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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우공양에 담긴 의미

서울시 유네스코 문화유산 추진
“불교전통·음식쓰레기 해결 대안”
불가에서는 평등 실천하는 수행
발우공양 의미 되새기는 계기로

 

대학시절 산사로 오리엔테이션을 간 적이 있다. 불교대학이었으니 불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어스름한 새벽, 장엄한 예불에 전율처럼 소름이 돋았다. 너무 맑아 싸한 산사의 공기를 마시며 참선할 때는 이대로 부처가 되는 것 아는가 하는 기대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러나 산사의 체험이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발우공양은 낯설고 불편했다. 특히 발우를 씻은 천숫물을 모두 나눠마셔야 할 때는 곤혹스럽기까지 했다.


발우공양은 공양을 마친 다음에 김치쪼가리와 천숫물을 사용해 발우를 말끔히 씻어야 한다. 그런데 그 천숫물이 더러웠다. 일부의 극렬한 반대에도 천숫물은 모두가 나눠마셔야 했다. 그때의 난감하고 힘들었던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그때 우리는 발우공양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발우공양에 담긴 깊은 의미를 알고 있었더라면 천숫물이 그렇게 더러울 일도, 그토록 고약한 경험으로 기억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불교계에서 일하면서 발우공양의 의미를 날로 새롭게 느끼고 있다. 발우공양에는 불교의 가르침이 하나로 응축돼 있다는 생각이다. 승가공동체가 지켜야 할 원칙과 수행의 모든 것이, 일상으로 이뤄지는 발우공양 그 속에 담겨있다. 발우공양은 음식을 함께 나눠먹는 것이다. 큰스님부터 이제 갓 들어온 사미까지 모두가 같은 음식을 같은 자리에서 평등하게 덜어먹는다. 지금까지도 지켜져 오는 이 전통은 평등공동체를 지향하는 승가공동체의 핵심이다. 스님들은 발우공양 전에 오관게(五觀偈)를 염송한다.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인연에 감사하고 깨달아 반드시 보답하겠다는 서원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 식탐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그래서 발우공양은 음식을 나누고 비워서 오히려 청빈으로 마음을 채우는 치열한 수행이다.


발우공양에는 자비심도 담겨 있다. 아귀는 배는 남산만한데 목구멍은 바늘만해서 항상 허기로 고통을 받는다. 그 아귀가 유일하게 달게 먹는 것이 천숫물이다. 따라서 작은 티끌이라도 남아있으면 아귀는 불에 타는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스님들이 천숫물에 티끌 하나 남기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은 이런 아귀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발우에 담긴 수행의 의미가 이토록 지중하다보니 발우는 항상 법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역대 조사들이 전법의 의미로 발우를 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발우공양이 새삼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불교의 오래된 전통일 뿐 아니라 한해 버려지는 수조원의 음식쓰레기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담겨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작 불교계에서는 발우공양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사찰에서 발우공양 하는 모습을 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편의와 시대흐름에 따라 승가의 공양문화도 변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발우공양에 담긴 평등과 생명존중, 검소와 청빈, 그리고 수행에 대한 결기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도 되돌아 봐야 된다.

 

▲김형규 부장

불교의 맑은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다. 발우공양의 세계문화유산 추진은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발우공양이 박제화된 문화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한국불교에 살아있는 수행의 벼리가 돼야 한다. 세계문화유산 추진을 계기로 발우공양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김형규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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