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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성지순례에서의 잔상

기자명 법보신문

이달에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1993년과 96년에 이어 세 번째입니다. 어르신들을 모시고 가는 길이라 여간 신경이 쓰인 게 아닙니다. 이른 아침 남편이 나온 분도 있고 아들이 나온 분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손을 잡으면서 잘 모시고 돌아오겠다고 눈빛으로 나눈 약속을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부산에서 떠난 먼 길은 버스에서 비행기로 다시 버스로 이어져서 델리의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인도는 오래전에 낯익은 기억을 온통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의 가슴 아픈 기억과 추억이 되살아났습니다. 그 가운데 수행에 관심이 많아 일이 없을 때면 달라이라마 스님을 찾아 떠나는 인도가이드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려운 조국에 대한 애정과 좌절에 초연해져버린 젊고 똑똑한 청년이었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나이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대충 5살이나 10여살 정도 단위로 추정해서 생각한다고 합니다. 왜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몇 분까지를 맞춰서 움직이는 것을 신기해한다고 합니다. 한 두 시간은 그냥 그때 즈음으로 알고 기다린답니다. 그러니 비행기가 몇 시간씩 연착되어도 기차가 언제 도착할지 떠날지를 알지 못해도 짜증을 내지 않습니다. 또 도로에 있는 현판도 믿을 수 없습니다. 20Km가 남았다고 하는 도로표지판을 보았다고 하더라도 얼마 안 돼 다시 50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온답니다. 이 사람들은 그야말로 시간과 공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아보면 늘 시간이 부족해 바쁘다고 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봅니다. 한정된 시간의 자루에 너무 많은 것을 집어넣으려는 내 모습이 그려집니다. 욕심이 아닐까? 그렇게 많이 넣어서 무거워진 자루 때문에 혹 내가 힘들고 지쳐있진 않은가? 이렇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또 반쯤 부서진 집처럼 보이는 흔적들이 길가에 많이 보입니다. 사연을 물으니 돈이 있으면 조금씩 짓는다고 합니다. 머리에 한 방 먹은 듯 한 느낌입니다. 그래! 저렇게 하는거야! 나는 너무 빨리 짓기를 바래! 결과를 너무 빨리 보기를 원하는 거야!


 아무리 좋은 쌀로 밥을 지어도 김이 난 후 충분하게 뜸이 들지 않으면 왠지 그 깊은 맛이 부족합니다. ‘사는 것은 살아가는 것이야!’라고 힘주어 말하시던 사형스님의 말이 기억납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삶이다’라는 말도 생각납니다. 끝이 없는 삶속에서 자꾸 끝을 보려고 했던 나의 서둠이 나를 바쁘고 힘들게 했던 것입니다.


‘화엄경’에는 한량없는 시간을 말하고 한량없는 공간을 설합니다. 그 속에 들어가 보면 내가 살아가는 짧은 시간과 공간의 왜소함을 알아차리게 되고 내려놓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느낌을 이 인도 가이드의 두 구절의 말에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들에게서 힘들어 보이는 삶만을 볼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그들도 함께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를 너무 많이 쪼개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공간을 너무 많이 나누어 놓았습니다. 나누다 보니 이제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한 공간에서 함께 숨 쉬고, 함께 먹고,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산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린 분리에 너무 익숙해 있습니다. 이제 다시 하나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림 스님

한방에서 온 식구가 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각방에 너무 오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젠 함께하는 것을 오히려 불편해 합니다. 중도와 균형을 위해서 이젠 함께하는 시간을 좀 더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즐기고 함께해서 행복한 관계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함께 노를 저어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함께해서 더 행복한 삶을 늘 꿈꿉니다.

 

하림 스님  whyhar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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