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푸나카종
19.푸나카종
  • 법보신문
  • 승인 2013.12.11 11: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두물머리 사이에 내려앉은 행복한 천상의 궁전

1637년 샤브드롱 지시로 축성
꿈에 구루린포체 만난 건축가
하늘 궁전 본따 지었다는 전설


1955년 수도 팀푸 이전 전까지
300여년 간 정치·종교의 중심지
지금도 겨울엔 불교본부로 이용


2011년 현 국왕 결혼식 열려
시골인 이곳에 세계 이목 집중

 

 

▲1637년 샤브드롱에 의해 건설된 푸나카종은 부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종으로 손꼽힌다. 1955년 부탄의 수도가 팀푸로 이전하기 전까지 부탄의 정치·경제의 중심지였던 푸나카종은 부탄왕국 초대 국왕의 즉위식이 열리기도 했던 역사적 장소이다.

 

 

부탄을 여행하는 도중 가장 자주 마주치는 인물은 바로 부탄의 5대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걀 왕축이다. 물론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부탄 전역 어느 곳에서나 국왕의 사진이 걸려있으니 하는 말이다. 특히 지난 2011년 10월 열린 5대 국왕의 결혼식 사진은 여전히 도시의 거리 곳곳에 걸려 있다. 벌써 2년 전의 일인데도 부탄 국민들은 화려하면서도 위엄 있게 전통 복장을 차려입고 나란히 선 국왕과 그들의 새 왕비 제선 페마의 사진을 정성껏 걸어 놓고 있다. 기쁨에 가득 찬 얼굴로 왕비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젊은 국왕과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수줍은 듯 미소를 머금고 있는 아름다운 왕비의 얼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행복감을 느끼게 만든다. 서른 한 살의 국왕과 10살 어린 평민 신부와의 결혼은 당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왕족과 평민의 신분을 넘어선 사랑, 그 주인공이 더구나 젊고 아름다운 선남선녀였으니 ‘21세기판 신데렐라’라는 수식어까지 붙어 그야말로 세기의 로얄웨딩이 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아름답고 성대한 예식과 축하 피로연 그리고 전 세계의 사절단이 모여드는 화려한 왕실의 결혼식을 예상했다. 그러나 정작 결혼식은 소수의 친인척과 왕실의 측근, 정부 인사들만 초청된 가운데 조용히 사원에서 진행됐다. 일체의 외국 사절을 부르지 않은 이유 중에는 이 결혼식이 철저히 부탄 전통방식에 따라 불교 의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라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결혼식 장소는 바로 푸나카종이었다.


푸나카종은 심토카종에 이어 부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종이다. 심토카종과 마찬가지로 최초로 부탄 통일을 완성한 샤브드롱 나왕 남걀에 의해 1637년 축성됐다. 푸나카는 1955년 수도를 팀푸로 이전하기 전까지 약 300여 년간 부탄의 중심지였다. 사실상 푸나카종이 세워지면서 부탄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설에 따르며 구루린포체로 불린 파드마삼바바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남걀이라는 사람이 코끼리처럼 보이는 언덕에 도착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이후 샤브드롱 나왕 남걀이 이곳에 와 언덕 꼭대기가 잠자는 코끼리의 형상임을 발견하고 예언에 따라 이곳에 사원을 세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푸나카종 건축을 명한 샤브드롱이 건축가에게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도록 지시했다. 그날 밤 건축가는 꿈속에서 구루린포체를 만나 그가 사는 궁전을 보고 그 모습대로 푸나카종을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푸나카종은 천상의 궁전인 동시에 위대한 행복의 궁전이라 여겨진다. 푸나카종의 정식 명칭은 ‘풍탕 데첸 포드랑’이다. ‘위대한 행복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부탄 국왕의 결혼식이 이곳에서 열린 이유도 왕과 왕비가 영원히 행복하길 바라는 뜻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2011년 10월 부탄 5대 국왕의 결혼식이 열린 푸나카종의 중심법당 입구.

 


1637년 축성이 시작된 푸나카종은 이듬해 완공됐는데 이후 샤브드롱은 10년간 계속된 내전을 마침내 승리로 끝맺었다. 그는 통일 부탄 최초의 정치·종교 지도자가 되었고 1639년에는 부탄군대에 의해 이곳에서 패배한 티베트군으로부터 압수한 무기를 전시하기 위한 작은 법당 겸 전시관도 세워졌다. 샤브드롱은 팀푸 계곡 위편에 자리하고 있는 체리곰파로부터 600여 명의 스님들을 이곳으로 이주시켜 불교본부로 삼고 자신 또한 죽을 때까지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푸나카종은 근대에 이르러서도 중요한 역사의 장소가 되었다. 현 부탄왕국의 초대 국왕인 우겐 왕축(1862~1926)의 즉위식이 1905년 푸나카종에서 열렸고 부탄 최초의 국회도 이곳에 마련됐다. 1955년 부탄의 수도가 팀푸로 이전한 후에도 푸나카는 여전히 정치·종교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데 특히 푸나카의 기후가 따뜻해 지금도 겨울이 되면 부탄의 불교본부가 팀푸에서 이곳 푸나카로 옮겨온다고 한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푸나카종은 그 규모와 역사성, 예술성 등 모든 측면에서 단연 부탄 최고의 종으로 손꼽힌다.


푸나카종은 두 개의 강줄기가 만나는 곳, 우리말로 하면 두물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모추로 불리는 어머니강과 포추로 불리는 아버지강이 만나는 삼각형 모양의 정점에 자리 잡고 있는 푸나카종은 강을 따라 줄지어서있는 나무와 기도깃발 룽다의 펄럭임에 둘러싸여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다. 지금의 모습은 1986년 수해로 일부 소실되었던 것을 2003년 복원한 것인데 놀랍게도 복원 비용 전부를 일본이 지원했다고 한다.

 

 

▲왼쪽이 어머니강인 모추강, 오른쪽이 아버지강인 포추강이다. 

 


푸나카종으로 들어가기위해서는 모추강을 가로지리러 놓여있는 멋진 목조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를 건너며 감상하는 푸나카종의 외관은 그야말로 천상의 궁전인듯 신비롭기까지 하다. 푸나카종은 가로 180m, 세로 72m에 달하는 거대한 성이자 요새이고 사원이다. 외벽의 아래층엔 창문이나 출입구가 없이 흰벽으로만 이어지지만 윗부분은 아름답게 장식된 창문 사이사이를 붉은색과 황금색으로 칠해진 화려한 그림과 문양들이 띠를 이루고 있다. 때마침 이름 모를 커다란 나무 가득 보라색 꽃이 피어 푸나카종의 새하얀 외벽에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초르덴이 서 있는 장방형의 넒은 광장이 시야를 압도한다. 이 광장에서 일 년에 한번 3, 4월경에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사방의 건물들은 모두 아름답게 장식된 나무기둥이 떠받치고 있고 2층엔 조각과 그림으로 빈틈없이 장식된 테라스를 갖고 있다. 푸나카종 역시 행정기관의 역할과 사원의 역할을 함께 수행하고 있는데 입구의 건물에는 행정기관이 자리하고 있어 내부로 들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이 광장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면 스님들이 생활하는 사원이다. 이곳 사원 공간의 오른쪽 건물에는 부탄 최고의 보물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는 티베트 고승의 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이 사리는 샤브드롱이 티베트에서 이곳으로 이운해 왔는데 제켄포로 불리는 티베트불교의 수장 외에는 중요한 행사 때에만 친견이 가능하다고 하니 우리에게는 기회가 없다. 중앙의 법당은 앞서 보았던 종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고 화려하다. 이곳이 바로 국왕의 결혼식이 열렸던 곳이다. 당시 결혼식 장면이 몇몇 외신들을 통해 전해졌는데 우리나라의 괘불과 비슷한 커다란 탕카가 걸린 광장에서 열린 결혼식은 장엄하면서도 간소해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법당 안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을 주불로 좌우에 샤브드롱상과 파드마삼바바상이 함께 모셔져 있다. 그 크기와 법당 내부의 화려한 장엄에 뒤로 젖혀진 고개가 뻣뻣해질 정도다.


푸나카종과 같이 규모가 큰 사원은 모두 국가가 직접 관리하고 운영한다. 사원의 유지와 보수에 필요한 모든 예산을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다. 이곳 사원에는 약 450명의 스님들이 생활 하는데 스님들의 생활과 교육에 필요한 모든 경비도 정부가 부담한다. 그렇다고 해서 신도들의 보시가 적은 것은 아니다. 사원으로 들어오는 보시는 모두 오지에 있는 작은 사찰이나 수행처 등을 지원하는데 쓰인다.

 

 

▲섬세한 그림과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된 푸나카종 내부엔 수많은 스님들이 오간다.

 


휘둥그런 눈으로 법당을 둘러보는 이방인의 궁금증을 단박에 알아차렸는지 법당 관리의 소임을 맡고 있는 틴레이 롭게 스님이 잠시 시간을 할애해 준다. 롭게 스님에 따르면 부탄의 스님들은 출가 후 9년간의 교육과정을 거쳐야 하고 각자의 역량에 따라 소임을 맡기도 한다. 스님들은 1750루피, 우리 돈으로 약 3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 그 가운데 1000루피는 음식을 비롯한 생활비로 사원에 납부하고 750루피는 개인 생활비로 사용된다. 1년에 두 벌의 가사를 비롯해 생활에 필요한 거의 대부분의 물품은 사원에서 지급되기 때문에 돈이 필요한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신도들의 요청으로 가정을 방문해 의식을 할 경우 받게 되는 보시는 개인이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일곱 살에 출가해 올해 서른 살이 된 롭게 스님 역시 지금은 푸나카종에서 법당 관리의 소임을 맡고 있지만 5년간의 임기가 끝나면 또 다른 사원의 소임을 맡아 이곳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이곳도 좋지만 시골의 작고 조용한 사원에서 수행에 전념하는 것도 좋다”는 롭게 스님은 “특별히 가고 싶은 사원이나 수행처가 있으면 불교본부의 허가를 받아 갈 수 있지만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다”며 지금의 소임에 만족을 표시했다.


푸나카종은 어찌나 넓은지 자칫 했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가장 높은 건물은 6층에 달하고 곳곳에 오가는 스님들도 유독 많다. 낡거나 관리가 소홀해 보이는 곳도 없다. 부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이라는 이름이 결코 허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에 집착하지 않고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는 젊은 스님의 맑은 눈빛이 푸나카종을 더 아름답게 장엄하는 듯 하다.

 

푸나카=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