 몸을 버려야만 한다고 가르친다. 불교의 시각에서 보면 예수가 태어나 성장해서 나이를 먹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육신에 과가 현재 미래가 있다는 사실이며 이는 곧 매순간 죽음을 당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다. 죽음이 꼭 숨이 끊어지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현재의 육신과 마음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 속에 이미 들어있다. 이른바 찰나 생멸론이 그것이다. 이 법칙에서 보면 아무리 예수가 부활을 했다 할지라도 무상을 면할 수 없다.

 

▲이제열 법사

이와 함께 불교에서는 부활논리를 생존에 대한 집착과 존재에 대한 결박으로 본다. 불교에서의 생명은 무명과 업, 번뇌에 의해 조작되어진 허구이며 고통의 출처로, 이를 존재화 시키고 영속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부처님은 사람의 몸을 생노병사가 머무는 장소로 보았으며 마음을 번뇌가 자라는 장소로 보았다.(아함경) 생명의 존재는 괴로움인 것이다. 따라서 불교에서 부활이나 재생은 존재의 실상을 알지 못하고 생존에 집착하는 중생들에게 설득력이 있을지 몰라도 부처님처럼 존재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떠나 해탈한 분에게는 무의미한 사건이 되고 만다.

 

이제열 법림법회 법사 yoomalee@hanmail.net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