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괴승 드룩파 쿤리와 치미라캉
18. 괴승 드룩파 쿤리와 치미라캉
  • 남수연 기자
  • 승인 2013.11.27 14: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위 벗어버린 ‘미친 성자’, 개로 변한 악마 제압해 땅에 가둬

해발 3116m 도출라 넘어 푸나카로
길가선 마을간 활쏘기 대회로 들썩
전통 문화에 대한 높은 자부심 보여


부탄국민들에게 인기 높은 수행자
드룩파 쿤리의 별명은 ‘미친 성자’
악마 제압하고 다산 빌어주는 상징
출가자의 위선·권위주의 지적하려
외설스런 행동과 조롱섞인 농담도


치미라캉에 활·화살·남근상  보관
아이 없는 부부가 이곳서 소원 빌면
‘좀보키’ 도움으로 아이 생긴다 믿어

 

 

▲치미라캉은 부탄국민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있는 수행자 ‘드룩파 쿤리’와 인연 있는 사찰이다. ‘미친성자’로 불리는 드룩파 쿤리는 이곳서 주민들을 괴롭히던 악마를 제압해 탑 아래 가뒀다.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는 탑이 악마를 가둔 곳이다.

 


수도 팀푸에서 푸나카로 가기 위해서는 ‘도출라’로 불리는 고개를 넘어야 한다. 부탄어로 ‘라’는 고개를 뜻한다. 말이 고개지 도출라 정상의 해발고도는 3116m. 백두산(2744m)보다도 훨씬 높다. 하지만 3000m 이상 되는 고개가 즐비한 부탄에서 도출라는 그리 험난한 축에 들지 못한다.


그럼에도 도출라가 유명한 이유는 손꼽히는 히말라야 조망대이기 때문이다. 날씨만 도와준다면 부탄의 최고봉인 강카푼숨(7564m)을 비롯해 히말라야 설산의 장대한 도열을 이곳서 한 눈에 맞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상을 향해 힘겹게 올라가고 있는 우리 차를 짙은 안개가 앞지른다. 정상에 다다르니 낮게 깔린 안개가 시야를 콱 틀어막는다. 히말라야는 고사하고 우리가 올라온 길도 보이질 않는다. 그나마 도출라 정상은 안개서 벗어나 있어 다행이다. 도출라는 정상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108개의 초르덴 군락으로도 유명하다. ‘드룩왕걀초르덴’으로 불리는 이 군락에는 모두 108개의 탑이 있다. 부탄 남부서 벌어졌던 반군과의 교전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고 전사한 이들을 애도하는 추모탑으로 2005년 조성됐다. 인도의 아삼 지역에 포함되는 부탄 남부에서는 종종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무력충돌이 발생하곤 하는데 4대 국왕이었던 지그메 싱게 왕축이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사태를 해결했다고 한다. 이 기념탑은 승리를 기념하고 왕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동시에 당시 목숨을 잃은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한 것이다. “아군 뿐 아니라 비록 적군이라도 소중한 목숨을 잃은 이들 모두의 명복과 극락왕생을 발원한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 도출라 정상에는 승리를 기념하고 망자들의 명복을 비는 108개의 초르덴이 조성돼 있다.

 


고갯길을 다 내려와 멀리 마을이 보일 때 즈음 길가가 떠들썩하다. 차를 세우고 길 아래로 내려가 보니 한 무리의 남자들이 모여 활쏘기 시합을 벌이고 있다. 부탄에서 활쏘기는 그야말로 국기(國技)다. 우리에게 태권도가 있다면 부탄에는 활쏘기가 있다. 물론 활은 현대적으로 개량됐지만 경기 방식은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활쏘기에 관심을 보이는 이방인의 손을 잡아끌며 자신들의 활쏘기 경기를 보여주려는 그들의 미소 속에서 태산 같은 자부심이 느껴진다.

 

 

▲ 부탄의 국기로 여겨지는 전통 활쏘기 대회.

 


과녁은 적어도 150m 이상 떨어져있다. 과녁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데 허공을 향해 날아가듯 쏘아올린 화살이 맞은편 과녁에 꽂히면 선수들은 둥글게 모여 춤과 노래로 자축을 한다. 활 쏘고 노래하고 춤추고를 반복하니 무슨 놀이를 하는 듯 보이지만 엄연한 경기다. 이웃 마을 간에 벌어진 대결인데 각 팀의 대표들이 마을의 명예를 걸고 출전한 만큼 응원전도 대단하다. 경기장에는 선수들 외에도 감독, 코치로 보이는 어르신들이 포진해 있고 주변에서는 여성들이 차와 먹거리 등을 준비해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화살이 명중할 때 마다 목도리같이 생긴 천을 하나씩 받아 허리에 찬다. 색동치마를 입은 듯 허리주위로 스카프를 잔뜩 매달은 선수는 걸음도 위풍당당하다. 아직 허리춤이 허전한 선수는 활시위를 당기는 표정이 사뭇 초조하다. 하지만 같은 팀 선수가 명중을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박수를 치며 노래를 한다. 이 경기가 끝나려면 해질녘이 돼야 한다니 이즈음에서 돌아서야 한다. 작별인사를 나누기 전 “활시위를 한 번 당겨 봐도 되겠냐”고 부탁하니 기꺼이 자신의 활을 내준다. 생각보다 무겁지만 자신감을 갖고 빈 활시위를 힘껏 당겨본다. 이런, 꿈쩍도 하지 않는다. 동시에 선수들의 웃음이 ‘빵’ 터졌다. 너무 만만하게 여겼나 싶어 민망해진다. 그때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다”고, “남자 힘에 맞춰 활시위를 팽팽하게 매놓았기 때문에 당기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위로해준다.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것으로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


활쏘기 경기장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니 제법 넓게 펼쳐진 논두렁 너머 언덕 위에 오늘의 목적지 치미라캉이 보인다. 치미라캉은 ‘개가 없는 사원’이라는 뜻이다. 이 독특한 이름은 부탄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괴승(怪僧) ‘라마 드룩파 쿤리’로부터 기인한다.

 

 

▲‘미친 성자’로 불리는 수행자 ‘드룩파 쿤리’.

 


오늘날 부탄국민들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고승 드룩파 쿤리는 ‘미친 성자’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그가 이 같은 별명으로 불린 이유는 기이한 행적 때문이다. 드룩파 쿤리는 1455년 티베트의 랄룽지방서 태어났다. 10대 후반까지 매우 종교적인 삶을 추구했고 특히 아버지의 죽음으로 세속적 삶에 환멸을 느낀 그는 드룩빠 까규파의 총본산인 랄룽사원에서 출가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제도화된 종교 형식과 사원 등에 실망한 드룩파 쿤리는 사원을 떠나 탁발을 하며 이곳저곳을 유랑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용의 광인(狂人)’이라는 별명을 얻고 유명해진다. 기인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평소 활과 화살, 그리고 ‘불타는 벼락’이라 부르는 남근상을 무기처럼 어깨에 맨 채 개 한 마리를 동행삼아 부탄 곳곳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티베트와 마찬가지로 부탄에도 먼 곳에서 온 수행자에게 축복을 바라는 의미로 목에 흰 천인 카타를 걸어주는 풍습이 있다. 드룩파 쿤리가 어느 마을에 도착했을 때 한 남자가 그의 목에 카타를 걸어주며 축복을 빌었는데 드룩파 쿤리는 그 카타를 돌연 자신의 성기에 휘감아 묶어버리고는 그 남자에게 “많은 여인과 함께 하는 행운이 깃들 것”이라고 축복했다고 한다. 다소 외설스러운 이 이야기는 농경사회였던 부탄에서 다산이 노동력의 증가, 즉 풍요와 맞닿아 있음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가 가기도 한다. 또 드룩파 쿤리는 ‘불타는 벼락’을 이용해 악마를 제압하거나 교화시켰는데 부탄 곳곳에서는 그의 활약상을 담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덕분에 드룩파 쿤리에 대한 부탄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은 지금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부탄의 집은 보통 2~3층이고 벽에 다양한 그림을 그려 넣는데 건물 벽 곳곳에서 사람 키만큼 크게 그려진 남근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바로 드룩파 쿤리의 상징으로 다산의 기원과 나쁜 기운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벽사의 의미가 함께 들어있다. 특히 현관문 위에는 나무로 조각한 남근상을 매달아 놓기도 하는데 역시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 부탄의 가정집 벽에서는 다산을 기원하고 악마를 막기 위해 그려진 남근상을 쉽게 찾아볼 수 았다.

 


사실 괴승에 가까운 드룩파 쿤리지만 그에 대한 오늘날 부탄사람들의 평가는 한결같다. 그는 일찍이 밀교의 수행법 가운데 하나인 탄트라 요가를 수행해 높은 경지에 이르렀는데 불교 수행자, 영적 지도자라면 때론 중생을 위해 걸림 없이 그들 곁에 다가가 불법을 전할수도 있어야 한다고 여겼으며 형식에 얽매이거나 고정관념에 빠지는 것은 참다운 수행자의 모습이 아니라고 여겼다는 것. 특히 스님들에게도 조롱 섞인 농담과 외설스런 행동을 거침없이 보인 것은 출가자들이 빠지기 쉬운 위선과 권위주의, 그리고 자신들의 잘못을 덮으려는 태도를 지적해 스스로 개선하도록 이끌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곳 치미라캉은 드룩파 쿤리와 관련된 대표적 사원 가운데 하나다. 드룩파 쿤리는 이곳에서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던 악마를 제압했는데 개의 모습으로 변신해 도망가던 악마를 잡아 땅속에 가두고 그 위에 탑을 세워 다시는 나오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후 그의 사촌이 탑 옆에 세운 사원이 바로 치미라캉이다. 이렇게 해서 이 사원은 ‘개가 없는 사원’이 됐다. 개로 변한 악마를 가뒀다는 탑이 사원 입구에 서있는데 제법 육중해 보인다. 또 치미라캉에는 드룩파 쿤리의 활과 화살, 그리고 그가 들고 다니던 남근상이 보관돼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이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아이를 갖게 된다는, 부탄의 대표적인 ‘득남득녀 기도 성지’다. 부탄사람들은 아들 못지않게 딸을 선호하는데 아이 갖기를 원하는 부부들의 상당수도 딸을 소원한다고 한다. 기도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법당에서 약간의 보시를 하고 스님의 축복을 받은 후 소원을 빌며 주사위를 던진다. 특정 숫자가 나와야 소원이 이뤄지는데 어떤 숫자가 나와야 되는지는 스님만 안다. 주사위를 한번 던져 원하는 순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스님은 필요한 순자가 나올 때 까지 주사위를 계속해서 다시 던지도록 해준다. 그리고 기다리던 숫자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아이의 이름까지 뽑아 준다. 나중에 정말 아이가 생기면 꼭 다시 찾아와 소원을 들어준 이곳의 토속신 ‘좀보키’에게 감사를 표하면 된다. 좀보키는 아마도 우리의 삼신할머니 즈음 되는 것 같다.

 

 

▲ 치미라캉 마당에서 축구를 즐기는 동자스님.

 


개가 없는 사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사원 입구에서는 개 몇 마리가 누워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다. 사원 마당에서는 동자스님들끼리 축구 시합이 벌어졌다. 마당이 떠들썩한 함성소리로 들썩이는데도 낮잠에 빠진 개들은 꿈적도 않는다. 아마도 이곳에 다시는 악마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 때문이 아닐까.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전 치미라캉 법당에서 빌었던 소원이 정말 이뤄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슬며시 높아진다.
 

푸나카=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