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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물

기자명 법보신문

온갖 물은 한 가지 맛
그릇따라 모습만 변해
팔만사천가지 법문도
마음그릇 모양 닮아가

 

노자의 ‘도덕경’에 보면,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나온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는 의미이다. 노자는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공을 다투지 않고, 사람들은 싫어하여 가지 않는 곳도 싫어하지 않고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니, 가히 도(道)와 가깝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물처럼 생명에 필수적인 것도 드물다. 사람만 놓고 보더라도, 인체의 70%가 물이 차지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만큼 물은 우리 생명이 자라고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노자의 말처럼 물은 참으로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한다. 그리고 물은 더러운 것을 씻어 주어, 깨끗하게 한다. 그래서 많은 종교에서 물은 성스러운 의식을 치룰 때에 ‘정화(淨化)’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더러움을 씻어 주어 깨끗하게 해 주니 이 또한 물의 커다란 공덕이 아닐 수 없다.


‘화엄경’ 51권에 보면, 물에 대한 비유가 나온다. “불자여, 비유하면 온갖 물이 모두 한 맛으로 같지만, 그릇에 따라 다르기에 물에 차별이 있습니다. 하지만 물에는 생각(念慮)도 분별(分別)도 없습니다. 여래의 말씀(言音)또한 이와 같습니다. 오직 한 맛일 뿐으로, 해탈의 맛(解脫味)이라고 합니다. 뭇 중생들이 마음 그릇에 따라 다르기에 무량한 차별이 있지만, 생각도 없고 분별도 없습니다.”


물을 여래의 말씀에 비유하고 있다. 경전의 가르침과 같이 세상의 모든 물은 한 맛(一味)이다. 거기에 꿀을 타면 꿀물이 되고, 차(茶)를 넣으면 찻물이 된다. 탄산이 들어가면 탄산수가 되고, 땅속에서 지열로 데워져 여러 무기물이 들어 있으면 온천수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네모난 그릇에 담기면 물은 네모난 형태를 띠고,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근 형태를 보인다. 어떤 모양의 그릇에 담기든, 그 모양으로 물은 변하는데 능하다. 그래서 물의 맛은 본래 같지만, 다양한 차별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차별은 현상일 뿐 물 자체에는 그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물에는 생각도 분별도 없다고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말씀 또한 한 맛(一味)으로, 그 많은 가르침은 모두 해탈의 맛일 뿐이다. 하지만 중생들이 지닌 마음의 그릇(根器)의 차별로 인해 부처님의 가르침도 팔만 사천 가지로 다양하게 보일 뿐이다. 하지만 부처님의 말씀에는 어떠한 생각도 분별도 없다. 그렇기에 부처님의 말씀은 모든 중생들을 해탈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성현들이 물을 도(道)에 빗댄 것은 물이 가진 특성 때문이다. 공자는 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것이 곧 세상에 도가 전파되는 것이 잠시도 멈추지 않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진리가 되었든 도(道)가 되었든, 깨달음이 되었든 그것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초기불교 이래 선불교에 이르기까지 깨달음을 얻는 기연은 늘 현실의 삶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삶은 우리가 늘 영위하는 그러한 것이다.


분별과 망상만 내려놓으면, 바로 그 자리가 깨달음의 자리라는 말이 있듯이, 깨달음의 세계, 해탈의 세계를 우리는 삶과 분리해서 바라보기 때문에, 똑같은 ‘물’을 보고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필원 박사

깨달음이란 늘 저 멀리 높은 곳에 있는 그 어떤 초월적인 앎(智)이라는 기대치를 안고 있는 한, 우리에게 깨달음은 요원할 것이다. 물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듯, 그렇게만 살 수 있다면 깨달음은 멀지 않을 것 같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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