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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양심

기자명 도암 스님

악행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용기

탐진치에 물들어 갈수록
마음엔 브레이크 사라져
사악한 행위 날로 늘어가
인간성 잃고 악업만 쌓여

 

요즘 우리는 소송에 관한 소식을 많이 듣는다. 누가 누구를 상대로 소송을 했고 누가 승소하고 누가 패소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정당과 정당 사이에 소송을 하고 국가와 개인 사이에도 하며 회사와 회사 사이에도 한다. 부부 사이에도 하고 부모자식 사이에도 소송을 한다. 소송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법은 최소한의 양심이다’라는 말이 있다. 법의 판가름을 받겠다는 말은 양심의 마지막 선을 누가 지키고 누가 어겼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최소한의 양심을 누가 더 지키고 있는지, 누가 어기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은 괴로운 것이다. 법률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재주를 부리면 비양심적인 사람이 이기기도 한다. 누가 이기든 인격에 깊은 상처가 남게 된다. 생존본능의 입장에서 수단을 부리면 우리의 품격은 동물의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진다. 순간순간에는 이익을 얻는 것 같은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욱 각박해진다. 이 혼란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정행품 경문을 보자.


“하의(아래 옷)를 입을 때면, 중생들이 모든 선근의 옷을 입고 부끄러운 마음을 갖기를 발원해야 한다.”


‘하의(아래 옷)를 입는다’는 말은 하의를 정돈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앞의 경문은 좌선 등의 공부를 하면서 앉아있는 자세를 말하였다. 앉을 때는 대개 바닥이나 평상에 앉았다 일어난다. 이 단락은 공부를 마치고 일어나서 활동을 하는 단계를 말한다. 옛날 인도의 옷은 하의가 치마의 모양을 하고 있다. 서 있다가 앉을 때도 옷을 정돈해야 하고 앉았다가 일어선 때도 옷을 정돈해야 한다. 즉 갖추어서 말하면 ‘하의를 반듯하게 정돈해서 고쳐 입을 때면’ 이라고 해야 한다. 벗었다가 다시 입는 상황이 아니다. 속옷이 없이 치마 모양의 옷만 입게 되는데, 잘못하면 부끄러운 모습을 노출하게 된다. 특히 앉고 일어설 때 많이 조심해야 한다.


‘중생들이 모든 선근의 옷을 입는다’는 말에서 주는 가르침이 있다. 우리 모두는 몸에 옷을 입고 산다. 마찬가지로 마음에도 옷을 입고 살아야 한다. 몸의 옷을 반듯하게 고쳐 입을 때, 우리 마음의 옷도 반듯하게 고쳐 입기를 발원하는 것이다. 순간순간 자신을 돌아보아야 가능한 일이다. ‘모든 선근’이라고 말하면 그 종류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것을 간략히 하면 3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탐내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어리석지 않는 것이다. ‘선근’이란 선한 뿌리를 말한다. 나무의 뿌리가 땅에 깊고 견고하게 내려야 나무를 지탱하고 영양도 흡수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은 몸과 마음에 선한 뿌리가 깊고 견고하게 내려야 선한 에너지로 자신을 지탱하고 성장할 수 있게 된다.


3선근에 반대되는 것이 3불선근이다. 탐내고 성내며 어리석은 것이다. 탐내고 성내며 어리석으면서도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마음에 부끄러움이 있어야 행동에 브레이크 같은 조절기능을 갖추게 된다. 자기반성능력과 조절능력이 우리에게서 없어지면 우리는 사악해진다. 세상의 모든 사악한 행동이 이 3불선근에서 비롯된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은 쓰면 쓸수록 강해지고 합리화하면 할수록 우리는 사람다움을 잃어가게 된다.


요즘은 세상에 영향력 있고 유명한 사람들이 3불선근으로 무장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은 자신만 사악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사악해지도록 교화를 하는 것과 같다. 교화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은 불신과 혼란과 혼탁이 많아진다. 개인의 행위로 인한 악업뿐만이 아니라 사회에 미친 영향까지가 그 사람의 악업이 된다. 반대로 3선근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영향력 있고 유명한 사람들은, 개인의 행위로 인한 선업뿐만이 아니라 사회에 미친 영향까지가 그 사람의 선업이 된다. 영향력이 큰 사람은 선업도 크게 짓고 악업도 크게 짓는다. 업이 크면 과보도 크다. 신중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부끄러운 마음 갖기를 발원해야 한다’에서 ‘부끄러운 마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내면의 부끄러움이다. 양심이 건강하게 작용을 하고 있으면, 양심에 저촉되는 자신의 행위를 부끄러워하고 멈추게 한다. 자신의 내면에 스스로를 반듯하게 알아차리는 작용이 있는 것이다. 둘째는 외면의 부끄러움이다. 객관적이고 정당한 여론의 비평에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그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우리의 행위를 반듯한 모양으로 조정해 준다.

 

3가지 선근이 모든 선근의 근본이 된다. 그러므로 3가지 선근이 건강한 모습으로 자리 잡아야 모든 선근이 자리를 잡는다. 또 3가지 선근이 자리를 잡으려면 2가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 힘에 의해 우리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조절하고 없애나갈 수 있다.

 

▲도암 스님

공자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용기 있는 마음에 가깝다”고 하였고, ‘법구경’에서는 “전장에서 천 사람과 대적해 이기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진정 용맹한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세간의 성인이나 출세간의 성인이나 모두 한 결 같이 우리 마음이 맑고 밝고 건강하게 되기를 바란다.

 

도암 스님 송광사 강주 doam19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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